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코파이

[문화 속 음식이야기] 군대생활의 달콤한 추억

<공동경비구역 JSA> 초코파이

여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세 가지 화제는 군대 이야기, 축구 이야기, 그리고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라는 농담이 있다. 우리나라 남성들이 가기 싫어도 가야 하는 군대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청춘을 썩히는 곳’ 쯤으로 인식된다. 오죽하면 병역을 기피한 인기 가수가 전 국민적인 분노를 샀을까.

그러나 동시에 군대란 사회가 요구하는 ‘남성다움’ 의 필요 조건이 되고 군대 생활을 경험한 사람들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연대감 같은 것이 존재한다. 오늘도 수많은 대한민국의 예비역들이 여자들이 싫어한다는 군대 이야기로 밤을 새우곤 하는 것이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휴전선을 사이에 둔 남북 병사의 우정을 그린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에도 군대에 대한 남성들의 향수가 묻어난다. 분단이 불러온 비극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음에도 이 영화의 구석구석에는 가벼운 웃음이 양념처럼 배어있다. <…JSA>가 원작 소설인 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인기를 모은 데에는 스토리 자체가 주는 감동 이외에 ‘군대’를 묘사한 디테일들이 결정적 역할을 했으리라 본다.


이념을 넘은 끈끈한 우정

갈대밭에서 지뢰를 밟았다가 북한의 오경필 중사(송강호)에 의해 목숨을 건진 이수혁 병장(이병헌). 그는 생명의 은인을 잊지 못해 경필에게 편지를 보내고, 가요 테이프와 담배 같은 작은 선물을 보내기 시작하더니 급기야는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한 초소로 ‘마실’을 간다. 이들과 함께 초소를 지키던 정우진(신하균)과 남성식(김태우)도 동참한다. 이념을 넘어 끈끈한 우정을 나누던 네 사람. 그러나 이들의 불안한 만남은 비극적인 결말을 맞는데….

영화 속에서 네 병사는 김광석의 ‘이등병의 편지’를 들으며 공감하고 총알을 가지고 공기놀이를 한다. 가족 이야기, 장래의 꿈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도 ‘적’이 아니라 마치 한 내무반에서 근무하는 동료들을 보는 듯 하다. 50년 분단의 세월을 넘어 이들을 묶어준 것은 ‘군대’라는 공감대였고, 그 중에서도 가장 관객의 기억 속에 남았던 소재는 경필과 우진이 정신없이 좋아하게 되는 초코파이다.

어느 날 수혁은 경필과 우진에게 남측 초소로 내려오라는 말을 조심스럽게 건넨다. 그곳에 가면 초코파이를 실컷 먹을 수 있다는 말과 함께. 순간 네 사람 사이에는 팽팽한 긴장이 감돌고 경필은 먹고 있던 초코파이를 뱉어내며 날카롭게 말한다. “내 꿈이 뭔지 아나? 언젠가 우리 공화국에서도 초코파이처럼 맛있는 과자를 만드는 거야.”그리고는 뱉어낸 초코파이를 다시 입에 넣는다. 긴장은 어느새 풀리고 네 병사와 관객들 모두 웃음짓는다.

초코파이 하나가 최고의 간식이던 시절이 있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우리 주위에는 훨씬 고급스러운 과자들이 많아졌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그 맛을 잊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초코파이가 가장 사랑받고 있는 곳은 군대일 것이다. 첫 휴가를 나온 이등병이나 제대한 지 오래된 예비역에게나, 훈련받고 나서 먹던 초코파이의 맛이 얼마나 달콤했던가는 공통된 화제다. 군대 이야기를 할 때 절대 빠지지 않는 초코파이. 왜 군인들은 초코파이를 좋아하는 걸까?

