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다니는 광고판, 연예인 홍보대사 전성시대

홍보대사 하나쯤 맡아야 인기인?

걸어다니는 광고판, 연예인 홍보대사 전성시대

청계천 복원공사 개시를 하루 앞둔 6월 30일, 청계천 도로변에는 이명박 서울시장을 비롯한 시 직원들과 낯익은 연예인 몇몇이 나와 ‘대중교통 이용하기’ 캠페인을 벌였다. 톱 스타 최불암과 김규리, 그리고 귀화 외국인 이참(전 한국명 이한우) 등이 앞장 서서 홍보물을 나눠주는 모습은 교통 대란 우려에 짓눌린 시민들에게는 한줄기 시원한 바람이었다.

이들 인기인들은 예전처럼 관제 캠페인에 무작정 동원된 게 아니다. 이미 고 건 전 시장 시절, 서울시 행사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기로 한 서울시 홍보 대사들이다.


유명인사 선임, 단체나 기관 얼굴로

홍보 대사(大使) 없으면 대사(大事)도 없다. 사회 각계에 유명인 ‘홍보 대사’바람이 뜨겁게 불고 있다. 정부 부처, 지방 자치 단체, 복지 기관 등에서 펼치는 대규모 행사는 유명 인사를 홍보 대사로 모셔 오는 스카우트 작업부터 시작된다. 딱딱한 격식을 갖춘 행사를 알리는 데에는 유명 인사를 전면에 내세우는 것보다 더 효과적인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7월의 홍보 대사 위촉전은 개그맨 김경식이 보건복지부로부터 ‘해외 유입 전염병 예방’사업의 홍보 대사로 위촉되면서 본격 돌입했다. 이에 따라 그는 앞으로 1년간 신종 전염병 예방을 위한 각종 영상물 제작 등 다양한 홍보 활동을 벌이게 된다.

앞서 6월 한달간 ‘홍보 대사’로 새로 탄생한 사람들만 꼽아도 열 손가락이 모자란다. 중견 탤런트 전원주는 강원도 원주시 명예 홍보 대사로 위촉됐고, 영화 ‘장화ㆍ홍련’에서 수연 역으로 열연한 배우 문근영은 광주영화제의 홍보 대사로 선정됐다. 탤런트 우희진은 식품의약품안전청, 탈북 연예인 김혜영은 경주세계문화엑스포 등에서 홍보의 최전방에 뛰어 들어 바람몰이중이다.

비단 연예인 뿐만이 아니다. KBS 김경란, MBC 박나림, SBS 윤현진 아나운서 등 방송 3사의 세 아나운서는 농림부의 ‘2003 러브 미(米) 캠페인’에 참여한다. 축구 선수 송종국은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금연침 시술 촉진 캠페인’의 홍보에 나섰다. 여성학자 오한숙희는 한국통신문화재단이 추진하는 ‘우리집 스팸메일 추방 캠페인’의 홍보 대사 제의를 받고 무보수로 돕겠다고 나섰다.

또 김정화(95년 미스코리아 선), 임주연(95년 미스코리아 한국일보), 장은진(2000년 미스코리아 캘러리아)등 미스코리아 출신 3명은 로또복권의 수익 기금으로 추진되는 사회봉사 활동을 홍보하는 데 동참하기로 했다. 탤런트 김혜자가 1991년 국제 기독교 구호단체인 월드비전의 ‘얼굴’로 홍보 대사를 맡을 때만 해도 ‘홍보대사’란 말은 낯설었다.

하지만 요즘은 웬만한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의 소개에서 ‘모단체의 홍보 대사로 활약중’이라는 말이 으레껏 붙는다. 스타나 사회 유명 인사의 프로필에 당연히 따라붙는 필수 조건이 된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연예계 일각에선 “홍보 대사 직함 하나쯤 없으면 체면이 안 선다”는 우스개 소리가 나돌 정도다.

활동 분야도 다양해졌다. 예전에는 사회에서 소외된 장애인이나 불우 어린이, 노인 등을 돕기 위한 공익적 홍보 대사가 주를 이뤘지만, 지금은 이익 단체나 기업까지 홍보 대사로 구색을 갖추는 때다. SBS-TV 드라마 ‘올인’의 주인공 이병헌은 극중에서 수입차인 ‘아우디 뉴A8’을 타고 가는 장면을 찍은 뒤 ‘아우디 홍보대사’로 임명돼 관심을 모았다.

또 LG패션은 최근 선보인 정장 브랜드인 TGNT스타일을 선호하는 20~30대 젊은 남성들을 대상으로 ‘TGNT 홍보대사 선정 이벤트’를 벌여 화제를 뿌리기도 했다.


