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의 눈] 콩가루 집안? 권력?

술만 마셨다 하면 망가지는(?) 여성이 있었다. 맨 정신일 땐 겁먹은 사슴처럼 눈을 크게 뜨고 몸을 사리다가도 술만 들어가면 흐느적거리며 휘감기는 야누스가 되곤 했다. 이 여성의 주변 사람들을 대상으로 어느 심리학자가 조사를 했더니, 그녀에 대한 평판이 극명하게 엇갈렸다.

맨 정신일 때 처음 만난 사람은 80% 정도가 그녀의 나쁜 술버릇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그녀는 정숙하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반대로 그녀의 술 취한 모습을 먼저 본 사람은 80%가 ‘그렇고 그런’ 여자로 치부했다.

모양새가 망측한 남녀간의 성관계가 탄로나면 흔히 뒤에선 이렇게 숙덕인다. “세상에, 저 인간들 그렇게 안 봤는데…” 그러나 사람을 제대로 못 본 주변 사람들의 눈썰미에도 문제가 있다.

이렇듯 사람의 첫인상은 쉽사리 바뀌지 않고 오래 간다. 자칫하면 고정관념으로 못 박히기도 한다. 고정관념을 바꾸려면 더욱 힘이 드는 게 요즘 세상이다. ‘개꼬리 3년 묻어둔다고 소꼬리 되나’ ‘호박에 줄 친다고 수박되나’ ‘걸레는 빨아도 걸레’라는 몹쓸 험담들은 고정관념 바꾸기가 얼마나 힘든지 보여주는 소리다.

사람만이 아니다. 어떤 조직이나 기업, 단체, 심지어는 (권력을 지닌) 정권까지도 첫 인상은 중요하다. 출범 5개월에 불과한 노무현 정부의 이미지가 대선자금 문제등으로 자꾸 구겨지고 있다.

김영진 농림부 장관이 ‘새만금 공사를 잠정 중단하라’는 법원의 판결에 사표를 던졌을 때 어떤 이는 참여정부를 ‘콩가루 집안(권력)’이라고 했다. 출범 당시 코드가 맞는 인물로 국정을 운영하겠다며 운동권 출신들로 함께 일할 각료ㆍ참모들을 뽑을 때 행정 실무에는 아마추어지만 결속력만은 단단하겠다고 생각했는데, 웬걸! 사법부 판단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앞뒤 가리지 않고 장관직을 집어던지는 판이다.

운동권이란 겉무늬만 코드가 맞았을뿐, 권력 속에서, 또 충돌하는 다양한 이해갈등 속에서 몸과 마음을 던져 봉사하는 화학적 결합은 서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본다.

물론 김 장관이 농촌운동권 출신이지만 민심을 읽어야 하는 정치인이라는 점을 모르는 바 아니다. 내년 총선을 염두에 둔 ‘속내’도 이해할만하다. 새만금 판결로 꼴이 우스운 장관으로 계속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보다는 사표를 던지는 모양새로 지역(전북)의 영웅이 되자는 계산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사실상 홧김에 장관직을 몇 개월만에 내팽개치는 행동은 자신과 참여정부의 이미지마저 우습게 만들었다는 생각이다.

정부 각료야 코드와 전문성을 고려해 선택한 카드라 치고, 지난 대선에서 한배를 탔던 정대철 민주당 대표는 또 어떤가? 그는 굿모닝시티 윤창열(구속) 대표로부터 돈 받은 혐의로 대표직은 물론 정치인으로서의 생명이 끊어질 위기에 처하자 마치 물귀신처럼 대선자금 문제를 걸고 넘어졌다.

노 대통령의 당선으로 세상이 많이 변했다지만 대선자금은 여전히 쉽게 건드리지 못할 성역으로 남아 있는 게 현실이다. ‘함께 공개하자’는 노 대통령도, ‘먼저 까라’는 한나라당도, ‘그렇다면 우리가 먼저 밝히겠다’는 여당도, 그렇게 쉽게 전부를 까발기지 못할 비밀금고가 바로 대선자금이다.

노 대통령도 정 대표의 발언으로 돼지저금통 모금액 등 대선자금 의혹이 증폭되자 핵심 참모들과의 구수회의에서 정 대표에게 불편한 심경을 나타냈다고 한다. 정 대표는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의 선대위원장을 맡아 대통령 만들기에 앞장선 노 후보 진영의 맏형이나 다름없었다. 그런 그가 자신의 곤경에서 벗어나기 위해 정권 전체의 목줄이 걸린 대선자금을 들먹였으니 소위 노무현 진영의 코드나 팀워크는 ‘망가진 것’이나 진배없다.

그 뿐인가? 노 대통령의 386 패밀리로 분류되는 안희정 민주당 국가전략연구소 부소장도 나라종금 정치권 로비의혹 사건에 휘말리자 대선자금 운운하고 넘어졌다.

그들을 모두 ‘패밀리’라고 하기엔 내부 결속력이나 인간적 신뢰도가 너무 떨어진다. 이너서클에서 “충성심이 약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YS, DJ와 달리 노 대통령의 인맥이 약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권력내 수평적 리더십을 강조하면서 수직적 개념의 충성심은 약해졌다는 분석도 있지만 그 정도라면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다.

문제는 대통령이든 장관이든 공직에 대한 권위가 떨어져 나타난 현상이었을 때다. 대통령 마저 ‘못해 먹겠다’고 하는 판이니 장관 자린들 ‘나 관두고 싶으면 관두는 거지’라는 생각을 안 하게 될까? 그러나 공직의 권위와 책임, 명예는 추락해서는 안되는, 가치 있는 것이다.

노 대통령은 그간의 권위주의적 행태를 바로 잡는다고 할 지 모르지만 그게 그 자리의 권위마저 떨어뜨렸다면 큰 문제다. 나아가 대통령의 권위가 주변 인사들에 의해 ‘콩가루 권력’으로 전락했다면 지금이라도 주변을 다잡아야 한다. 권력의 첫인상도 사람 못지 않게 오래 간다.

이진희 부장


이진희 부장 jinh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