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우정· 복수의 교실괴담

[시네마 타운] 여우계단- <여고괴담> 세번째 이야기

사랑과 우정· 복수의 교실괴담

<여고괴담> 1편과 2편, 그리고 여우계단을 시리즈로 연결해 볼 때는 이 시리즈의 기획의 참신함과 다양성을 엿볼 수 있다. 여학교에는 언제나 귀신 이야기들이 끊이지 않았고 학교 폭력은 늘 이슈였으며, 동성애에 대한 의문도 빈번히 일어났다(<여고괴담> 1편과 2편). 그리고 현재 많은 여고생들은 다이어트에 관심을 갖고 있으며 우정과 경쟁사이에서 고민한다(<여우계단>).

하지만 1편과 2편이 스타일과 구성면에서 전혀 다른 독창성을 보여주면서 공감할 수 있는 공포를 제공했다면, <여우계단>은 소재는 참신할지 모르지만 공포영화가 느끼게 해줘야 되는 무서움은 주지 못한다. 귀신이 하는 행동과 나타나는 장소는 너무나 잘 예측할 수 있고, 공포로 몰고 가기까지 영화는 단순한 이야기를 너무 오래 끈다.

윤진성(송지효)과 김소희(박한별)는 무용반 단짝 친구다. 소희는 엄마가 선생님과 잘 아는 사이이고 타고난 재능이 있으며, 학교에서 제일 예쁘다. 하지만 진성은 선생님의 지적대로 아무리 열심히 연습해도 늘 소희에게 뒤진다. 소희는 자신의 토슈즈에 유리 조각을 넣어 놓기까지 한 진성을 진심으로 사랑한다(영화에서는 좋아한다로 나온다).


질투심과 열등감

그녀가 진성을 대하는 감정이 단순한 동성 친구를 넘어선다는 것은 둘이 처음 등장하는 영화 도입부에서 쉽게 알 수 있다. 무용 연습실에서 진성과 귓속말을 하며 환하게 웃는 소희의 얼굴 표정은 마치 연인을 대하는 듯하다. 소희가 여우계단에서 비는 소원은 항상 진성이 옆에 있게 해달라는 것이고 진성에게는 “너만 있으면 돼”라고 말한다.

진성을 끔찍히 여기는 소희와 달리 진성은 늘 소희에게 질투심과 열등감을 느낀다. 결국 러시아 발레 유학이 걸린 콩쿨에 내보낼 학교 대표를 뽑게 되자 진성은 여우계단에 가서 “내가 서울 발레 콩쿨에 나가게 해줘”라고 빈다. 그리고 마치 여우계단이 소원을 들어주듯 진성은 콩쿨에 나가고 1등을 한다.

하지만 그것은 실력으로 얻어진 게 아니라 진성이 앞뒤 안보고 소희의 팔을 밀쳐 소희는 다리를 다치고 발레를 포기해야 되는 것을 비관해 자살했기 때문이다. 여고괴담 1편에서 자살하는 학생은 성적이 2등인걸 비관해 자살했지만 <여우계단>에서는 2등이 1등이 되고 싶은 욕심이 뜻하지 않게 1등을 죽음으로 몰고 그것 때문에 공포가 시작된다.

그러나 <여우계단>에서 진성과 소희보다 더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은 엄혜주(조안)다. 여우계단에 대한 정보를 먼저 알고 있고 그림으로 앞으로 닥치는 불안감을 표현하는 혜주는 뚱뚱한 조소반 학생이다. 혜주는 몸 때문에 놀림감이 되기 일쑤고, 친구라곤 인형뿐이다. 혜주는 여우계단에 소원을 빌어 날씬해지지만 자신의 모습이 전과 똑같이 뚱뚱하다고 믿는다.

소희를 흠모했지만 늘 도망만 다녔던 혜주는 소희가 귀신이 되고 나서야 그녀와 대화를 나누게 된다. 혜주의 몸을 빌어 소희는 자신이 원하던 소원(영원히 진성과 함께 있고 싶다던)을 이루기 위해 진성을 공포로 내몰고, 또한 혜주는 소희의 영혼을 통해 늘 자신을 놀렸던 한윤지(박지연)에게 끔찍한 복수를 한다.

