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와 오늘] '미스터 김정일'과 이문열

정치가는 역사를 진전 시키는 것일까. 소설가는 역사를 ‘우물 안 개구리’처럼 보는 것일까.

부시 미국 대통령은 1일 북한이 다자회담에 동의한데 대해 국무회의를 마치고 기자들에게 말했다. “과거 한반도 평화를 말하는 것은 미국의 고독한 목소리였지만 이제 이 문제에 이해를 가진 다른 당사자들의 목소리가 될 것이다. 다른 국가들이 평화에 대한 책임감을 떠맡게 된 사실에 기분이 좋다.” 그리고 “북한 지도자인 김정일씨(Mr. Kim Jongil)가 핵무기 프로그램을 폐기하기로 결심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부시 대통령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미스터 김정일’이라고 부른 것은 두 번 째다. 7월 21일 텍사스에 있는 그의 별장에서 이탈리아 총리와 기자회견을 하면서 그는 처음으로 김 위원장을 ‘미스터’라고 불렀다.

부시는 지난해 8월 아프카니스탄과 전쟁을 벌이기 직전 워싱턴 포스트 수석 부국장 봅 우드워드(닉슨의 워터게이트를 추적, 보도한 기자)를 텍사스 별장에 불러 말했다. “나는 김정일을 몹시 싫어한다. 이 친구에게는 본능적인 반발심을 갖고 있다. 이제는 사람들을 굶기고 거대한 범죄 수용소에서 고문을 하고 있다. 이것이 나를 질리게 한다”고 말했다. (‘부시 는 전쟁 중’에서) 이에 앞서 5월에는 한 사석에서 김 위원장은 ‘피그미’(아프리카 난장이족), ‘무능한 자’, ‘버릇없는 아이’라고도 했다.

부시가 집권 3년만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씨’라는 경칭을 쓴 것은 북미 회담이나 다자회담이 평양 정권을 협상 대상으로 삼고 관계 4국(중국, 일본, 러시아, 한국)과의 회담이 체제 보장을 위한 것이 될 수 있음을 상징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부시의 역사적 진전에 비해 ‘일그러진 영웅’의 작가 이문열씨는 미국의 친한파 브로거(인터넷 운영자) 사이에서 곤혹스런 위치에 빠졌다. 이씨는 정전협정 50주년을 맞아 7월 20일자 뉴욕 타임스에 ‘미국이 보지 못하는 나라’라는 기고문을 실었다.

“태평양 전쟁이 끝나던 해 북쪽은 기민한 후원자(러시아)덕에 약속된 바를 획득했다. 그러나 남쪽은 제국주의적 시혜자(미국)의 어설픔과 혼란 때문에 강력한 민주주의로 발전하는데 실패했다. 특히 남한에서는 왕정에 대한 향수가 사라지고 표현과 사고의 자유에 대한 갈망이 높아졌다. 이 두 가지 요소가 한국전쟁의 토대가 됐다. 남한에서는 강력한 리더십의 결핍과 과다한 사회적 개방성이 공산주의가 강력하게 성장하는 자양분이 됐다. 그들이 만들어 낸 혼란과 테러 행위로 내전은 불가피 했다.”

“그로부터 반세기, 북한은 여전히 세습체제를 유지하면서 예고한 노선을 계속 가고 있다. 반면 남한은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싸우고 있다. 약간은 과장일지 모르지만 나는 우리가 한국전쟁 이전에 겪었던 불안 상태로 돌아가고 있는 느낌이다. 이런 불안감은 특히 통일과 정치 개혁에 관한 남한 내 좌ㆍ우파의 악의적인 다툼을 보면 여실해진다. 양쪽의 선동은 점점 더 빈번하게 서로를 악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런 불안감은 한국인들 사이에 널리 퍼져있는 강력한 반미감정에서 분명히 드러났다. 한국 대학생들은 남한 해군 다섯이 죽은 데 대해서는 분노를 덜 느끼지만 미군 궤도 차량에 한국 소녀들이 죽은 데 대해서는 극도로 정의를 요구한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휴전협정을 조인하는 자리에 중국과 북한은 있어도 별도의 한국은 없었다. 그 뒤 50년이 지난 지금도, 얼마 전 북한 핵문제를 논의한 베이징 회담에서 한국, 특히 남한은 없었다. 늦었지만 이제부터라도 미국은 한국, 특히 남한의 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이에 대해 해방정국, 6ㆍ25, 그 이후 한미관계를 다룬 영문소설 ‘아침 폭풍이 부는 나라’(본 칼럼 7월 3일자에 소개)를 쓴 베리 브리그스는 분노했다. “NYT가 어찌 실을 가치도 없는 이런 기고문을 논평난에 실었는가”라고 힐난했다.

“미국은 일본의 강점에서 한국을 해방하려 한반도에 갔고 공산주의자들에게 민주주의 국가 한국을 잃지 않기 위해 여지껏 주둔하고 있다. 아시아 대륙에서 한국은 아직도 일본, 중국의 그늘에서 보이지 않는 나라라는 주장은 인종주의자의 논리다. 이 작가는 바보 천치다. 나는 그가 한국 여론의 대변자가 아님을 안다. 최저의 대변일 뿐이다.” 브리그스의 소설은 아마존 닷컴에서만 80만 3,000부가 팔렸다. 그의 아내는 한국인이다.

그는 또 다른 친한파 브로거 로버트 켈러의 웹에 실린 30여편의 이문열 기고문 비평문을 소개했다. 광주대 영어 강사로 현재 경희대 평화대학원생인 켈러는 “이 기고문은 역사적 성실성이나 논리적 일관성이 없는 X같은 글이다”고 결론 짓고 있다.

어떻든 미국은 한국을 다자회담에 끌고 갔고 북한의 지도자에게 경칭을 써가며 다자의 장으로 데려왔다. 이문열은 자성의 글을 써야 한다. 최소한 베리 브리그스의 ‘아침 폭풍이 부는 나라’를 읽어보고 한국을 사랑하고 있는 그에게 감사의 편지라도 보내길 바란다. 시간이 나면 러시아 역사학자 아나톨리 토루크노프 박사의 ‘한국전쟁의 진실과 수수께끼’를 읽어보길 바란다.

박용배 언론인


박용배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