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6이여 권력을 탐하지 말라"

[석학에게 듣는다] 한상진 서울대 교수

"386이여 권력을 탐하지 말라"

‘나는 몸이 부들부들 떨리는 것을 느꼈다. 진정으로 무력감과 절망감이 나를 엄습했다. 이런 광경을 그저 바라 보고만 있는 내가 미웠고 한심스러웠다. 정말 산다는 것이 이런 것인가.’

지난 시대, 어느 교수는 이렇게 절망했다. 사회대 행정실에 불이 나자 방화범을 찾는다는 이유로 전경들이 인문대와 사회대 건물을 봉쇄한 뒤 최루탄을 남발해 사람들을 굴비 엮듯 끌고 가던 1983년이었다. 그 해 봄, 서울대 캠퍼스에서 목도한 사건은 당시로서는 일상에 가까웠다.

그러나 한상진(57ㆍ서울대 사회학) 교수에게는 실존적 위협으로 다가왔다. 독일 빌레펠트대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하던 시절, 현지의 TV를 통해 본 광주 항쟁 다큐멘터리 속의 참상과 그대로 오버 랩 되는 것이었다. 계엄군이 시민군을 확인 사살하는 장면 등을 지켜 본 그는 대다수 기성 세대가 그렇듯 내면의 목소리를 방치하는 데 실패했다.


영혼의 떨림으로 다가오는 기록들

행여나 다칠세라 꼭꼭 챙겨오다 지난 6월 한 권의 책으로 거듭난 ‘386세대, 그 빛과 그늘’(문학사상사刊)은 그가 받아 둔 학생들의 리포트를 묶은 책이다. 개인의 기록이면서 당대 집단무의식의 발로이기도 했던, 더러는 눈물을 닦으며 읽어 나갔던 파편들이 하나의 의미있는 망으로 엮이게 된 것은 그의 의식적 노력 없이는 불가능했다.

신문과 TV 등 매스컴의 집중적 관심이 입증해 준다. 어두웠던 과거를 명징한 의식 아래로 끌어내 동시대인과 공유하려는 그의 노력은 성공했다.

‘솔직히 아직도 어떤 길이 바른 길인지,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이 내가 지향해야 할 모습인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분명한 건 나의 낡은 의식을 깨고, 새롭고 정말 참된 나의 상을 만들어 가야 한다는 것뿐이다.’ 1985년 서울대 사회복지학과에 입학, 89년 졸업한 나경선씨의 글이다.

그는 대학원에서 사회복지학 석사 학위를 받고 하상 장애인 종합 복지관과 성민 장애 아동 어린이집에서 근무하다 사법고시 40회에 합격, 현재 울산지방법원 판사로 재직중이다.

차라리 영혼의 떨림이라고 해야 걸맞는 기록들이다. 갖가지 이모티콘과 이른바 ‘아??’한 담론들이 횡행하는 21세기에 그동안 그렇게 돌아다 보기 싫어 했던, 또는 귀찮아 했던 우리의 과거가 어느날 수면 위로 부상한 것이다. 격동의 시간, 독일에 있다 81년 귀국해 조교수로서 서울대 사회학과 강의를 맡았던 그에게 캠퍼스는 사회의 모순을 또 다른 차원으로 가시화해 내는 공간이었다.

잃어 버린 시간으로의 여행을 가능케 한 것은 ‘생애사적 보고서’라는 묘한 제목의 리포트였다. 1981~89년 동안 일반 교양과목인 사회학 개론 수강생을 상대로 한 학기도 거르지 않고 받아 온 숙제였다. 기록의 연속성을 위해 안식년도 마다하지 않고 수집ㆍ정리했다.

한 교수는 “리포트를 읽어 나가면서 개인적으로 감동을 느꼈고, 위로도 받았다”며 “시간이 지나면 굉장히 중요한 자료가 될 거라는 확신이 섰다”고 말했다. 교수 연구실이 이사를 갈 때면 어김 없이 그 리포트 뭉치의 안부부터 먼저 살폈다.

그리고 1995년 서울대학으로부터 ‘개혁지향적 중산층의 가치관 연구’라는 프로젝트를 따내, 서울대생의 가치관 조사에 들어가 2,400여편의 자료를 새로 수집했다. 그 중 자료적 가치가 높은 1,869편이 선별했고, 학과 사무실이나 동기생 등의 경로를 통해 절반 가량의 주소를 확인할 수 있었다.

