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대선경선서 부시 호적수로 급부상한 전 버모트 주지사

하워드 딘 "부시는 내가 깬다"

민주당 대선경선서 부시 호적수로 급부상한 전 버모트 주지사

내년 11월 미국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에서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호적수가 뜨고 있다.

대선 레이스를 시작한 워싱턴 정가는 9명의 민주당 대선 경선 주자 중 하워드 딘 전 버몬트주 주지사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당초 최약체로 평가되던 딘 전 주지사가 최근 정치자금 모금과 지지도면에서 급신장하고, 인터넷 세대와 젊은 유권자들을 사로잡고있기 때문이다. 자연 그의 카리스마가 새롭게 분석되고 부시 가문에 비견될 정도로 명문 가문 태생의 의사 출신인 그의 특이한 이력이 워싱턴 정가에서 화제로 올랐다.

7월16일 발표된 대선주자 정치자금 모금액 현황에서 하워드 딘 후보는 4월부터 6월까지 760만 달러를 모아, 조지프 리버맨, 존 케리, 리처드 게파트 등 기라성 같은 유력후보들을 제치고 당내 1위를 차지했다. 이변이었다. 미국 선거에서 모금 실적은 후보 경쟁력을 단적으로 나타내는 지표이다.

더욱 놀라운 점은 모금액의 70% 이상이 250 달러 미만의 소액 기부자에게서 나왔다는 것이다. 딘 후보는 “8만3,041명으로부터 받은 내 자금과 10만5,000명으로부터 3,440만 달러를 거둔 부시측 자금을 비교한다면 누가 풀뿌리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있는지 잘 알 수 있다“고 밝혔다. AP 통신도 “소액기부자의 비중이 30%이하로 작아진 최근 정치 풍토에서 딘의 모금 실적은 가히 혁명적인 것”이라고 극찬했다.


직선적 성격, 젊은층에 어필

그렇다면 그는 어떻게 미국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을까. 해답은 직선적이고 대담한 성격과 젊은 층에 어필하는 출중한 카리스마다.

최근 한 인터뷰에서 딘은 자신에게 어떤 자질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을 받고 너무도 퉁명스럽게 “너무 많다”고 말했다. 또 참을성이 많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전혀 없다”고 이실직고했다. 워싱턴 포스트가 그를 “불 같은 성격의 파퓰리스트, 지칠 줄 모르는 부시 비판자”라고 묘사한 것도 당연했다.

백인, 중산층으로부터 지지를 받고 있는 딘이 부상한 직접적 계기는 이라크 전쟁이다. 개전 당시 기세등등한 부시에 눌려 반대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다른 주자들과 달리 그는 이 전쟁을 명분 없는 전쟁이라고 쏘아붙였다. 보통 배짱으로는 하기 힘든 돌출행동이었지만 분명 선견지명이었다. 전쟁을 찬성했던 리버맨 등 다른 주자들과 비교될 수 밖에 없다.

민주당내 중도 온건 좌파로 분류되는 그는 이같이 직선적인 성격 때문에 젊은 유권자와 네티즌 사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지난 6월 민주당 지지 진보적 단체인 ‘무브온 닷컴’이 4만 여명을 상대로 실시한 경선주자 지지도 조사에서 그는 48.3%라는 압도적인 지지로 1위를 차지한 것이 이를 잘 증명한다. 이런 지지를 바탕으로 그는 정치자금을 대부분 인터넷을 통해 전달받았다.

여기에 딘 지지자들로 구성된 인터넷 모임 ‘딘 전주지사를 사랑하는 모임’과 대중을 사로잡는 로빈 윌리암스, 폴 뉴먼, 수잔 새런든,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등 할리우드 스타들의 조력도 큰 보탬이 됐다.

또한 버몬트 주에서 11년간 주지사로 행정경험을 쌓았다는 점도 높이 평가되는 분위기이다. 경선주자 중 주지사 출신은 딘이 유일하다. 외과의사 출신답게 그는 주지사 재직시 어린이 의료보장을 완벽히 정비하는 한편 만성적인 적자 상태였던 주 재정을 회복시켰다. 그는 건전한 재정만이 약자를 보호하는 사회정의를 실현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미국의 성골, 부시와 닮은 꼴

뉴스위크 최근호는 부상하는 딘이 부시의 복사판이라고 묘사했다. 딘의 가문은 부시 가문처럼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신대륙에 처음 정착한 미국의 ‘성골’이다. 둘은 막강한 후광 탓에 자신감이 넘치고 퉁명스럽다. 딘은 주지사 시절 자신의 정책에 반기를 드는 정치인에게는 야멸찰 정도의 嗾??퍼붓는 것으로 유명했다.

