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 명품 구입·대여 젊은 층에 인기, 시장규모도 수백억원대

빌려 차고, 바꿔 들고… 실속파 명품족

중고 명품 구입·대여 젊은 층에 인기, 시장규모도 수백억원대

회사원 이모(32ㆍ여)씨는 자타가 공인하는 명품 마니아다. 옷에서부터 가방, 시계, 선글라스 등 액세서리에 이르기까지 명품으로 몸을 두루 장식한다. 루이비통 핸드백, 에르메스 시계, 아르마니 선글라스 등이 주요 구매 품목이다.

누가 봐도 ‘짝퉁(가짜)’이나 저가 브랜드 제품가 아닌 ‘진품’을 애용하는 것에 대해, “무슨 돈으로 구입하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그러나 이씨가 명품을 소비하는 데는 자기만의 방식이 있다. 최신 명품은 아이 쇼핑으로만 만족하고, 구입은 중고 명품 판매점을 이용하는 것이다.

이씨처럼 중고 명품을 구입하거나 대여해 ‘기분’을 내는 중고 명품 마니아들이 늘고 있다. 불황으로 가벼워진 주머니 사정에도 명품을 갖고 싶은 게 이들의 바람. 비록 남의 손때가 묻은 물건이지만 싼값 덕분에 ‘작은 사치’를 누릴 수 있다는 이점 때문에 중고 명품으로 품위를 유지해 나가는 젊은이들이 많다.

중고 매장에선 말끔하게 제품을 수선해 새 것과 진배 없는 제품들을 판매한다. 어떤 것은 한 번도 사용 하지 않아 새 것이나 진배없다. 그래도 가격은 30~50% 정도 할인된 가격으로 거래된다. 이런 중고 명품 매장이 실속파 젊은이들에게 큰 인기를 얻으면서 서울 압구정동과 청담동, 신촌 일대에서만 20여 개가 성업 중이다.


명품 전당포

서울 압구정동에 위치한 명품 전당포(Pawn Bank)인 ‘캐시캐시’. 은은한 실내 조명 아래 아늑하게 단장한 공간이 백화점 명품 매장을 연상케 할 정도로 고급스럽다. 7평 남짓한 매장에는 최신 샤넬, 에르메스, 페라가모, 구찌, 루이비통 등 명품 가방과 액세서리를 비롯, 의류가 제각각 수십만원에서 수백만원의 가격표를 달고 진열돼 있다.

보석은 해외 유학파 출신의 감정사가, 가방이나 의류 등은 명품 매장 근무 경력이 상당한 직원이 감정해 가격을 결정한다. “비교적 경제적 여유가 적은 20~30대는 가방과 액세서리를, 40~50대는 시계와 보석을 주로 구입한다”는 게 매장 점원의 설명이다.

한 20대 여성 고객은 30여 분간 매장 구석구석을 돌며 제품들을 꼼꼼히 살펴 본 뒤 티파니 목걸이 중고 제품을 18만원에 구입했다. 그 고객은 “돈이 많으면 본 매장에 가서 사겠지만, 이 곳에선 한 개 값으로 몇 개를 살 수 있어 한 달에 한 번 꼴로 들린다”고 말했다.

이 곳에서는 중고 명품을 판매하는 한편, 고객들이 갖고 온 명품을 담보로 급전을 대출해 준다. 대출 고객 중에는 자신이 쓰고 있던 명품을 갖고 와서 판 뒤, 받은 돈으로 또 다른 중고 명품을 구입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지난해 4월 서울 대치동에서 문을 연 이 회사는 압구정동과 대구, 울산 등 9곳에 체인점을 낼 정도로 호황을 누리고 있다. 이 회사의 사승리 부사장은 “한 번 쓰던 명품을 다시 거래할 수 있다는 인식이 급속하게 확산되고 있다”며 “장롱 속에서 자고 있던 고급 제품을 다시 거래하는 것은 명품 시장의 거품을 빼는데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중고 명품 사이트와 대여점

중고 명품 사이트에도 고객들이 끊임없이 드나든다. 로데오몰(www.rodeomall.co.kr)은 샤넬, 페라가모, 구찌 등 유명 브랜드의 의류, 가방, 신발, 지갑을 정상가에서 50~80% 할인된 가격에 판매한다.

