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수위 넘은 軍 성추행사병에서 지휘관까지…꼬리무는 병영내 성범죄 사건

"군인이 아니라 성 노리개였다"

위험수위 넘은 軍 성추행
사병에서 지휘관까지…꼬리무는 병영내 성범죄 사건

군 병영 내 성추행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군이 ‘성범죄와 전쟁’을 선포했다. 군내 성추행은 그동안 군대를 다녀온 수많은 예비역들의 입 소문을 타고 전해졌으나 수십년 동안 그 실상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다. 그러나 7월 11일 취침시간에 내무반에서 후배 병사를 성추행한 병사가 구속된 사건을 시작으로 그 추악상이 하나 둘씩 드러나고 있다.

국방부는 최근의 잇단 성 군기 문란과 관련, 14일 ‘군 기강 확립지침’을 일선부대에 시달했다. 육군은 홍갑식 참모차장을 단장으로 하는 성범죄근절 대책반을 구성, 부대내 성추행 실태를 정확히 파악해 특별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청와대 관계자는 “대통령이 직접 나설 문제가 아니라고 판단해 언급을 자제하고 있을 뿐 군내 성추행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 들이고 있다”고 전했다.

국방부는 정신교육과 예방교육을 강조하고 있으나 지휘관을 통한 사고예방에 대한 회의론이 적지 않다. 부하 병사를 성추행한 대대장이 나오고 영관급 군의관의 부하 간호장교 성희롱 사건까지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무기명 신고의 활성화 대책과 시민단체를 통한 군 성범죄 실태조사도 검토되고 있다.

국방부 관계자는 “자녀를 군에 보낸 국민이 불안해 한다면 이는 군 전체의 사기와 전력에도 큰 손실”이라며 “성폭력 추방은 강한 군대 만들기를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봇물 터지듯 계속되는 사고

쉬쉬하던 군내 성추행의 이면이 본격적으로 드러난 계기는 육군 모사단 김모(20) 일병의 자살사건. 김 일병은 포상휴가를 마치고 귀대를 앞둔 6월9일 경기 의정부시의 25층 아파트 옥상에서 몸을 던져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조사 결과 김 일병은 지난 5월 내무반에서 일석 점호 후 같은 부대 선임 병사 김모 상병(구속)으로부터 2차례에 걸쳐 강제로 성추행을 당한 뒤 심한 수치심을 느꼈던 것으로 밝혀졌다.

또 한달여가 지난 7월 13일에는 지휘관인 대대장이 새로 전입 온 이병을 10여 차례 자신의 사무실에서 성추행한 혐의로 구속돼 충격을 안겨 주었다. 이어 15일에는 충남지역 한 군병원 군의관(중령)이 여군 간호장교를 회식장소 등에서 성추행 한 사실도 밝혀졌다.

2001년 사단장의 여군 장교 성추행 사실 등이 적발되면서 군은 ‘성적 군기문란 방지 규정’을 만들었으나 결과적으로 병영 내 성추행 예방에는 별다른 효과가 없었던 것이다.

군은 이번 사고들을 계기로 군내 성추행 실태에 대해 광범위한 설문을 실시하기로 함에 따라 그 동안 묻혀있던 사건들이 쏟아져 나올 가능성도 높다.


신고 못하는 경우가 훨씬 많아

국방부는 성범죄 처벌 현황 외에 병영에 만연해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성추행 사건에 대해서는 정확한 자료를 갖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문제는 성범죄로 처벌 받은 자보다 처벌 받지 않은 인원이 훨씬 더 많을 것이라는 점이다. 최근 전역한 한 예비역 병장은 “대부분 군 생활을 편하게 하기 위해 수치심을 견뎌 내기 때문에 겉으로 드러나는 일은 거의 없다”며 “용감하게 신고를 하는 경우가 얼마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천주교 인권위원회가 국가인권위의 의뢰로 지난 해 9월부터 3개월간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에 따르면 군내 성범죄가 위험수위에 도달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현역 232명과 전역 1년 미만의 재학생 140명을 대상으로 한 이 조사에서는 ‘군 복무시 성적 접촉행위를 당한 경험이 있느냐’는 질문에 9.1%(34명)가 ‘있었다’고 답했다.

민주당 정대철 의원은 2000년 국정감사를 통해 1998년 이후 2년 6개월간 현역 장병들의 성범죄는 강간 244건과 동성간 추행 133건을 포함해 666건이 발생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성범죄에 대한 무감각

병영내 성범죄를 부추기는 요인 중 하나는 성추행에 대한 군내 ‘불감증’이라는 지적이다. 새로 전입 온 신병의 성 경험담 발표와 가벼운 성기 접촉쯤은 별다른 문제 의식 없이 일종의 통과의례로 받아들여지는 문화가 존재하는 게 현실이다.

특히 성범죄 자체가 잘 드러나지 않는 이유는 가해자는 물론 피해자도 수치심 탓에 공개를 꺼리기 때문. 상명하복이 엄격한 군의 특성상 병영내 성추행은 공개보다는 침묵 속에 묻히는 경우가 더 많을 수 밖에 없다. 군의 한 관계자는 “피해자의 신원이 노출되지 않는다는 전제 아래 군내 성추행문제를 적극 공개해 경각심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인사는 “여러 차례 군내 성추행에 대한 경보음이 울렸음에도 군 당국이 실태 파악조차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더 충격”이라며 군의 무감각을 질타했다.

군내 성폭력은 일반적인 성폭행보다 정신적 후유증이 훨씬 심각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고민을 털어놓을 창구가 사실상 전무하고, 엄격한 명령-복종의 수직구조가 피해자들의 침묵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폐쇄 공간에서 대체물로서 성적인 쾌락을 추구하다 보니 그 양태가 더 폭력적일 수밖에 없다. 피해자 대부분은 두려움으로 침묵을 지키지만, 정상적인 자아로는 감당할 수 없는 경우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하기도 한다.

성폭력상담소 이덕화 간사는 “권력관계가 워낙 강하기 때문에, 인권침해 정도가 더욱 심각하다. 성폭행은 흔히 ‘여자만 당하는 것’이라는 인식 때문에 피해자들의 수치심이 더욱 심하며, 동성애에 대한 강한 혐오감으로 왜곡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처벌기준 강화, 내무반 개선 병행해야

미 육군은 성폭력 가해 장병에 대해서는 구속은 물론 불명예 제대, 영구자격 박탈 등 엄단을 원칙으로 한다. 실제로 주한미군 군사법정은 지난 해 경기 의정부 미 2사단 영내에서 카투사 1명을 흉기로 위협해 성폭행한 미군 병장에게 올해 2월 징역 30년을 선고했다. 성폭행뿐 아니라 음란, 변태행위, 허위진술, 사전 모의 혐의 등이 추가로 적용된 중형이지만 성폭력에 대한 미군의 강력한 처벌의지를 보여준다.

우리 군에서는 군내 성추행에 대해 ‘계간 또는 추행을 한 장병에 대해 1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한 군 형법 92조를 적용한다. 처벌이 약하다는 지적에 대해 모 사령부 법무참모는 “일반 형법의 강제추행죄를 적용,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할 수도 있지만 가해자와 피해자간 합의가 이뤄지면 적용이 불가능해 문제”라고 말했다. 군 특성상 대부분은 합의가 이뤄지기 때문에 군형법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때문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처벌기준을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며 “소대 단위의 침상형 내무반이 폭력 및 성추행을 가능케 하는 원인제공을 하는 면이 있기 때문에 분대 단위의 침대형 내무반 개선 작업도 서두르겠다”고 말했다.

김정호 기자


김정호 기자 azur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