또한 고급 기숙학교를 졸업하고 예일대를 나온 것(딘은 부시의 3년 후배)은 물론 대학시절 낙제를 거듭하면서 술과 파티 속에 찌들었던 것까지 빼닮았다. 이런 운명이 그를 부시의 호적수로 만든 것 같다.

딘은 대학졸업 후 선조들처럼 월스트리트 투자자로 일하다 홀연히 의대를 지원한다. 그는 그 이유를 “교육과 의료만이 사람의 운명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었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는 평범한 의사로 살 운명이 아니었다. 의대 재학 시절 바로 밑의 동생인 찰리가 라오스에서 실종됐기 때문이다. 1968년도 학생운동과 72년 베트남 반전 운동에 깊숙이 참여했던 찰리는 닉슨의 워터게이터 사건이 터진 직후 절망감에 싸여 세계 유랑길에 올랐다.

찰리는 75년 어느날 메콩강 여행도중 라오스 공산군에 잡혀 베트남에서 처형된 것으로 전해졌다. 하워드의 다른 동생 짐은 “찰리는 형제들에게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심어 주었다”며 “기숙학교 시절 반장을 맡는 등 정치적 기질이 농후했던 하워드는 이 일로 보다 신중해졌다” 고 말했다.

하워드는 “나는 찰리 일로 살아남은 자들의 슬픔과 책임을 이해할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의대를 졸업한 하워드는 얼마 후 주 하원에 출마하고 주지사에 도전한다. 그가 이라크전에 반대했던 것도 이런 과거때문인지 모른다.


급진성향, 대중적 지도자이미지 심어야

한참 뜨고 있는 딘이지만 전국 지명도에서는 아직 열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최근 미 갤럽 조사에서 그는 9명 주자중 4위를 기록했다. 고어의 런닝 메이트로 지난 대선에 출마했던 리버맨, 민주당 하원 원내총무를 오래 지낸 리처드 게파트에 비해 상당히 뒤쳐져 있다. 물론 현 지지도보다 지지도 변화 추세만을 본다면 딘은 여전히 가장 주목해야 할 주자이다.

이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그는 두 번째 도약을 준비중이다. 이라크전을 통해 집중 부각된 과격하고 진보적인 이미지를 적절히 중화시키면서 대중적인 지도자로 발돋움하는 것이 도약의 골자이다. 그는 최근 한 지방도시에서 “내가 급진적이어서 나를 지지하지 못하겠다는 말이 나올 수 없도록 하겠다”는 말로 연설을 시작했다.

그는 주지사 시절 리버럴한 의회에 싸웠던 전력을 들추면서 자신이 중도적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더 이상 모난 모습을 보이지 않고 대중을 포용하는 이미지로 선거에 임하겠다는 각오이다. 실제로 그가 내세우는 주요 공약들을 살펴보면 그는 민주당내 중도적인 입장에 가깝다. 그는 총기휴대와 사형제에 찬성하고, 동성결혼 합법화에는 반대하고 있다.

미 언론들은 딘이 좌절한 민주당원의 울분과 분노를 대변하면서 초반 기세를 올렸다고 평가했다. 이제 울분과 분노를 토대로 정치자금 모금에서 성과를 거둔 그는 지명도 확보라는 장벽을 뚫어가고 있다. 주지사 출신으로 백악관에 입성했던 빌 클린턴은 일찍이 “딘이 지명도와 선거 자금이라는 벽을 넘는 다면 민주당 대선 후보 자리를 거머쥘 수 있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실제로 전국 지명도에서도 서서히 청신호가 켜지고 있다. 내년 민주당 경선주자들이 처음 공식 격돌하는 아이오아주의 여론조사를 보면 딘은 예상을 뒤엎고 2위를 차지, 선두 존 케리 상원의원을 바짝 추적중이다.


● 하워드 딘 약력

■ 정치적 본거지 : 버문트주 벌링턴 ■ 생년월일 : 1948년 11월 17일 뉴욕출생 ■ 종교 : 조합교회파 ■ 가족 : 부인 주디 스타인버그와 2남 ■ 경력 : 예일대(71년 졸), 알버트 아인슈타인 의대(78년 졸) 외과의사개업 버몬트주 하원의원(82~86) 버몬트주 부지사(86~91) 버몬트주지사(91~2002) ■ 성향 : 민주당 내 중도 자유민주주자, 총기휴대 및 사형제지지, 균형예산 추구, 이라크전 반대

이영섭기자


이영섭기자 young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