첫째, 초코파이는 훈련소에 들어가면 먹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별식이라고 한다. 갓 입소한 신병에게는 군대에서의 소위 ‘짬밥’이 입에 맞지 않을 것이고 집에서 먹던 밥이 그리워진다. 훈련소에서는 일요일마다 종교행사가 열리는데 이때 나눠주는 초코파이는 실로 오랜 만에 맛보는 바깥 세상의 음식이다.

또한 활동량이 많고 땀을 많이 흘리는 군인들은 당분이 자주 필요하게 되나 군대에서 제공되는 음식들 중 당분을 섭취할 수 있는 음식은 흔하지 않다. 간식으로는 별사탕이 조금 딸린 건빵이 있지만 단 것에 굶주린 군인들에게는 역부족이다. 그런 그들에게 초코파이의 단맛은 기운을 내게 하고 피로를 덜어준다.

한 달에 고작 몇만원 정도의 월급을 받고 외출도 자유롭지 않은 군인들로서는 나가서 과자를 사먹는 일 자체가 부담스럽다. 초코파이는 PX에서 살 수 있는 간식들 중 가장 저렴하면서 가장 양이 많다. 이렇게 그들은 군대에 길들여가듯 달콤한 초코파이에 길들여져 가게 된다. 그러나 계급이 올라갈수록 초코파이에 대한 집착(?)은 점점 약해진다고. 제대를 하고 나면 군대에 대한 기억처럼 초코파이의 맛도 추억이 된다.


29년의 역사, 국민과자로

역사도 오래 되었고, 흔한 과자이다 보니 초코파이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초코파이의 기본적인 재료로는 소맥분과 설탕, 물엿, 쇼트닝과 각종 첨가물들이다. 이들 재료를 잘 섞은 다음 기계로 짜내어 ‘기지’ 라고 불리는 과자 베이스 반죽을 만든다. 오븐에 갈색으로 구워낸 과자 두 장 사이에 마시멜로를 끼우고 초콜릿 액에 담가 옷을 입힌다.

그리고 초콜릿이 잘 굳어지도록 냉각시킨 다음 갓 구워 바삭바삭한 과자가 케이크처럼 촉촉해질 때까지 2, 3일간 숙성을 거쳐 출고한다. 동양제과의 한 연구원이 유럽 여행 중 초콜릿이 코팅된 과자에서 힌트를 얻어 만들었다는 초코파이는 1974년에 첫 선을 보였다. 저렴한 가격에 부드러운 맛, 그리고 허기를 덜어 줄 만큼 넉넉한 양 덕분에 출시 초부터 폭발적 인기를 모았다고 한다.

올해로 스물 아홉 살이 된 초코파이는 2003년 현재 약 1조원, 개수로는 85억개가 판매되었다. 껌을 제외한다면 국산 과자 중에서 최고의 매출 기록이다. 지금까지 판매된 초코파이를 한 줄로 이어놓으면 지구를 15바퀴나 도는 60만 ㎞에 달한다고 하니 이쯤 되면 당당히 ‘국민과자’로 불릴 법 하다.

최근 몇 년 전부터 초코파이는 러시아, 중국 등 해외에서도 인기를 끌고 있다. 초코파이가 유명세를 타게 된 것은 90년대 초 러시아 개방정책 이후이다.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에 시달리던 러시아에서 보따리 장사들에 의해 전해진 초코파이는 값이 싸면서도 풍부한 초콜릿 맛으로 서민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것이다. 중국으로 건너간 초코파이는 시장점유율 63%로 4년 연속 1위를 달성하는 기염을 토하고 있다.

한국인들에게는 아련한 추억이 깃든 이 소박한 과자가 이런 엄청난 기록의 보유자이며, 또 해외로 뻗어 나가고 있다고 하니 놀랍기도 하고 낯선 기분도 든다. 영화 속의 두 북한 병사가 처음 보는 초코파이에 마음을 빼앗긴 이유는 단지 군대라는 환경 때문만은 아니지 않았을까?

장세진 맛 칼럼니스트


장세진 맛 칼럼니스트 sejinjeong@yaho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