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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는 숫자에 불과' 평생 여자로 사는 미국 할머니
'늙은 것'이 아니라 '성숙한 것'… 사회생활 활발하고 자기 가꾸기에 힘써






나종미 자유기고가 najongmi@netzero.net





미국 할머니가 데이트 첫날 받은 하얀 장미꽃에 마냥 행복해하고 있다.


인터넷에 게재된 한국판 기사들에 따라붙은 댓글들 중엔 읽었다 하면 거의 어김없이 ‘백발백중’ 나를 흥분하게 하는 것들이 있다. 다름 아닌 여자 연예인의 나이와 관련된 기사들이다.

수십 수백 개는 됨직한 이 댓글들의 논리는 놀라울 정도로 단순하다. 즉, ‘여자의 나이는 죄’라는 것이다. 내 눈에는 일반인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아직도 한창 예쁘기 만한 40대 여자 연예인 몇 명이, 거의 보일 듯 말 듯 한 눈가의 그늘, 볼 근처 주름, 또는 턱밑으로 살짝 처져 보이는 살 등이 카메라에 잡힌 까닭에 무슨 용서 받지 못할 큰 죄나 지은 양 무자비하게 성토 당하는 것을 읽은 적이 있다.

얼굴 가꾸기가 생명이랄 수도 있는 여자 연예인들, 분명 그들 나름대로 최선의 노력을 다 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연적인 노화 현상을 막을 길이 없어 간직 하게 된 세월의 흔적인데 도대체 그들에게 뭘 더 어쩌라는 것인지 모르겠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나이 먹은 여자 연예인들에게 적용되는 ‘이중의 잣대’다.

나이 육십이 훌쩍 넘었음에도 얼굴에서 깊은 주름살 하나 찾아보기 힘든 단아한 미모의 왕년의 주연 여배우 김 모 씨에게 ‘인조인간’이라며 비아냥거리는 댓글을 읽은 적이 있다.

나이 먹어서 잘 가꾼 것도 탈이니, 이쯤 되면 그저 여자가 나이를 먹는 것 자체가 죄랄 수밖에! 물론 꼬리에 꼬리를 물고 댓글을 올린 다른 사람들의 진짜 불만은 이 여배우가 무려 열 살이나 어린 남자와 살고 있다는데 있는 것 같았지만 말이다.

■ 한국 여자 - 나이 먹는 것이 죄?



미모로 한 몫 하던 여자 연예인들이 나이 먹어 늙어가는 것이 비난 받을 일일 수도 있다고 백번 양보해 준다 치자. 그렇다면 연예인이 아닌, 일반인 여자의 나이 먹기도 역시 비난 받을 일일까? 비난까지는 아니더라도, 한국여자의 나이 먹기는 상실이요 결핍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내 주변에는 삼십 세, 그리고 심한 경우는 사십 세를 넘긴 노처녀들이 많다. 물론 늦게까지 공부하느라 혼기를 놓친 여러모로 나무랄 것 없는 아가씨들이다. 뉴욕 소재 모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중인 삼십대 후반 재경(가명)이도 이들 중 하나인데, 거의 일 년도 넘게 통 연락이 없다가 어느 날 뜬금없이 전화를 해왔다.

그녀가 엄청 흥분한 목소리로 마구 쏟아내는 것을 대충 정리해보니, 누가 아이 둘 딸린 이혼남하고 선을 보라 한 모양이다. 비록 적당한 혼기는 놓쳤지만 아직 시집 한번 안간 멀쩡한 처녀로 박사 공부까지하고 있는 자기를 단지 나이 먹었다는 이유 하나로 무슨 ‘하자 있는 물건’ 취급 한다고 분노가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중간에 다리 놓으려던 사람이 마침 나도 알고 지내던 언니라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물었더니, 자기 딴에는 좋은 일 하려 한 건데 ‘현실 파악’을 못하고 저 난리라며 그쪽은 그쪽대로 또 불만이 대단했다.

남자와 여자의 나이 먹기가 다르게 취급되는 것이 한국 사람의 현실인 것 같다. 한국 남자의 나이 먹기는 상승하는 사회적 지위와 든든한 경제적 능력 등으로 얼마든지 만회가 가능한 유연한 요소로 취급되는 한편, 한국 여자의 나이 먹기는 그 어떤 것으로도 근본적인 보상이 불가능한 절대적인 마이너스 요소로 받아들여진다.

재경에게는 미안한 얘기지만, 나이 먹고 게다가 공부까지 많이 한 여자를 환영할 자기 또래 한국 남자가 과연 몇이나 있을까? 심정적으로는 재경이가 화내는 것이 백 번 천 번 지당한 일이라 여겨지지만, ‘현실 파악’ 운운한 중매쟁이 언니 말이 아주 그른 것만은 아니라 생각된다.

■ 미국 여자 - 나이에 꺾이지 않아



개성 만점 미국 할머니, 멋쟁이 미국 할머니, 모자 하나로 한 패션하는 미국 할머니의 상큼 발랄 옷차림.