고객이 맡긴 제품을 20~35%의 판매 수수료를 받고 판매해 주는 위탁 방식으로 운영하는데, 하루 50건 이상의 온 라인 주문이 들어온다. 고객들이 가장 선호하는 품목은 루이비통 가방으로, 매장에 들여 놓기 무섭게 팔려 나간다.

세컨찬스(www.2ndchance.co.kr)는 중고 명품 가방과 신발을 주로 취급하는 사이트다. 해외에서 직접 들여 온 신제품도 판매하는데 전체 상품의 30~40%를 차지한다. 일부 신제품은 5~10% 할인해 준다. 중고품의 경우 1~3 등급으로 나눠 홈페이지에 제품 상태와 가격을 자세히 설명해 놓아 이용하기 편리하다. 2년 전 문을 연 이 매장에는 단골 고객이 많아, 원하는 물건을 구해달라는 요청도 쏟아진다.

중고 명품들의 경매를 알뜰히 챙기는 직장인들도 많다. 신상품의 10%도 안 되는 가격에 살 수도 있다는 장점 때문이다. 최근 열린 중고 명품 시계 경매에서는 까르띠에, 오메가 등 최고 수천만원대의 명품시계 60 여 종이 순식간에 팔려 나가기도 했다.

명품 대여족도 생겨났다. 서울 압구정동에 위치한 ‘럭셔리9’에서는 중고 명품을 대여해 준다. 제품 가격의 30%에 상당하는 보증금과 하루 5,000~1만원의 대여료를 내면 각종 명품 브랜드 제품을 빌려 준다. 최장 1개월까지 대여 가능하고, 빌릴 때에는 신분증을 맡겨야 한다.

까다로운 대여 조건이지만 이용자는 많다. 평일보다는 주말 이용객이 많고 입학이나 졸업식, 연말연시에는 미리 예약을 하지 않으면 제품을 구하지 못할 만큼 인기다. 지방 고객에게는 택배로 물건을 보내 준다.


중고 명품 수선점

중고 명품이 인기를 끌면서 전문 수선업체도 덩달아 특수를 누리고 있다. 서울 압구정동과 명동 등지의 수선업체 3~4곳에는 망가진 명품이 하루 40~50건씩 들어 온다. 상품 일련 번호가 적힌 카드나 보증서가 없어 정상 매장에서 수선을 받지 못 하는 제품들이다.

‘명품 병원’이라고도 불리는 이들 수선업체에서는 끈 떨어진 가방이나 장식이 망가진 구두 등 어떤 명품이든 말끔하게 고쳐준다. 수선 뿐만 아니라 장식도 새롭게 덧대는 등 처방도 다양하다. 서울 청담동에 위치한 중고 명품 수선점인 ‘명동사’를 운영하는 김상배 씨는 “고장 나거나 싫증난 명품을 수선해 새것처럼 사용하려는 사람들이 많이 이용한다”며 “근래 들어서는 똑 같은 디자인이 싫다며 자기만의 개성 있는 연출을 위해 명품 수선을 요청하는 경우도 많이 늘었다”고 말했다. 수선 가격은 천차만별.

최근에는 불황 탓인지 중고 명품 매장을 찾는 손님이 갈수록 증가하는 추세다. 중고 명품 시장 규모는 최소 수백억 원대에 이르는 것으로 업계에서는 추산한다. 반대로 “경기가 호전되면 중고 명품 시장에 찬바람이 불어 닥칠 수도 있다”는 지적도 들린다.

그러나 경기 상황을 떠나 점차 명품 시장의 확대와 함께 중고 시장의 규모도 커질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한 명품 전당포 관계자는 “중고 자동차 시장이 해외 고급차를 위주로 자리 잡았듯, 의류나 액세서리 등 소형 물품도 중고 명품 위주로 시장이 확대될 것”이라고 내다 봤다.

배현정 기자


배현정 기자 hjba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