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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정치가의 아내 한국의 어머니상과 비슷?
남편의 배신에 대한 상처 뒤로한 채, 오히려 '방패막이' 자청






나종미 자유기고가 najongmi@netzero.net



The Week 잡지에 실린 풍자 만화
나의 친구 비키는 ‘나종미의 미국 문화읽기’를 음에서 양으로 도와주는 든든한 후원자 중의 하나인데, 가끔씩 나의 자문 역할을 하는 것은 물론 관심꺼리가 될 만한 기사를 오려다 주곤 한다.

어느 날 그녀가 잡지에서 찢어온 기사 면의 뒷면에서 우연히 발견한 한 컷짜리 만화가 나의 관심을 끌었는데, 만화 속 등장하는 두 소녀의 대화를 번역하자면 다음과 같다.

한 소녀 왈, “나는 커서 정치가의 아내가 될 거야. 남편이 나 몰래 바람피운 사실을 언론에 사과할 때 마이크 앞에 억지로 끌려가 정신 나간 채 그 옆에 서있는, 그런 정치가의 아내 말이야.” 다른 소녀 왈, “나도! 그래. 나는 그런 정치가의 아내 중에서도 이왕이면 나중에 대통령 선거에 나가는 그런 아내가 될래.”

미국 정치에 어느 정도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이미 눈치 챘겠지만, 첫 번째 소녀의 역할모델은 최근 고급 매춘부와의 부적절한 관계로 물의를 일으키고 사퇴한 전 뉴욕 주지사 ‘엘리엇 스피처(Eliot Spizer)’의 아내 ‘실다 스피쳐(Silder Spizer, 이후 실다)’이고, 두 번째 소녀가 언급한 역할모델은 모니카 르윈스키와의 부적절한 관계로 곤경을 치렀던 전 미국 대통령 ‘빌 클린턴’의 아내이자 민주당 경선 후보인 ‘힐러리 클린턴’이다.

외신을 통해 한국에도 보도 된 것으로 알고 있는 스피처 전 뉴욕 주지사의 스캔들은 이곳 미국에서 한동안 화제꺼리 이였다. ‘미스터 클린’ 또는 ‘월가의 보안관’ 등으로 불리며 부패와의 전쟁을 벌려온 그의 이중적인 삶이 많은 이들에게 충격으로, 더 나아가서는 분노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인 것 같다.

■ 스피처는 왜?



‘융(Jung)’이라는 심리학자의 ‘그림자’란 개념을 가지고, 언뜻 이해하기 힘든 ‘도덕의 화신’ 스피처의 탈선 동기를 설명해 볼 수 있다. 융에 의하면 우리의 사고와 의식 전반을 담당하는 ‘자의식’은 자신이 생각하는 자신의 이미지와 갈등을 일으킬 만한 요소들을 스스로 알아서 ‘무의식’의 세계로 억눌러 버리는데 이것들이 축적되어 그림자가 된다고 한다.

이 이론에 따르면, 사려 깊고 다정다감하고 친절한 사람의 무의식적인 내면에는 그 사람의 실제 삶에서 미쳐 볼 수 없었던 부정적인 성품들, 즉 극도로 이기적이고 고집 세며 냉혈한 면이 그림자로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예외 없이 가지고 있다는 그림자의 존재를 외면하고 부정하며 계속적으로 무의식의 세계에 가두어 두려고 할 때 언젠가는 이것이 자신도 감당할 수 없는 엄청난 파괴적인 형태로 표출 된다는 것이다. 스피처의 경우 자신 안의 그림자의 존재를 부인하고 돌보지 않은 결과, 다른 사람의 부정과 부패에 유난히 민감히 반응하고 이를 응징하고자 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이런 ‘일시 미봉 책’이 길게 가지는 못했다. 전직 뉴욕시 수석 검사 출신으로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법의 그물망을 피해 불법(매춘)을 저지를 지력과 능력을 겸비한 스피처의 급작스런 몰락 자체는, 더 이상 망각의 그늘 속에 머무르기를 거부하는 ‘그림자’라는 ‘보이지 않는 손’의 작품으로 볼 수도 있다.

즉, 무의식적으로나마 스피처는 자신의 몰락을 스스로 원했다고도 볼 수 있다. 아무튼 그림자 이론에 따르면 도덕의 화신 스피처의 일탈은 언젠가 반드시 올 것이 온 것 일뿐이라 할 수 있다.

■ '부부동반' 사임인터뷰 중의 실다





엘리엇 스피처 뉴욕주지사가 아내 실다여사와 함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 식 스피처의 돌변에도 별로 놀라지 않은 나였건만, 뉴욕 주지사직 사임을 발표하는 기자 회견장에 나와 창백한 얼굴로 묵묵히 그러나 충성스럽게 서있는 그의 부인 실다를 보았을 때는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고운 잔주름이 살짝 보이기는 하나 아직도 젊고 예쁜 실다, 놀랍게도 하버드 법대를 졸업한 전직 변호사 출신이라 한다. 물론 정치가 남편의 내조를 위해 잘 나가는 변호사 직을 그만 두었다 한다.