미국 사람들의 여자 나이에 관한 인식은 한국과는 아주 많이 다르다. ‘키티’라는 육십일세 된 이웃집 여자와 몇 년간 친하게 지낸 적이 있다. 인물 훤하고 돈도 잘 버는 남편과 사십 평생을 아들 딸 낳고 잘 살아오다 나이 육십에 남편 그늘을 벗어나 자아실현을 해보겠다는 이유 하나로 황혼 이혼을 결행한 대단한 아줌마다.

마침 무려 삼년이 넘게 알고 지내던 키티와 동갑나기인 헬스클럽 친구 ‘안쏘니’가 생각나서 자신이 없다는 그를 거의 우격다짐으로 밀어 붙여 둘의 데이트를 주선한 적이 있다.

두 세 시간 남짓 걸려 첫 상면을 마친 키티가 얼굴이 빨갛게 상기돼서 찾아왔다. 일이 잘 됐나보다 내심 기뻐하며 그녀를 맞았는데, 웬걸 착각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무려 30분이 넘는 그녀의 예의바른 항의성 멘트를 요약하자면, 비록 동갑이나 안쏘니가 나이에 비해 훨씬 늙어 보이고 자기보다 경제력도 뛰어나지 않고, 사람도 유약해 보인다며, 자기를 어찌 보고 그런 별 볼일 없는 노인네를 소개 했냐는 것이다. 그녀 얼굴이 빨겠던 것은 화가 나서 그런 것이었구나! 솔직히 많이 황당했었다.

내가 아는 안쏘니는 큰 키에 준수한 인물 그리고 온화한 성품은 물론이고 자동차 관련 전문 기술자로 일하다가 은퇴 한 후 골프, 음악회, 해외여행 등으로 삶을 즐기는 나름대로 잘나가는 노인이었기 때문이다.

자기보다 네다섯 살, 심하면 열 살 이상 나이 많은 남자를 만나게 되는 한국 중년과 노년 여자들의 현실을 기준으로, 육십 살 키티의 동갑나기 남자 만나기가 결코 그녀에게 손해나는 일만은 아닐 것이라 막연히 생각한 끝에 저지른 실수였다.

오랜 교사 생활 끝에 은퇴하여 연금도 받고, 또 적지 않은 이혼 위자료까지 챙겼을 그녀가 안쏘니보다 경제적으로는 더 나은 위치에 있을 수 있다는 생각도 미처 하지 못했었다. 곱씹어 생각하면 할수록, 나이 육십에도 꺾이지 않는 키티의 엄청난 콧대가 부럽기만 하다.

■ 마음먹기에 따라 다른 나이 먹기



‘락앤롤의 여왕’이라 불리는 흑인 여가수 ‘티나 터너(Tina Turner)’가 백인 여가수 ‘쉐어(Cher)’와의 라스베이거스 합동 공연을 앞두고 ‘오프라 쇼’에 나온다는 TV 광고를 보았다.

초미니 스커트를 입고 섹스어필한 춤을 추며 노래하는 이 유명 여가수들의 나이가 무려 육십을 훌쩍 넘어 거의 칠십에 육박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면 앞서 언급한 댓글 올린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하다.

한국 TV의 뉴스 아나운서들은 대학교를 갓 졸업한 듯 어리고 예쁜 여자들이 대부분이지만, 미국 TV 뉴스(쇼) 진행자들은 대개의 경우 미모와는 거리가 먼 사오십 대의 아줌마들이다.

심한 경우 육십 대 할머니도 현역으로 뛰는데 세계적인 유명 인사들과의 인터뷰를 도맡아 해온 것으로 잘 알려진 뉴스 진행자 ‘바바라 월터스(Babara Walters)’가 대표적이다.

나이 먹는 만큼 늘어가는 실력으로 인정받는 미국 여자 연예인들의 나이 먹기는 비난은커녕 존경과 찬사의 대상이다. 꼭 이런 유명인들이 아니라도, 키티를 포함한 내가 보아온 많은 평범한 미국 할머니들도 외면은 물론 내면 가꾸기를 게을리 하지 않으면서 자신을 함부로 포기하지 않는다.

나이 사십 초반에 이미 중늙은이 다된 양, 맨얼굴에 고무줄로 질끈 묶은 머리에 추리닝 바람으로 마구 돌아다니다가, ‘생기 발랄’ 상큼하게 차려입고 곱게 외출한 미국 할머니들을 보고 내 자신이 부끄러웠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여자의 나이 먹기를 ‘손실’로 경험할 것인지 아니면 또 다른 ‘성숙의 기회’ 로 삼을 것인지는 바로 ‘여자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것을 지금이나마 알게 돼서 다행이다. 참 중요한 얘기를 빼먹을 뻔 했다. 혼자 있는 한국 할머니들이 기회가 되면 열심히 데이트를 즐겼으면 좋겠다.

■ 나종미 약력

나종미 씨는 1998 년 미국으로 유학 와서 프린스톤 신학교 기독교 교육석사, 유니온 신학교 신학석사를 마치고 현재 클레어 몬트 신학교 기독교교육학 박사 과정에 재학 중이며 문화전문자유기고가로 활동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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