끼와 재능 갈고 닦으며 스타를 꿈 꾸는 청소년들

[제2의 보아를 꿈 꾼다] "나도 보아처럼…"

끼와 재능 갈고 닦으며 스타를 꿈 꾸는 청소년들

깜찍한 외모의 중 2년 김순영(14)양은 가수 지망생이다. 방학을 맞은 요즘엔 연예학원에서 보컬과 댄스 등을 익히며 가수가 되기 위한 준비에 구슬땀을 흘린다. 학원 수업은 오후 7시에 시작되지만, 그녀가 학원에 도착하는 시간은 보통 오전 10시 무렵. 이때부터 오후 10시까지 꼬박 12시간 이상 연습에 매달린다.

김양은 지난 3월 “가수가 되고 싶다”며 부모를 설득해 연예 학원에 등록했다. 벌써 5개월째다. 이 학원은 현재 세계적인 ‘소녀 가수’ 보아를 키운 ㈜SM엔터테인먼트에서 운영하는 ‘스타라이트 아카데미 시스템’. 김양이 등록한 가수 과정의 경우 발성ㆍ발음ㆍ호흡법에서 방송 안무ㆍ효과적인 무대 연출법까지 익히게 된다.

과정 수료 기간은 총 8개월. 수강료는 학기(1학기는 4개월)당 180만원이다. 비싼 학원비가 맘에 걸려 용돈은 최대한 아껴쓴다. 그래서 점심과 저녁은 학원 근처 매점에서 대강 때운다. “매일 라면만 먹어 신물이 난다”고 했다.

“어떤 때는 공부가 더 쉬울 거라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하지만 제가 하고 싶어 도전한 일이니까….” “어릴 때부터 남들 앞에서 춤을 추는 걸 좋아했다”는 김양은 “노래 실력을 보강해 보아처럼 톱 가수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여름 방학을 맞아 ‘제 2의 보아’를 꿈꾸는 아이들이 연예 학원과 오디션 현장에 몰리고 있다. 중 2년 김송이(14)양의 하루도 김순영 양과 크게 다르지 않다. 종일 연예 학원에서 노래를 듣고, 연습도 하며 가수 준비를 하고 있다. 얼마 전 한 방송국에서 주최한 가수 오디션에서는 최종 결선까지 올라갔다. “비록 결선에서는 떨어졌지만, 주위에서 자랑스러워 하는 사람이 많다”며 “앞으로 계속 다른 오디션에 도전해볼 생각”이란다.


연예인이 청소년 희망직업 3위

김양과 같은 친구들을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연예인 꿈꾸는 청소년들이 늘었다. 2001년 노동부 산하 중앙고용정보관리소가 서울 시내 남녀 중ㆍ고생 2,995명을 대상으로 희망 직업을 조사한 결과, 연예인이 교사와 디자이너에 이어 3위에 올랐다.

하지만 학부모나 교사, 학생들이 피부로 느끼는 열기는 통계수치보다 훨씬 뜨겁다. 전국 2,000개가 넘는 연예기획사 사무실마다 전국 청소년들이 보내오는 지원서가 하루에도 수십~수백 통씩 쌓이고 있다. 최근 박지윤, 비, 별, 노을 등 인기 가수를 연달아 배출한 JYP 엔터테인먼트의 오디션에는 지난 한 해 동안 무려 8,000여 명의 스타 지망생이 몰렸다.

TV 오디션 프로도 인기다. 지난 5월 시청자 중에서 기량이 뛰어난 ‘이달의 가수’를 뽑는 공개오디션 코너를 신설한 KBS ‘뮤직뱅크’(목 저녁 7시. 연출 한경천)에는 첫 달에만 1,200명의 가수 지망생이 응모했고, 1만 명 이상의 네티즌이 오디션 심사에 참가하는 등 화제를 모았다.

케이블ㆍ위성 채널 m.net이 7월 25일 시작한 가수 개발프로젝트 ‘오디션 대작전’(금 오후6시. 연출 조용현)에도 청소년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첫 방영 직후 이 프로그램의 홈페이지에는 “나도 스타가 되고 싶다. 기회를 달라”는 글이 150여 건이나 올라왔다. 조용현 PD는 “끼와 재능을 발휘할 기회를 찾는 청소년들의 열기가 기대 이상으로 뜨거웠다”고 밝혔다.

스타를 향한 도전은 초등학생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가수 자우림처럼 개성 있는 가수가 꿈”이라는 초등 6년 이모(12)양은 “무용이나 음악 학원에 다니며 앞으로 연예인이 되려는 아이들이 한 반에도 5~6명 씩 된다”고 전했다. 7월 28일 첫 강의를 한 스타라이트 아카데미 시스템의 여름 방학 특강에 지원한 초등학생만 200 여 명을 넘어설 정도.

이 학원의 이솔림 팀장은 “서울은 물론 대전 부산 등 지방에서 특강을 듣기 위해 서울로 올라오겠다고 문의해 오는 어린 학생들이 대단히 많았다”며 놀璨?했다.


인식 바뀐 부모들 "아이가 원한다면"

학부모들의 태도도 크게 달라졌다. 1970~80년대만 해도 자녀들이 연예인 되겠다고 하면 부모들은 “헛바람 들었다”며 죽자살자 말리기 일쑤였다.

