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식의 문화읽기] '칠순 소년' 신중현

1973년이나 1974년쯤 되지 않았을까. 정확한 시기를 기억할 수는 없지만, 신중현을 처음 본 것은 초등학교에 입학할 즈음의 일이었다. 고등학생이었던 외삼촌들이 집안 어른들을 졸랐고, 우여곡절 끝에 부산시민회관에서의 공연을 볼 수 있었다.

집을 나와서 놀러간다는 것이 마냥 좋았을 것이고, 친구들에게 자랑할 거리가 생긴다는 기대에 가슴이 부풀었으리라. 귀청을 울리는 일렉트릭 기타의 소리가 짜증스럽기도 했지만, ‘미인’의 친숙한 리프(riff:반복되는 연주패턴)를 들을 때는 그래도 신이 났다. 그날 얻은 최고의 깨달음은 기타를 연주할 때는 무엇보다도 폼과 표정이 멋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신중현의 격정적인 몸짓과 황홀경에 빠진 듯한 표정은 참으로 기묘한 것이었지만, 그 표정 너머로 알 수 없는 뭔가가 꿈틀대고 있다는 느낌을 부여받기에는 충분한 경험이었다.

신중현에 대한 기억을 되짚어 본 것은, 최근에 출간된 ‘록의 대부 신중현’ 때문이다. 올해 2월 14일부터 5월 8일까지 60회에 걸쳐 한국일보에 연재되었던 ‘나의 이력서 신중현’을 책으로 묶어 출간한 것이다. 이 책이 각별했던 것은 한국 록의 신화이자 불세출의 기타리스트 신중현이라는 이름이 주는 무게 때문만은 결코 아니었다.

조금은 엉뚱할 수도 있겠는데, 책의 어느 곳에서도 기념하고자 하는 의지를 발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우리사회는 ‘기록’에는 대단히 인색한 반면에, 5년이나 10년을 기준으로 ‘기념’하는 문화는 대단히 발달되어 있다.

신중현의 경우, 칠순도 아니고 음악인생 50주년도 아니기 때문에 올해는 기념할 일이 없다. 따라서 기념할 일이 없는 상황에서 출간된 신중현의 자서전은, 이슈가 되는 데는 불리한 점이 있겠지만, 기록의 동기에 있어서 대단히 순수하다. 기록을 향한 순수의지의 산물이라고 할까. 이 책을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은 주간한국의 장병욱 기자에게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고마움을 전한다.

육성을 통해서 접하게 되는 신중현의 삶은, 참으로 파란만장하다.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만주에서 유년기를 보냈고, 광복 이후 귀국하여 참으로 힘든 삶을 살았다. 배달원 일을 하면서 우연히 발견한 기타에 미친 듯이 몰입했고, 미 8군에서는 탁월한 연주 실력으로 각광을 받았다.

한국 록의 역사에서 지울 수 없는 밴드인 ‘애드포’(Add4)와 ‘덩키스’(donkeys)를 결성 했고, 그와 동시에 신중현 사단의 가수들인 펄시스터즈, 김추자, 박인수, 김정미 등의 음악을 프로듀스했다. 하지만 세상은 그를 내버려두지 않았다. 대통령 찬가를 제작하라는 박정희 정권의 요구를 거부했고, 그 결과 마약사범으로 몰려 5년 동안 활동정지를 당하게 된다.

해금 이후 1980년대에는 록카페 라이브(Live)와 록월드 공연장을 운영하면서 연주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지금도 그는 개인 스튜디오 ‘우드스탁’에서 음악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신중현의 삶을 몇 개의 단어로 요약하기란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책을 읽고 나서 머리에 남은 말은 전위와 근원이라는 두 단어였다. 그는 평생동안 전위적인 음악에 열린 태도를 견지하며, 블루스, 로큰롤, 재즈, 사이키델릭, 헤비메틀 등 다양한 장르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왔다.

최근에 그가 인터넷과 DVD를 통한 음악작업에 관심을 가지는 것 역시, 미디어의 가능성 속에서 음악의 전위적인 가능성을 개척하려는 의지의 소산이다. 신중현의 삶에서 읽어낼 수 있는 또 다른 코드는 근원에 대한 성찰이다. 그는 전위를 추구하는 과정에서도 자신의 근원을 망각하는 일이 없다.

국악의 5음계를 사용해서 ‘미인’의 리프를 만들고 김삿갓의 발자취를 따라서 음악을 만든 것은, 그가 한국인이기 때문이다. 또한 요즘도 우드스탁에서 블루스 잼 세션(주제를 변주시키며 진행하는 즉흥연주)을 갖는 것은, 그가 로커이기 때문이지 다른 이유는 없다.

기원을 잊지 않으며 전위를 추구하는 음악, 또는 무위자연의 풍경 속에서 독창성(originality)과 정체성(identity)이 자유롭게 뛰어 노는 음악.

오늘도 우드스탁에서는 노장사상을 가슴에 품은 칠순의 소년이 기타를 치고 있을 것이다. 몰래 다가가 칠순의 소년에게 이런 말을 들려주고 싶다. 당신이 등장한 이후에야 한국의 대중음악은 음악성을 말할 수 있게 되었고, 록이 저항성의 비정치적 표현일 수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고.

김동식 문화평론가


김동식 문화평론가 tympan@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