이미지와 인기가 선정 잣대

인기가 높다 해서 홍보 대사가 되는 것도 아니다. 축구선수 송종국을 ‘금연침’홍보 대사로 위촉한 보건복지부와 대한한의사협회는 “평소의 성실한 자세는 물론, 청소년들 사이에서의 높은 인지도가 선정의 이유”라고 설명했다. 지난 5월 탤런트 지성을 홍보대사로 임명한 대한간호협회 또한 홍보대사의 자격으로 ‘깨끗하고 성실한 이미지’를 들었다. 인기와 더불어 이미지가 홍보대사 선정의 중요한 잣대로 떠 오른 것이다.

해당 기관과의 각별한 인연으로 홍보 대사를 맡는 이들도 있다. 혼혈 아동을 돕는 펄벅재단의 홍보 대사로 활약하고 있는 가수 쏘냐는 그녀 자신이 주한미군과 한국인 어머니를 둔 혼혈인. 출생 직후 아버지가 미국으로 돌아가고, 어머니마저 중 1때 사망해 힘든 어린 시절을 보낸 쏘냐는 펄벅재단을 가족 삼아 의지하며 성장한 내력이 있다. 그녀에게 홍보대사란 보은(報恩)의 길인 셈이다. 그런가 하면 탤런트 전원주는 ‘시(市)와 이름이 같다’는 특이한 연유로 강원도 원주시의 명예 홍보 대사에 위촉되기도 했다.

그렇다면 홍보 대사가 하는 일은? 물론 ‘홍보’다. 일단 인기 연예인이나 유명 인사를 홍보 대사로 앉히면, 각종 매스컴에서 ‘알아서’ 홍보해 주니 효과가 높을 수밖에. 그렇다고 단순한 ‘얼굴 마담’이 아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전흥윤 홍보팀장은 “대중과 친근한 얼굴이 우리 일을 알려 주니, 어려운 기부나 도움 요청이 보다 쉽게 성사되는 편”이라며 “홍보 대사의 역할이 점차 강조되고 있는 시대”라고 말했다.

행사의 성격이나 목적에 따라 다르지만 많은 홍보 대사들은 홍보 영상물의 모델로 출연하고 기념 행사에 참여하는 게 일반적이다. 바쁜 스케줄이지만 자원봉사자로 뛰는 경우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러한 활동과 상관없이 언론에 자주 노출되는 직업 특성 자체만으로도 ‘걸어 다니는 홍보 간판’의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고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펄벅재단 홍보팀 이지영 사회복지사는 “인터뷰에서 슬쩍 언급만 해줘도 기관이나 캠페인의 인지도가 올라간다”고 말했다.


무분멸한 위촉, 겹치기도 다반사

그렇다고 인기 있는 스타가 반드시 훌륭한 홍보 대사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홍보 대사로 가장 선호되는 연예인은 최불암, 안성기, 김혜자 같은 중견 배우. 1회성 이벤트 참여보다, ‘성의 있게, 지속적으로’ 활동해 줄 사람을 원하는 때문이다. “한창 뜨는 어린 스타를 초청하는 것은 정계 유력 인사를 모시는 것만큼 어렵다”는 게 공공연히 떠도는 얘기다. 상대적으로 중견 연예인들이 선호되는 이유다.

연예인 홍보대사 선임 경력이 많은 한 복지관계자는 “홍보대사로 임명하고도 심지어 얼굴 한 번 못 본 경우가 있다”며 “스케줄 조정을 위해 해당 스타의 매니저와 수 차례 연락만 하다 끝나 버렸다”고 하소연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스타는 자신이 홍보 대사였던 사실도 모르고 있더라는 것.

홍보 대사가 인기를 끌다 보니 일부의 무분별한 위촉도 문제다. “홍보 대사는 한 기관이나 캠페인의 ‘얼굴’입니다. 그런데도 한 연예인이 수십 개 단체의 홍보를 맡거나, 반대로 한 단체에서 수십 명의 홍보대사를 선임하는 등 홍보 대사가 양산되면서 대표성이 약화돼 가고 있습니다. 도대체 누가 어디의 홍보대사인 줄 알 수나 있어야죠?” 한 복지관계자의 개탄이다.

홍보대사의 선정에 눈을 돌리기 보다 홍보대사로부터 내실 있는 활동 성과를 끌어내는 데 고민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행사 주최와 연예인, 모두 즐거운 윈윈 게임의 룰이 필요한 시점이다.

배현정 기자


배현정 기자 hjba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