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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끈하게 외조하는 미국의 남편들
아내의 성공을 위해 직업까지 포기한 남자들의 사연






나종미 자유기고가 najongmi@netzero.net



자녀 양육에 일조하는 것은 중요한 외조의 하나




내 나이 또래 되는 한국 사람은 대개 ‘내 사랑 루시(I Love Lucy)’라는 미국의 코미디물을 기억할 것이다. 어릴 적 향수 때문인지는 몰라도 칼라도 아닌 흑백 화면에 내용도 새로울 것이 없는 이 코미디를, 3살짜리 내 조카가 같은 만화영화를 몇 달 내내 싫증내지 않고 보고 또 보듯이 즐겨 보고 있다.

자꾸 봐도 재밌는 이 드라마의 반복되는 주제 중의 하나는 연예계 데뷔 하는 것이 꿈인, 그러나 별다른 예술적 재능이 없는 루시가 가수 겸 악단장인 자기 남편 리키의 쇼에 한번 출연하려고 온갖 재주와 술수를 다부리나 끝내 성공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타고난 재주도 없고 게다가 사고뭉치인 루시라 하지만,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자기 부인 소원하나 못 들어주는 남편 리키가 얄미운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천둥벌거숭이 같은 말괄량이 루시 때문에 배꼽을 잡고 웃다가 칼라 TV 시대를 사는 현대의 미국 남편들은 사회활동을 하는 아내의 성공을 얼마나 잘 도와주고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 구설수에 오른 빌 클린턴의 특별한(?) 외조



최근 들어 가장 주목 받는 외조의 주인공은 당연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다.

그런데 빌의 외조는 그 효과와 의도에 있어 문제가 되는 외조이다. 먼저 효과 면에서 보면 힐러리는 민주당 유권자들 사이에서 아직도 시들지 않은 남편 빌의 인기 덕을 볼 수 도 있고, 아니면 눈에 드러나는 빌의 외조가 클린턴 일가의 장기 집권을 원치 않는 사람들에게 오히려 역효과를 일으켜 힐러리에게 해가 될 수도 있다.

오바마의 이라크 전 반대 전력을 ‘동화 속의 이야기’라며 평가 절하하는 등으로 클린턴의 외조가 심심찮게 구설에 올랐었는데, 인종문제를 민주당 경선에 끌어 들이려는 시도라는 비난과 함께 아무리 부인이지만 전직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특정 후보의 편을 들고 나서는 것이 적합한 일이겠냐는 우려를 자아낸 적이 있다. 윤리성에 있어 논란의 소지가 있는 빌의 외조는 그 의도의 순수성도 불투명하다.

즉, 빌의 외조는 그의 정치적 야심이 근본 동기가 됐다고 보는 것이 이곳 중론인데 삼선이 불가한 미국의 현 제도 하에 본인의 정치 생명을 다한 빌이 부인 힐러리를 내세워 세 번째의 백악관 입성을 노렸다는 것이다.

■ 잘난 여자를 만드는 남편들의 헌신적인 외조



딸 둘과 함께 외출한 아빠, 딸의 특별활동을 따라다니며 챙기는 아빠


동기 면에서 순수치 않고 효과 면에서도 긍정적이지만은 않은 빌 클린턴의 내조와 확실히 비교되는 참다운 외조 이야기는 없을까? 물론 있다. ‘피오리나(Carly Fiorina)’라는 여자의 남편이다.

피오리나는 AT&T 통신(1980-1995)과 HP 컴퓨터(Hewlett-Packrd, 1999-2005) 등 한국에도 알려진 미국 100대 그리고 50대 기업의 대표를 지낸 잘난 여자이다. 이 여자의 사회적인 성공 뒤에는 헌신적인 남편의 외조가 있었다 한다.

즉 피오리나가 AT&T 에서 일하던 시절 만난 당시 같은 회사 부사장이었던 그녀의 두 번째 남편(1983년 결혼)은 그녀가 큰 회사를 경영할만한 인재임을 미리 한눈에 알아보고 결혼하면 아내의 커리어를 돕겠다고 선언한 바 있었다.

후에 그 약속을 지켜 아내 외조에 전념하기 위해 1998년 48세의 나이로 조기은퇴를 했다 한다. 전업주부로 나선 피오리나 남편은 요트타기, 자식삼아 기르는 개들 돌보기, 그리고 피오리나의 출장에 동반하기 등등에 그의 시간을 주로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피오리나의 남편처럼 그런 외조는 아니지만, 아내 그늘에서 이름 없이 고된 일을 마다않는 헌신과 희생의 외조의 예가 더 있다. 현재 내가 공부 하고 있는 학교의 'R'이라는 여교수의 남편이다.

