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식의 문화읽기] 불륜과 일부일처제

“우리 동거나 해 볼까?”

“지금, 당신의 결혼은 안녕하십니까?”

“남편 말고 애인이 필요해. 아내 말고 여자가 필요해.”

드라마 ‘옥탑방 고양이’와 ‘앞집 여자’, 그리고 영화 ‘바람난 가족’의 홈페이지 메인 화면에 등장하는 카피들이다. ‘옥탑방 고양이’가 하룻밤의 실수로 시작된 젊은 남녀의 어설프면서도 알콩달콩한 동거에 관한 이야기라면, ‘앞집 여자’는 권태기에 접어든 부부가 들키지 않고 서로 맞바람을 피는 과정을 그리는 드라마이다.

8월 중순에 개봉 예정인 영화 ‘바람난 가족’에서는 남편은 젊은 여자와, 아내는 이웃의 고등학생과, 시어머니는 초등학교 동창과 바람이 나는 ‘콩가루’ 집안이 집중적으로 다루어질 것이라고 한다. 혼전동거, 맞바람, 콩가루 집안으로 이어지는 흐름이 무척이나 상징적이다.

‘옥탑방 고양이’의 혼전동거가 결혼제도에 대한 젊은 세대의 불신과 불안을 간접적으로 대변한다면, ‘앞집 여자’는 일부일처제의 내부적인 위기와 혼란을 ‘리스크 없이 바람 피우기’라는 코믹한 설정으로 대체하고 있으며, ‘바람난 가족’은 한 걸음 더 나아가 결혼제도가 내부로부터 붕괴될 것이라는 불길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관련 홈페이지들을 둘러보는 과정에서 무척이나 인상적인 문구를 발견했다. ‘앞집 여자’의 홈페이지에 걸려있던 ‘명랑불륜 코미디’라는 카피였다. 처음에는 젊은 부부의 맞바람이라는 다소 껄끄러운 소재를 로맨틱 코미디의 문법에 근거해서 다루어 보겠다는 기획 의도를 재치있게 표현한 문구로만 생각했다. 우여곡절은 있겠지만 심각한 파탄은 없으니 안심하고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있어 달라는 의미로만 받아들였던 것이다.

하지만 두 단어 사이에 가로놓인 아득한 거리와 격차를 감지하게 되면서 묘한 흥미를 느끼게 되었다. 과연 불륜이 명랑한 분위기 속에서 다루어질 수 있는 소재인가라는 생각에 이르자, 그제서야 명랑불륜이라는 말이 대단히 의미심장한 맥락을 끌어들이고 있는 언어의 조합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워낙 민감한 문제라서 여전히 막연하기는 하지만, 적어도 불륜에 대한 사회적인 코드나 태도의 변화를 함축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로 보인다.

불륜은 가정비극의 중심 소재이다. 불륜(不倫)이라는 한자어의 의미와도 관련이 있겠지만, 불륜과 관련된 사회문화적 태도는 근원적으로 윤리적인 것이다. 불륜과 불륜 아닌 것을 가르는 도덕적 기준은 일부일처제와 부부-자녀 중심의 가족관계로부터 주어진다.

불륜의 사전적 의미는 인간적인 도리를 저버리는 일이겠지만, 구체적으로는 일부일처제에 근거한 윤리를 위협하고 위반하는 사건과 행위를 의미한다. 불륜을 소재로 하는 가정비극에서 윤리적인 정당성이 가정을 지키려는 의지가 있는 사람에게 주어졌던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남성이 불륜의 장본인으로 제시되는 작품이 많은데, 이 경우에 불륜은 현대사회가 남성중심주의와 일부일처제의 모순적인 결합이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중요한 모티프이기도 하다. 보다 매력적인 이성(異性)의 출현과 관련이 있는 위기상황이며 결코 일상적이지 않은 예외적인 사건이라는 것이 불륜과 관련된 문화적 전제였다.

하지만 최근의 영화와 드라마에서는 불륜의 성격과 의미가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외부에서 개입하는 이성이 위기의 본질적인 이유로 제시되지 않는다. 외부적 요인과 무관한 것은 아니지만, 불륜이란 일부일처제에 잠재되어 있던 가능성들의 현실적인 발현이라는 사실이 상대적으로 강조된다.

또한 불륜을 도덕적인 위반과 관련된 비극적인 사건으로 다루지 않는다. 명랑불륜이라는 말에서 감지할 수 있듯이, 불륜이란 비극으로 다루기에는 상투적인 사건이기 때문에 오히려 일상적인 사건으로 보아야 한다는 태도가 강하게 드러난다.

불륜의 일상화와 더불어 나타나는 또 다른 양상은 불륜이 도덕적인 관점에서 관찰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리의 일상이 도덕에 대한 별다른 자의식 없이 영위되듯이, 최근의 영화와 드라마에 등장하는 불륜은 도덕적인 갈등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한 가정의 남편과 아내 사이에서 발생하는 도덕적인 선택의 문제라는 성격은 부분적으로만 유지되고, 일부일처제와 결혼제도의 정당성에 대한 반성적인 문제제기라는 성격이 상대적으로 강화되어 나타난다.

최근의 문화적 텍스트에 등장하는 불륜은 일부일처제에 대한 불만을 반영한다. 한국사회에서 일부일처제에 근거한 결혼제도의 정당성이 지금처럼 의문시되어 본 적은 없었다고 해도 결?과장이 아닐 것 같다. 그렇다면 결혼제도와 일부일처제가 이처럼 문제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글을 이어서 살펴보도록 하자.

김동식 문화평론가


김동식 문화평론가 tympan@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