최고 엘리트 출신의 능력 있는 여자 실다가 무엇이 부족해서 지은 죄도 없는데 만인 앞에서 수모를 받는 그런 자리에 자진해서 나와 있는지 열 번 생각해도 도무지 이해가 안갈 일이다. 자기 몰래 저지른 남편의 실수도 감당하기 어려운 상처일 텐데, 자기보다 훨씬 더 젊고 예쁜 상대 직업여성의 사진과 외도에 얽힌 세부사항까지 만천하에 생중계 되고 있는 그런 기막힌 상황에서 말이다.

스피처의 ‘부부동반’ 사임 인터뷰를 보며 이런 ‘절대 이해 불능’ 상황에 주목한 미국여성들이 꽤 있었는데 그중 어떤 언론인은 다음과 같이 적었다.

“분명 너무 화가 나서 닭 모가지 비틀듯 남편한테 해대고 싶을 텐데, 그 배신을 당하고도 저런 공개적인 수모를 자처하는 이유는 뭘까? 만약 역할이 바뀌어서 외도하다 걸린 것이 그가 아니라 그녀일 경우에도 남편이 그녀처럼 용감하고 고상하게, 그리고 묵묵히 저기에 서 있을 것인가? 아마, 당장 이혼감일 것이다.”라고.

■ 실다와 힐러리의 차이



정치가인 남편에게 배신당하고 그 일로 공개적인 수모까지 당한 점에서 실다와 힐러리는 비슷하다.

공교롭게도 두 여자 모두 변호사 출신의 능력 있는 여성이다. 하지만 힐러리가 남편 빌 클린턴 곁을 떠나지 않고 남아 있었던 가장 큰 이유로 그녀의 정치적인 야심을 꼽는 사람들이 많다. 사실 ‘모니카 르윈스키’ 스캔들 당시 힐러리가 이혼 했다면 과연 오늘의 민주당 대통령 경선 후보 힐러리가 존재 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는 나 자신도 회의적이다.

일례로, 악성 스캔들에도 불구하고 재임 당시 지지율이 50% 밑으로 떨어진 적이 없다는 전직 대통령 빌 클린턴의 인기는 아직도 여전해서 힐러리 지지자들 중 만약 빌이 대통령에 출마하면 다시 뽑아주겠다는 사람들이 무려 56%에 달한다고 들었다.

이혼까지는 가지 않았지만 당시 빌 클린턴이 힐러리에게 약점을 잡혀 어지간히 휘둘렸다는 뒷얘기가 있다.

예를 들면, 빌 클린턴의 대통령 재직 당시 빌과 힐러리가 함께 주도한 ‘공영 의료보험 법안’이 비록 그들 기대치에 반 밖에 못 미치는 것이기는 했으나 적어도 의보 공영화의 첫 발을 내딛을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맞은 적이 있었는데, 힐러리가 빌의 의사에 반하여 타협안을 거부하는 바람에 법안 자체가 아예 죽어 버린 적이 있다 한다.

지은 죄가 있어 꽁지 내리고 근신하는 남편 빌의 목덜미를 잡고 기세 등등한 힐러리와 사임 발표하는 남편 엘리엇 스피쳐의 곁에 공허해 보이는 슬픈 눈빛으로 묵묵히 서있는 실다의 그림은 달라도 아주 많이 다르다.

■ 정치가의 아내 실다의 내조



엘리엇 스피처(맨 오른쪽) 뉴욕 주지사가 부인 실다와 딸 셋과 함께 지난 1월 1일 뉴욕주 알바니시의 한 교회에 예배를 보러 들어가고 있다.


일부종사의 가치관이 강요되는 것도 아니고, 이혼 한다 해도 재산 분할, 자녀 양육권, 양육비 보조 등에 있어서 여자에게 불리할 것이 없는데다가, 힐러리처럼 조만간 정계 진출할 야심도 없어 보이는 능력 있는 여자 실다의 순애보(?)는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피해 당사자인 내가 용서 했으니, 여러분도 내 남편을 용서해 주세요!” 라는 실다의 정치적인 메시지만큼은 분명히 이해할 수 있다.

미국 정치가의 아내 노릇하기가 쉽지만은 않은 것 같다. 힘 있는 남편 바람기를 견뎌 내는 것도 모자라서 바람피우다 딱 걸린 남편의 ‘방패막이’ 노릇까지 해주어야 하니 말이다. 그런데 실다의 얼굴에서 인고의 세월을 살아온 많은 한국의 어머니들의 얼굴이 겹쳐 보이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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