현재 상황을 묻는 설문 조사 결과 650여명이 회신을 했다. “보통 우편 조사 회신율이 20~30%인데 비해 굉장히 많이 온 셈이죠.” 자신의 리포트를 필사본으로 10년 뒤 갑자기 받았다고 생각해 보자. 식구에게까지도 마음을 터 놓을 수 없었던 시대, 자신의 내면을 고백한 글을 훗날 갑자기 받게 된다면 당신은 어떤 마음이 들까?

현재 그 중 210편에 대해 컴퓨터 입력 작업이 완료됐는데, 이번에 처음 책으로 묶여 나온 것은 그 중에서도 선별한 34편이다. 묻고 물어 알아낸 주소로 편지를 띄워, 본인의 동의를 얻은 다음에야 출판했다. 이 책은 강단과 사회의 경계는 물론 시간의 벽까지 넘나들며 이뤄진 독특한 저작물인 것이다.

“80년대는 모든 것에 대한 반성이 이뤄졌던 탈 인습의 단계였어요. 우리 사회의 변화 방향, 기본 모순, 변혁의 주체, 전략과 방법론 등을 놓고 지적인 갈증이 엄청나게 컸던 때였죠.” 다른 말로, 80년대는 큰 가능성의 시기였다는 것. 선생은 그 가능성의 한 축이었다.


변혁의 주체는 누구인가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 식민지반봉건주의 등 당대 지식인 사회를 휩쓸었던 사회 구성체 논쟁에서 제시했던 사회주의적 경로는 오류라고 그는 말했다. 그들의 논의가 언젠가는 소멸될 기구로 국가를 봤다면, 그는 국가 권력을 어떻게 민주화하는가가 오히려 더 중요한 문제라는 신념을 견지해 왔다. 급진 혁명이 아니라 연속 이행 방식이 한국 사회의 변혁에 적합하다는 믿음이다.

선생의 지론인 ‘중민론(中民論)’이 대두되는 지점이 바로 이 대목이다. 그것은 프롤레타리아 계급만이 아닌 중산층까지를 변혁의 주체로 보는 것으로, 그 결정판이 바로 이번에 집중 논의된 386세대다.

‘중민이란 계급이 아니라, 계급을 가로지르는 실천성이 잣대다. 6ㆍ29 선언을 받아 냈던 넥타이 부대 등 우리 현대사에는 중민이라는 독특한 카테고리가 시대의 흐름을 이끌어 왔다. 다름 아닌 386 세대는 중민을 구성하는 핵심 집단이다.’ 이 같은 논지가 확대돼, ‘중심화 변혁 노선의 탐색’(1889ㆍ계간지 ‘사상’ 창간호)과 ‘중민 이론의 탐색’(1992ㆍ문지사) 등 일련의 저작이 빛을 보았다.

그는 “조선시대의 선비 문화에 뿌리를 두고, 해방기를 거쳐 386세대에 이르기까지 결정적 역할을 했던 중민이란 현재 한국 사회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며 “사회의 중심에 있되, 기성 체제에 편입되지 않는 집단”이라고 설명했다. 선생은 화이트 칼라건 노동자건 한 목소리로 민주화를 요구했던 지난 시절의 찬란한 경험을 상기시켰다.

그들에 대한 선생의 기대는 현 상황을 역으로 설명해 주는 것이기도 하다. 현재 한국의 정당은 지역성과 보수주의가 맞대결을 펼치는 기형적 양상에 함몰돼 있을 뿐더러 시민 사회의 대체 기능마저 약해, 중민의 중요성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는 것이다.

“한국은 80년대 겪었던 지각 변동은 현재 반권위주의적 움직임들로 사회 저변에 확대된 거죠.” 한국이 세계 제일의 인터넷 국가라는 사실은 그 징표라는 지적이다. 특히 10, 20대가 인터넷 문화를 주도하는 양상은 변화에 대한 강한 욕구를 단적으로 표출한다는 것이다.

