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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덕균의 개그펀치] 작업酒



내가 대학에 다닐 때만 해도 술이란 마시는 것이 아니라 들이붓는 수준이었다. 신입생이 되면 선배들이 건네주는 무지막지한 사발에 담긴 막걸리를 단숨에 들이킬 줄 알아야 귀여움 받는 기특한 후배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술을 못 마신다고 빼는 일이란 상상할 수도 없고, 마시는 즉시 토하거나 기절하는 한이 있어도 넙죽넙죽 받아 마셔야 직성이 풀리는 오기와 무모함이 모두를 지배하던 시간이었다. 건배를 하면서도 ‘원샷’은 애교성 구호이고 ‘마시고 죽자’ ‘뻗는 그날까지’ 등등 술을 마시고 그냥 끝내버리자는 식의 막가는 언행이 주로였다.

술이라고 해봐야 싸구려 막걸리나 소주가 대부분이고 어쩌다 주머니 사정이 좋은 친구가 호기를 부리며 생맥주라도 사주면 잔으로 흘러내리는 거품까지 쪽쪽 빨아먹었다. 사실 술맛도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왜 그토록 술에 집착하면서 죽기살기로 마셔댔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아이에서 어른이 되었다는 사실을 강하게 확인할 수 있는 일이 마음대로 술을 마실 수 있다는 단순한 이유였던 까닭도 있는 것 같다.

우리 386세대가 허기진 사람마냥 술에 집착했던 것에 비해 요즘 젊은 사람들은 훨씬 약아지고 여유있어 보인다. 그들은 술 자체보다는 술로서 이루어지는 사람들간의 의사소통, 분위기에 더 무게를 둔다. 그래서 무식하게 많이 마시기보다는 좋은 술을 좋은 사람들과 좋은 장소에서 분위기를 만들며 띄우며 멋있게 마신다.

술도 그냥 마시는 게 아니라 골라서 마신다. 그래서 칵테일이 그렇게 인기를 끄는가 보다. 내가 아는 칵테일이란 고작 레몬 소주, 오이 소주에서 발전해서 콜라에 위스키를 타서 마시는 것 뿐이었다. 칵테일의 종류는 이름이 잘 알려진 것만도 백여가지가 넘고 전세계를 넘나드는 것만 헤아려도 수십만가지가 넘는다고 한다. 자기 취향대로 넣고 싶은 것을 넣어 만들어 먹는 게 칵테일이니까 당연한 건지도 모른다.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압구정동이나 홍대 앞의 칵테일바가 새로운 명소로 자리잡고 있는 것도 나만의 개성을 마음껏 발산시키는데 주저치 않는 성향과 딱 맞아떨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않고 내 주량껏 분위기를 즐기면서 마시는 칵테일은 그래서 여자들이 더욱 좋아한다. 사실 남자들은 쩨쩨하게 작은 잔에 색깔도 요상하고 괜히 체리나 작은 우산을 꽂아서 모양을 낸 칵테일이 조금은 성에 안 찬다. 그래도 칵테일을 마신다. 왜냐구? 남자들이 여자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서 선택하는 게 바로 칵테일이기 때문이다.

분위기에 약한 여자들을 근사한 분위기의 칵테일바로 데려가 화려하고 묘기에 가까운 기술을 선보이는 바텐더가 만들어주는 요사시한 색깔의 술을 마시면서 대화를 나누면 성공 가능성이 훨씬 높아진다. 여자들은 우선 색깔이 이쁘고 별로 술맛도 느껴지지않는 칵테일에 탄성을 지른다. 남자친구가 ‘칵테일은 음료수야’ 하는 응큼한 말을 그대로 믿어버리고 맛있다고 홀짝홀짝 몇잔을 들이키다 보면 그냥 가는 거다.

요새는 아예 성적인 문화가 새로운 트랜드인지 칵테일 이름도 여간내기가 아닌 게 많다. 플라밍고 오르가즘, 섹스머신, 마릴린 먼로, 엔젤스 키스, 큐피트의 화살, 섹스온더비치 등등 대담하고 화끈하기가 점잖은 어르신네들이 들으면 기절초풍해 뒤로 넘어갈 정도이다.

내가 최근에 접한 칵테일은 연인들이 함께 마시기에 딱 좋은 것이었다. 블로우잡이란 칵테일인데 술 위에 휘핑 크림이 얹혀있어서 마시는 사람이 잔에 손을 대지않고 마신 뒤 입에 묻은 크림을 상대방이 빨아준다는 것이다. 오호라, 야한걸…. 여기까지 분위기가 좋았으면 그 다음엔 ‘오나집’이란 칵테일로 마무리를 하면 된다. ‘오빠 나 집에 못 가’란 줄임말을 가진 칵테일인데 설마 친절하게 그 명칭의 뜻풀이를 해주는 어리석음은 범하지 말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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