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러기아빠 모임 대표 박상빈씨

[갈매기 아빠의 여름나기] '홀로살기'는 자기와의 싸움

기러기아빠 모임 대표 박상빈씨

7월2일 오전 9시5분. 서울 도곡동 한 오피스텔에서 ‘기러기 아빠’인 신모(36)씨가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머리맡에는 유서가 놓여있었다. “여보, 당신을 사랑했고 지금도 그래요. 잘 살아요. 미안해요.”

신씨는 지난해 여름 두 자녀를 캐나다로 조기유학 보내고 아내마저 출국한 뒤 외로움과 정신적 고통을 겪어왔다. 회사마저 운영난을 겪으면서 가족에게 보낼 학비와 생활비 문제로 고민했다. 우연히 만난 한 여성과 불륜에 빠졌고, 급기야 아내로부터 이혼을 당하자 죄책감에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이젠 홀로 사는 ‘기러기 아빠’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자기문제 해결을 위한 적극적인 대화채널 구축이 강구돼야 할 시기죠.” 서울을 비롯해 전국 공식회원만 200여명에 달하는 ‘기러기 아빠 모임’ 대표 박상빈(42ㆍ㈜제니스월드 대표)씨는 19일 신씨의 죽음과 관련 이같이 말했다.

올 7월로 모임설립 1주년을 맞는 ‘기러기 아빠 모임’은 매월 정기월례회 개최를 비롯, 지역별 비공식 모임을 수시로 가질 만큼 끈끈한 정으로 엮어진 이색 동호회다. 주로 뉴질랜드에 자녀를 조기유학 보낸 기러기 아빠들이 주축이 된 이 모임은 현지 유학 실태와 실생활에 관련된 각종 정보를 공유하고 골프와 등산 등 취미 생활을 함께 즐기며 인간적인 신뢰감을 쌓아가고 있다.

박씨는 3년 전 두 자녀와 아내를 뉴질랜드로 떠나 보낸 후 뉴질랜드 유학전문사이트(www.nzgaza.com)를 운영한 것이 인연이 돼, 자녀를 조기 유학 보낸 기러기 아빠들 모임의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박씨에게 ‘기러기 아빠’들의 홀로 살기 고충과 이를 극복하는 방법에 대해 들어 봤다.


해방도 잠깐, 가족애 '새록새록'


- '홀로 살기'에 어려움은 무엇인가.

“자기와의 싸움이다. 처음 6개월간은 과연 조기 유학을 보낸 것이 잘 된 선택인지 고민도 되고, 홀로 밥을 챙겨 먹으면서 과연 나의 인생은 뭔가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또 홀로 있다 보면 갑작스러운 해방감에 방황도 한다. 처음엔 로맨스를 그려 본다.

하지만 그것도 부질 없는 허상이란 걸 깨닫는다. 경제적 어려움도 있다. 월급쟁이 수입이 뻔한데 수입 90%를 보내야 한다. 아내에 대한 걱정도 많다. 혼자 아이들 교육을 책임지느라 스트레스를 받지만 풀 곳이 없는 것이 문제다. 최근 아내가 한국에 나와 미용수업을 3개월 받고 돌아가 현지에서 미용실을 차렸다. 아이들이 더 높이 날 수 있도록 날개를 달아줄 수 있다면 이 모든 고통도 달갑게 삼킬 수 있다.”


- 여름철을 홀로 어떻게 이겨 내는가.

“최근 19년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독립했다. 메모리 반도체 장비부품 제조회사를 차렸다. 바쁜 영업활동으로 밤낮없이 뛰다 보면 오히려 홀로 있어 생활이 한결 편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업에 전념하고 있다. 바람도 한 번 피고 싶은 생각도 든다.

아내와 생이별하고 혼자 있다 보면 별별 생각이 다 든다. 하지만 가족들에 대한 믿음을 생각하면 그것도 잠시뿐이다. 집에 들어오면 아이들에게 매일 이메일 편지를 한 통씩 쓴다. 최근에는 화상 채팅을 통해 아이들과 얘기하는 것이 가장 즐거운 낙이다.”


목적의식 갖고 취미 살려라


- '기러기 아빠' 생활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은.

“인생의 뚜렷한 목적 의식을 세우고 취미를 살려야 한다. 매일 신세 타령만 할 수는 없다. 잡념을 없애야 한다. 아이들에게 뒤쳐지지 않으려고 영어 회화 공부를 열심히 하거나 취미에 맞는 운동을 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나는 시간 날 때마다 골프를 쳤다. 3년 만에 프로 자격증을 땄다. 이민을 간다면 골프장을 개장할 수 있는 밑천이 된다.

아내와 함께 자녀를 조기 유학 보낸 사람 중 90% 이상이 이민을 생각한다. 이민을 가기 앞서 그곳에서 무슨 일을 할 것인지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기러기 아빠 모임은 1개월에 한번 정모를 갖고 강남ㆍ강북 지역별로 수시로 번개팅을 통해 만나 개인 문제들을 털어놓고 얘기하며 해결책을 찾는다. 9월에는 ‘기러기 아빠 합창단’이 발족할 예정이다. 아빠들끼리 열심히 노래를 연습해 연말에 뉴질랜드에서 기러기 가족 축제를 벌일 계획이다.”


- 예비 기러기 아빠들에 대한 조언 한마디.

“‘친구 따라 강남 가는 식’의 부화뇌동은 반드시 후회하기 마련이다. 자녀를 조기유학 보내기 앞서 방학 철에 해외 언어 연수를 보내 아이의 적응력을 키우는 것도 한 방법이다. 나는 2년간 준비한 뒤 보냈다. 가족들과 함께 꼭 현지를 찾아가 직접 지역의 상황을 살펴 본 뒤 조기 유학을 결정해야 한다. 여행을 통해 ‘진짜 이곳은 우리가 살만한 곳’이라는 확신감을 가져야 후회하지 않는다. 웬만하면 ‘기러기 아빠’ 생활은 말리고 싶다. 가족에 대한 굳은 믿음과 철저한 자기 관리가 없으면 ‘나홀로’ 생활은 정말 힘들다.”

장학만기자


장학만기자 local@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