R은 내가 이전 학교에서 공부 할 때부터 이름을 들어 알고 있을 만큼 자기 분야에서 인정받고 있는 '학자' 이다. 이 여교수가 은퇴 후 우리 학교에서 몇 개의 과목을 가르치고 있다는 말은 진작 들었지만 정작 그녀를 대면한 것은 내가 도서실 대출 대납 책상에 앉아 일하고 있을 때였다.

수수한 옷차림의 너무나 평범해 보이는 인상의 어떤 할머니가 책 몇 권을 대출하고자 해서 그녀의 도서실 카드를 스캔을 했더니 그 유명한 'R' 교수의 이름이 뜨는 것이었다. 비교적 교수 냄새(?)가 덜 나는 것이 미국 교수들이긴 하지만 너무나 동네 아줌마 같은 그녀의 인상에 많이 놀랐다.

후에 이 교수님 때문에 한 번 더 놀랄 일이 있었는데, 종합시험 준비를 위해 학교 도서실 검색 엔진에 그녀 이름을 넣었더니 한 두 권도 아니고 무려 팔십 삼권의 책 제목이 뜨는 것이었다.

과중한 수업과 학생 수에 시달리는 한국 교수들보다 개인적인 연구 시간이 많은 것이 미국 교수들이긴 하지만, 이곳 교수들에게도 책을 내는 일은 결코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미 동부에서 학교 다닐 적 내가 따르던 교수법의 귀재 P 여교수는 책을 써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에 여러 가지로 열악하나 연구시간을 더 가질 수 있는 분교로 자청하여 옮겨 간 일이 있다.

책을 쓰지 못하는 교수는 계약직으로 머물다 결국 학교를 떠날 수밖에 없기에 어떤 희생을 해서라도 적어도 책 한 두 권은 써서 영구직 임용을 받은 후에 집필을 멈추거나 좀 부지런한 경우 한 두 권의 책을 더 쓰는 것이 보통인데, 거의 백 권에 육박하는 양질의 책을 출판했다는 것은 경이로운 일이다.

알고 보니 R 교수의 다작 뒤에는 남편의 외조가 있었다 한다. 일찌감치 아내의 특별한 학자적인 재능을 간파한 전직 교사 출신의 남편이 직장을 그만 두고 아내가 책 쓰는데 필요한 기본적인 리서치 등을 비롯하여 거의 ‘담당 비서’ 내지는 ‘연구 보조원’을 역할을 자원하고 나서 헌신한 결과 오늘날의 대학자 R 교수가 있게 된 것이라 한다.

■ 성공적인 여자들, 화난 남자들



아빠의 양육 참여는 중요한 외조의 수단


물론 미국의 모든 남편들이 아내의 직업적인 성공을 지지하고 도와주는 것만은 아닌 듯하다. 결혼한 부부 40 쌍을 인터뷰하여 ‘성공적인 여자들, 화난 남자들’이란 책을 낸 ‘캠벨 (Bebe Moore Campbell)’에 따르면 직업을 가진 여성을 아내로 둔 남편들은 직업과 삶에 대한 만족도가 전업주부 아내를 둔 남자들에 비해 훨씬 떨어진다고 한다.

즉 직업을 가진 여성을 아내로 둔 남자들은 아내가 자신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생각에 홀대 받는다 느끼고 낮은 자존감에 시달리게 된다는 논리인데, 여성의 직업 갖기 그리고 더 나아가 여성의 직업적 성공이 남자의 정신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이야기가 우리 한국인들에게는 아주 새로운 얘기만은 아니다.

즉 아내가 남편보다 잘나서도 안 되고, 혹여 잘나더라도 남들이 앞에서 나서는 것은 안 되다는 말을 많이 들어왔으니 말이다. 하지만 캠벨에 따르면 직업을 가진 부인과 남편과의 갈등은 여자가 일하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부부사이의 대화와 신뢰의 결여 때문이라 한다. 생각해 볼수록 맞는 말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내 귀에는 ‘고양이 목에 방울 다는 식’의 처방전 같이 들린다.

자신의 감정 상태를 표현하는 것에 서투른 한국 남자들이 어디서 어떻게 대화를 시작하실 수 있을는지 괜히 내가 난감한 기분이다. 성공하는 여자(아내)는 남자하기 나름이다!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서로 교환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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