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의 눈] 사회적 책임 일깨운 사랑과 지혜

불황의 그림자에 짓눌려 사는 탓일까? 살맛이 나지 않는다고 한다. 매일 아침 펼쳐 드는 신문에서도 즐겁고 따뜻한 뉴스를 찾기 힘들다. 갈수록 꼬이는 국정에 우리 사회의 계층 및 세대 갈등, 코미디 프로에서나 나옴직한 대통령의 ‘말씀’, 악취가 진동하는 ‘굿모닝 게이트’, 청와대 권력투쟁설, 의혹투성이의 대선자금, 방사능핵폐기물 처리장 선정 대립, 아직 끝나지 않은 새만금, 낯부끄러운 동계올림픽 유치 소동….

속보에 속보가 이어지는 매일매일이지만 뭐 하나 분명한 것, 산뜻하게 해결된 것, 희망적인 게 없다. 그냥 그렇게 시간만 흐르고 답답한 가슴은 여전하다.

이런 와중에 먹장구름을 뚫고 나온 햇살처럼 가슴이 탁 트이는 소식이 최근 싱가포르에서 전해졌다. 그 곳 래플스 병원에서 이뤄진 샴쌍둥이 민사랑ㆍ지혜의 분리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났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이제 태어난 지 4개월밖에 안 되는 신생아인 사랑ㆍ지혜 자매는 엉덩이 부분이 붙어 있는, 그래서 한 돌이 지나더라도 여느 아이들처럼 일어서거나 서로 마주보고 눕거나, 한 방향으로 똑같이 걸어갈 수도 없는 샴쌍둥이다. 그 자매를 키우고 책임져야 하는 부모의 심정이 어땠을까?

수술이 끝난 뒤 민승준ㆍ장윤경씨 부부는 “어려운 사정 속에서도 우리 가족에게 아낌없는 정을 나눠준 국민과 싱가포르 교민들에게 감사드린다” 며 눈물을 떨궜다. 그 눈물에는 사랑이와 지혜가 태어난 뒤 그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던 부모로서의 안타까움과 절망, ‘이제는 희망을 가질 수 있다’는 안도감, 채 사라지지 않은 자식의 죽음에 대한 공포 등이 뒤섞여 있을 것이다. 더구나 이란출신 샴쌍둥이 비자니 자매는 같은 장소에서 분리수술을 받다가 사망하지 않았던가?

샴쌍둥이의 운명은 비장애인이 상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가혹하다. 비자니 자매가 앞으로 몇 십년은 더 살 수 있었을 텐데도, 굳이 목숨을 걸고 수술대에 오른 심정을 단순히 ‘용기’라고 부르는 것은 너무 낭만적이다. 죽음이 기다리는 수술대외에는 다른 선택이 없었던 그들만의 처절한 심정은 ‘세상에서 가장 고독한 자매’라는 부제를 단 샴쌍둥이 자서전 ‘마샤와 다샤’(2001년, 지식여행)을 보면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다.

‘마샤와 다샤’는 하반신이 붙은 채 51년을 살아온 샴쌍둥이 자매의 피맺힌 삶의 기록이다. 소아병동에서 비인간적인 인체실험의 대상이 되고 성년이 되자 제 몸 하나 제대로 가누기 힘든 할머니들이 모인 요양소로 ‘폐기’된 자신들의 운명을 피를 토하듯 절규하며 적었다.

장애인 소년과 사랑에 빠진 ‘다샤’가 그 소년과 키스하는 동안 ‘마샤’는 얼굴을 돌려주며 둘의 사랑이 꽃피기를 기원했지만 끝내 맺지 못하고 헤어질 때, 남학생들이 마샤와 다샤가 섹스를 할 수 있는지를 내기를 걸 때 30년만에 만난 엄마가 자신들을 동정할 때 자매는 이 험난한 세상을 스스로 헤쳐가는 법을 배워야 했다.

자매가 단지 소련에서 태어난 탓이라고 말하지 말자. 샴쌍둥이에 대한 실존적 영화 ‘트윈 폴스 아이다호’(Twin Falls Idaho, 98년)는 미국이라도 다를 게 없음을 보여준다.

영화에서는 미국 아이다호의 한 허름한 호텔로 고객의 부름을 받고 간 창녀 페니(미셸 힉스)는 몸이 붙은 샴쌍둥이를 보고 놀라 도망친다. 마음을 안정시킨 뒤 되돌아와 마주 앉은 세(?)사람. 다리 셋(?)과 팔 둘을 공유한 채 살아온 미남 형제 블레이크(마크 폴리쉬)와 프렌시스(마이클 폴리쉬)는 프렌시스의 죽음이 머지 않았음을 알고 마지막 생일 잔치를 하는 날이었다.

페니가 묻는다. “누굴 데리고 있어도 외롭지 않는가.” “대개는 섹스도 하냐고 묻는데 그런 질문은 처음이다. 아침 잠에서 깨어날 때, 잠들기 2분 전이 외롭다. 나머진 내가 없애려 한다”는 블레이크의 답변은 운명을 극복하려는 의지와 달관으로 빛난다. 여기에 “반으로 가르면 둘이 되는 게 아니라 힘을 잃는다. 하나라도 살려면 서로가 필요하다”는 의사의 말이 겹쳐지면 인간은 그 모습이 어떠하든 그 존재만으로도 살아갈 가치가 있음을 깨닫게 된다.

샴쌍둥이도 비장애인들과 똑같은 인격체다. 조금 다를 뿐이다. 그러나 이 세상을 살아가기에는 힘겨운 사회적 약자다.

사랑ㆍ지혜 자매가 장애인 등록에서 빠진 것에서 보듯 우리의 사회보장 체계도 그들의 연약한 손을 잡아주기엔 아직 멀었다. 그들도 우리와 더불어 살아갈 수 있도록 사회적 책임을 느껴야 한다. 사랑이와 지혜 자매는 바로 그 점을 우리에게 일깨워 주었다.

이진희 부장


이진희 부장 jinh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