이렇게 혜주가 가장 흥미로운 캐릭터일 수 있었던 것은 소희와 진성 보다 영화에서 덜 정보가 주어졌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소희를 이해하기 위한 정보는 영화에 넘친다. 소희가 그녀의 엄마가 자신을 통해 대리만족을 느끼려 한다는 것을 얘기하고 무용 선생님과 친분관계가 있다는 것은 그녀의 엄마가 과거 무용을 했던 사람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또 소희는 학교에서 얼굴이 제일 예쁠 뿐 아니라 모두에게서 따돌림당하는 혜주에게 체육복을 빌려줄 정도로 착하다. 소희는 무용반에서 연습을 할 때도 다른 학생들이 검정색 의상을 입었을 때 혼자만 핑크색 의상을 입고 춤을 추고 늘 진성을 제외한 다른 무용반 아이들은 소희의 춤에 넋이 나가고 절대 소희를 질투하지 않는다.


섬뜩한 변신

소희에 대한 여러가지 정보들과 비교해 볼 때 혜주는 외모 때문에 심리적으로 위축된 거 이외의 정보는 없다. 친구가 없기 때문에 인형들과 대화하고 대부분 혼자서 지내는 거 이외 혜주는 여우계단을 작게 만들어 전시하고 그것에 대한 정보를 주는 것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소심한 그녀가 무서워 질 때는 구미호가 변신할 때보다 더한 섬뜩함을 준다.

혜주의 외모와 행동이 극과 극을 오가며 혼란을 거듭할 때 <여우계단>은 겨우 여고괴담 전작들에 비해 초라해지지 않는다. 뚱뚱한 혜주, 날씬해졌지만 별로 달라진 게 없는 혜주, 그리고 소희의 원혼이 들어와 있는 혜주로의 변신은 영화의 정점이 되고 혜주가 영원히 소희와 함께 있을거라며 화염에 휩싸일 때 <여우계단>의 가장 흥미진진한 부분은 막을 내린다.

그러나 영화는 중심 축이 되는 진성과 소희의 이야기로 끝내기 위해 뻔한 장면들을 덧붙이고, 진성의 기숙사 방과 그 기숙사를 오르는 여우계단의 공포가 계속 될 거라는 공포영화의 진부한 엔딩을 반복한다.

올 여름 많은 공포영화들이 앞으로 개봉을 기다리고 있는데 <여우계단>이 <장화홍련>과 같은 수작과 앞으로 개봉될 공포영화들 사이에서 얼마나 많은 공포심을 유발할지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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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 단신
   
<그 집앞> 로카르노 영화제에 초청

김진아 감독의 <그 집 앞>이 제 56회 로카르노 영화제 비경쟁 부문인 현재의 감독전에 초청됐다. <그 집 앞>은 미국 유학생인 가인과 한국을 여행하는 재미교포 도희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로 다이어트, 거식증, 원치 않는 임신 등 여성의 몸과 욕망에 관한 담론을 정면으로 다루고 있는 작품. 수퍼모델 출신의 이선진이 도희 역을, 중앙대 연극영화과 출신의 최윤선이 가인 역을 맡았고 <로드 무비>에 출연했던 정찬이 노개런티로 특별출연 했다.


<살인의 추억> 상반기 흥행 톱

<살인의 추억>이 2003년 상반기 흥행 순위 1위를 차지했다. ㈜아이엠 픽쳐스가 발표한 '2003 상반기 영화시장 분석'자료에 따르면 지난 4월 25일 개봉한 <살인의 추억>(감독 봉준호, 제작 싸이더스)은 6월 30일까지 서울에서만 약 185만 명의 관객을 동원해 전체 흥행 순위 1위를 차지했으며, <동갑내기 과외하기>(감독 김경형, 제작 코리아엔터테인먼트)가 159만 명으로 그 뒤를 이었다. 147만 명으로 3위를 차지한 <매트릭스 2 리로디드>는 외화 흥행 순위 1위에 올랐다.

채윤정 영화평론가


채윤정 영화평론가 blauthin@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