“미선ㆍ효순의 죽음 이후의 촛불 시위, 지난 대선 때의 시민 혁명 등은 우리가 권위적 체제에 대한 도전이 큰 나라라는 사실을 입증합니다.” 중민의 수는 앞으로 시간이 갈수록 현저히 증가할 것이라는 그의 연구 결과는 우리 사회가 앞으로 변화의 요구에 계속 직면할 것이라는 예측과 맞물리는 부분이다.


한국의 중산층과 중민

그는 한국의 중산층을 어떻게 보는가? “기득권적인 보수 중산층과 중민으로 분석됩니다.” 현재 50대 이상의 보수층은 빈곤의 청소년기를 거쳐 산업화의 역군으로서 경제적인 부에 집착한다. 그러나 40대 전반의 중민은 먹고 사는 욕구가 해결된 이후의 행동 양태로 결집된다는 것이다.

“표현의 욕구, 기성에 대한 도전 의식이 강한 그들은 참여에의 욕구가 소유욕만큼 강하죠.” 80년대 이래 지금껏 이어 오는 변화에의 움직임은 모두 중민으로부터 연원한다는 것이다. “반 군부독재에 집중됐던 함성이 성(性), 거리 문화, 가정 해체 등 탈 인습적 가치로 전이된 거죠.”

바로 그 출발점이 80년대였으며 선생은 그 격동의 시절을 학생들이 수업 시간에 제출한 보고서들의 힘으로 지탱했다고 말했다. 술도 힘이 돼 줬다. “교수로서 비참했던 80년대, 신림동 일대에서 술을 많이 마셨어요. 통행금지 시절이라 아예 여관에서 마시기도 했죠.” 책은 그러므로 그 어둠의 시대를 버텨냈던 그와 학생들이, 시대가 함께 쓴 것이다.

이번 작업을 계기로 선생은 종단적 연구(longitudinal analysis)에 착수할 계획이다. 이번 연구가 한 시점에 여러 사람을 설문 조사해 얻은 결과에 근거한 횡단적 연구였다면, 이제는 특정 개인의 성장사를 따라 가면서 사회를 바라보는 인식이 어떻게 변해가는가에 초점을 두자는 것이다. 저술을 위해 구축된 데이터 베이스가 결정적 힘이라는 사실은 말할 필요도 없다.

선생은 “집중 분석 대상을 100명선으로 잡아 몇 년 단위로 쭉 추적해 나갈 생각”이라고 추후 연구 계획을 밝혔다. 외국서는 종종 있지만, 한국서는 많은 비용이 들어간다는 이유로 엄두를 못 냈던 최초의 종단적 분석 방법이다. 이번 386 세대의 연구는 그러므로 한국 사회의 얼개를 본격 해부하는 단초이기도 하다.

선생은 87년의 6월 항쟁을 민주화의 진정한 출발점으로 본다. 현재 노무현 정부가 경륜 부족 등의 이유로 체제 관리 능력에 문제를 드러내고 있는데, 그것은 그 동안 쌓아온 제도적 틀과 노력 등 민주적 장치들이 제대로 작동되지 못 한 데서 비롯된다는 진단 역시 그 같은 맥락이다.

그는 “공통 분모를 찾아내 사회적 협력을 담보하는 시스템을 찾는 데 지혜를 모아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단, 노무현 정부는 당초의 기대가 우려와 환멸로 바뀌는 현상이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고 경고를 빠트리지 않았다. 현재 필요한 것은 사회적 대타협이라는 지적이다. “노동과 자본의 갈등, 지역 갈등 속에서 한반도 평화 정착이라는 화두를 어떻게 잡느냐 하는 것이겠죠.”

선생은 386세대에 대한 당부도 빠트리지 않았다. “권력을 탐하지 말라는 거죠.” 그들의 듯이 어떻건 간에 이제 그들은 권력과 가까이 있으므로, 사회의 눈이 곱지 않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달라는 당부다. 그는 “권력에 비판적이었던 386은 그만큼이나 권력에 예상했던 것보다 빠르게 접근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386세대의 큰 잠재력이 정치적으로 소진될까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선생은 적어도 이번에 책에 함께 오른 34명과는 계속 만남을 가져오고 있다. 분신과 투신의 기억들로 찬란하게 얼룩진 지난 시절의 기억들은 선생을 만나, 우리 사회의 원동력으로서 이 시대와 함께 가고 있는 것이다.

장병욱 차장


장병욱 차장 aj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