하지만 근래 들어서는 자녀들의 연예게 진출을 적극 밀어주겠다는 학부모들이 많다. 가수 지망생인 10살짜리 딸을 둔 학부모 정미용(37)씨는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남에게 즐거움도 주는 연예인이 얼마나 좋은 직업이냐”며 “아이가 원하고 재능만 있다면 힘 닿는 대로 지원해주겠다”고 했다.

‘열풍’이라고 할 만큼, 연예인을 선망하는 분위기가 확산되는 원인은 여러 가지다. 우선 연예계를 보는 사회ㆍ경제적 시각이 크게 변한 것을 꼽을 수 있다. ‘딴따라’ 혹은 ‘어릿광대’라는 말로 연예인을 경시하던 풍조는 이미 사라졌다. 연예 관계자들이나 지망생들을 만나면서 귀에 못이 박히게 들은 말 가운데 하나가 바로 “시대가 바뀌었다”는 것.

한 음악평론가는 “국제적인 스타가 되면, 문화 산업 발전과 국익 신장에도 일조하는 것”이라며 달라진 세태를 표현했다. ‘연예인은 밥벌이를 못 한다’는 말도 이젠 옛말. 엔터테인먼트 시장이 급속도로 커지면서 ‘황금알 낳는 거위’로 부각되고 있다.

연예인에 대한 이미지가 환상 속 ‘우상’에서 현실 속 ‘전문 직업인’으로 변한 것도 이유다. 어린 시절에는 누구나 한 번쯤 “TV에 나오는 연예인이 되었으면…” 하는 꿈을 가져보곤 한다.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정말 좋겠네” 하는 노랫말처럼.

그러나 요즘의 연예인 동경은 단지 잠깐 스쳐 지나가는 바람에 그치지 않는 경향이 뚜렷하다. 상당수 아이들이 연예인이 되고 싶은 마음을 곧 실천에 옮긴다. 희망 분야의 전문 학원을 다니고, 각종 오디션과 선발대회에 적극 응시하는 등 꿈을 이루기 위해 엄청난 공을 들인다.

김정일 신경정신과 원장은 “예전에는 연예인을 막연히 동경해도 쉽게 현실에서 볼 수도 없고 되는 방법도 알 수 없어, 대부분 자신과는 ‘거리가 먼’ 사람으로 여겼으나 요즘은 다르다. 길거리를 지나다가도 캐스팅이 되는 등 문화가 바뀌면서 ‘나도 연예인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쉽게 갖게 된다”고 설명했다.

김 원장은 또 “감정이 풍부하고 삶에 역동적인 아이들일수록 연예인을 지망하는 경우가 많다”며 “지나친 우려나 기대를 버리고, 아이들 특유의 강한 에너지를 분출하는 한 방법으로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더구나 초등학교 때 발굴돼 집중적인 ‘스타 만들기’ 과정을 거쳐 세계적인 스타로 큰 보아의 성공 신화는 로우틴(low teen) 팬을 겨냥한 어린 스타 지망생의 희망을 부풀리고 있다. 실제로 요즘 연예인 지망생의 연령은 눈에 띠게 낮아졌다는 게 업계의 한결 같은 이야기다.

신인 개발을 담당하는 한 매니지먼트사 직원은 “어린 시절부터 갈고 닦으면 스타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심지어 유치원생이 참가하는 경우도 있다”고 혀를 내둘렀다.


스타등극은 '하늘의 별따기'

그러나 제2의 보아가 되는 길이 그리 호락호락한 것은 아니다. JYP 신인개발팀 박성호 씨는 “오디션에 참가하는 연예인 지망생 가운데 소속사와 최종계약이 맺는 사람은 1만 명 중 1명 나올까 말까 하는 정도다. 그렇게 치열하게 선발됐다고 해도 스타가 되는 사람은 또 극소수다. 몇 년씩 준비를 해도 데뷔 무대를 갖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특히 국내 연예계는 미국이나 일본 등지에 비해 체계가 잡혀 있지 않고 ‘몰려 가는’ 현상이 심각하다. 지금 많은 대중이 어린 스타에 환호를 보내지만, 이런 유행은 한순간에 지나가버릴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경고. 대중문화평론가 배국남 씨는 냉정한 연예계 속성을 이렇게 꼬집었다.

“유행이 흘러가면 하나의 상품으로 키워진 아이들은 ‘버려지는 수단’으로 전락한다.”그는 또 “연예인은 재능과 노력 외에도 고도의 이미지 만들기 작업이 필요한 직업”이라며 “어린 아이들이 자신의 진로를 결정할 수 있는 나이가 되기 전에 상업적 목적의 극대화에 이용되는 것이 심각한 문제”라고 우려했다.

대중문화평론가 김종휘 씨도 “어린 학생들이 연예인의 꿈을 꾸며 다른 가능성을 준비하지 않음으로써 인생에서 중요한 시기를 허비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우리 주변에는 스타의 꿈을 쫓다 좌절을 겪거나 각종 범죄 대상이 됐다는 사람이 부지기수다. 그렇다고 연예인 지망생들의 꿈과 노력을 전부 ‘헛된 망상’으로 치부하는 것은 위험하다. “연예계는 소질이 있으면 일찍 발굴해 개발하는 게 중요하다”는 작곡가 겸 보컬 트레이너 노영주 씨는 “재능이 있고 적합한가를 테스트를 통해 먼저 확인해 보라”고 권유했다.

배현정 기자


배현정 기자 hjba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