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식의 문화읽기] 옥탑방 고양이

서울에는 어느 정도의 옥탑방이 있을까. 2001년 11월 서울에 2만 5,000 가구의 옥탑방이 있었다는 기사를 인터넷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정확한 수치는 알 수 없지만 2년 전보다 줄어들지는 않았을 것 같다. 작년까지만 해도 옥탑방은 다세대 주택 옥상의 물탱크 자리에다가 방을 만든 불법 건축물이었다.

사고도 많이 일어나고 재산권과 관련된 분쟁도 잦아서 행정적으로는 골칫거리이기도 했다. 옥탑방을 양성화하는 법안이 통과된 것은 작년 가을의 정기국회에서였는데,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정치인들의 마음 씀씀이가 넉넉해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정치적 의도야 어떻든 간에 옥탑방에서 사는 사람들에게 실제적인 도움을 준다면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

옥탑방이라는 말을 들으면, 소설가 박상우와 조경란이 떠오른다. 박상우는 단편 ‘내 마음의 옥탑방’에서 물질이 지배하는 지상도 아니고 신의 은총으로 가득한 천상도 아닌 독특한 공간으로 옥탑방을 그려낸 바 있다. 조경란은 옥탑방에 대한 애정이 유별난 작가이다. 서재 겸 작업실로 꾸며 놓은 옥탑방에서 작품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품에서 느껴지는 무섭도록 차가운 낭만성은, 아마도 옥탑방이라는 공간과 결코 무관하지 않을 것 같다.

밑도 끝도 없이 옥탑방 이야기를 꺼낸 것은, 방영 중인 드라마 ‘옥탑방 고양이’ 때문이다. 옥탑방을 배경으로 젊은 세대의 동거 문제를 감각적으로 다루고 있는 드라마이다. 드라마 ‘옥탑방 고양이’의 여주인공은 전문대를 졸업한 취업 준비생 남정은이다. 파출소장인 아버지가 지방으로 발령이 나자, 정은은 가족과 떨어져 혼자 옥탑방에서 생활을 한다. 이런저런 사고와 우연이 적당하게 겹치면서, 부잣집의 손자이고 명문대 법대생이지만 사채업자에게 쫓기는 신세였던 경민과 알게 된다.

옥탑방에서 서로의 처지를 위로하며 술을 마시다가 얼떨결에 ‘사고’를 친다. 그리고 두 사람의 기묘한 동거가 시작된다. 취업에 성공한 정은은 직장과 옥탑방을 오가며 경민을 살뜰하게 거두어 먹인다. 하지만 바깥에 나가 놀다가 집에 와서는 밥만 먹고 잠만 자는 고양이처럼, 경민은 사법시험 준비보다는 혜련에 대한 ‘작업’에 더 많은 공을 들인다.

정은의 옥탑방에 경민이라는 고양이가 찾아 들었다. 그렇다면 경민은 생선 가게를 그냥 못 지나가는 도둑 고양이에 불과할까. 과연 정은의 헌신적인 노력이 경민을 페르시아 고양이로 바꾸어 놓을 수 있을까. 드라마를 보게 만드는 핵심 코드라 할 것이다.

드라마를 이끌어 가는 이야기의 축은 크게 3 가지이다. 첫번째는 옥탑방이라는 폐쇄적인 공간에서 벌어지는 소꿉놀이와도 같은 일상이고, 두번째는 양가의 부모님들이 옥탑방을 불시에 방문하면서 생겨나는 에피소드들이다. 세 번째의 축은 두 개의 삼각관계(연애의 삼각형)이다. 경민을 꼭지점에 놓을 때, 부유한 집안의 딸인 혜련과 가난하지만 헌신적인 정은이 형성하는 삼각관계가 마련된다. 동시에 정은을 중심으로 성실한 직장 상사인 동준과 뻥만 치고 다니는 경민의 삼각관계가 형성되어 있다.

‘옥탑방 고양이’의 또 다른 재미는 평강공주 모티프로써 신데렐라 모티프를 견제하고 있다는 점이다. 신데렐라의 서사적 문법은 단순하다. 현실적인 어려움을 내면의 도덕성으로 견뎌내던 신데렐라에게 사랑과 구원이 외부로부터 한꺼번에 주어진다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신데렐라는 왕자에 의해서 발견(구원)되기만을 기다리는 흙 속의 진주인 셈이다. 반면에 평강공주는 사랑의 대상을 스스로 발견하고 선택하는 존재이다.

따라서 그녀가 보여주는 헌신과 희생은 자신의 선택이 정당했음을 입증하기 위한 노력이다. 평강공주에게 사랑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이며, 사랑 만들기는 사람 만들기와 구별되지 않는다.

드라마의 정은은 결코 공주가 아니다. 인물의 형상화 원리가 평강공주와 유사할 따름이다. 정은이 평강공주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사랑과 결혼에 대한 무관심이다. 현재 정은은 미래의 결과는 괄호 속에 넣은 채로 현재의 자기감정에만 충실한 모습을 보인다. 어떻게 보면 정은은 여성을 속박했던 가치들(희생과 헌신)을 아무 생각없이 반복하는 인물이다.

하지만 다른 쪽에서 보면 평강공주의 능동성과 신세대 특유의 쿨(cool)함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과연 어느 쪽이 맞는지, 드라마의 진행과정을 좀 더 유심하게 살펴보는 도리밖에 없을 듯하다.

김동식 문화평론가


김동식 문화평론가 tympan@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