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 가는 길 곁에 이렇게 깨끗한 물이?

[주말이 즐겁다] 가평 조종천

춘천 가는 길 곁에 이렇게 깨끗한 물이?

지루한 장마가 떠나간 자리. 땡볕이 내리쬐는 한낮의 도시는 숨조차 쉬기 어려울 정도로 이글거린다. 열대야의 밤은 또 어떤가. 여름 휴가를 다녀온 뒤라 해도 이런 무더위는 참기 어렵다. 그래서 산 높고 골 깊은 산하가 다시 그리워지는 건 인지상정이리라. 다행히 우리나라의 도시는 덩치가 크든 작든 대부분 가까이에 산을 끼고 있으니 너무 고마울 따름이다.

경기도 동북부에 자리한 가평(加平)의 산하는 생김새가 강원도의 그것에 뒤지지 않는다. 한강의 북쪽 울타리인 한북정맥(漢北正脈)과 가평천ㆍ조종천, 그리고 북한강이 어우러져 빚은 덕에 산도 높고 골도 깊다. 거기에 수도권 제일의 낭만 드라이브 코스로 꼽히는 경춘가도 한중간에 자리하고 있으니, 가평은 수도권 주민들에겐 보석과 같은 존재라 할 수 있다.


낚시·물놀이 즐길 수 있는 요지 많아

조종천은 가평 서남부를 적시고 흐르는 물줄기. 청계산과 명지산 사이에서 발원해 북한강에 합류하기까지 39km를 흐르는 이 맑은 시냇물엔 피라미, 갈겨니, 버들치, 돌마자 등 30여종이 넘는 물고기가 살고있다. 또 경기도 일원에서 가장 건강한 생태계 지역으로 꼽히는 상류 깊은 곳은 수도권에선 드물게 애반딧불이, 파파리반딧불이 등 각종 반딧불이 자생지역이기도 하다.

조종천 나들이 코스는 경춘가도변의 청평에서 거슬러 올라가는 게 일반적이다. 검문소 삼거리에서 좌회전해 37번 국도를 타면 곧 아이들이 좋아하는 가평사계절썰매장이 나오고, 이어 녹수계곡으로 들어가는 길이 나온다. 10리쯤 펼쳐진 물길 적당한 곳에 자리잡고 물놀이를 즐기면 된다.

물가엔 여름철에만 문을 여는 간이 식당이 즐비하다. 식당 부근에 텐트 등을 칠 수 있으나, 밤엔 기습적으로 내리는 폭우를 조심하는 게 좋다.

녹수계곡유원지에서 승용차로 20분쯤 거리엔 우리나라 사설수목원 중 비교적 잘 가꿨다는 평을 듣는 아침고요원예수목원이 있다. 삼육대 원예학과 한상경 교수가 1996년 축령산(880m) 기슭에 문을 연 이 수목원은 한국정원, 분재정원, 시가 있는 산책로, 하경정원, 야생화정원 등 특색 있는 정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 테마별 정원마다 정자를 세워놓아 산책 중 쉬기에 좋다.

이어 37번 국도로 다시 나와 3km 달리면 대보유원지가 반긴다. 조종천에서 볼거리가 가장 많은 곳이다. 한쪽엔 고려시대 청자와 쌍벽을 이루던 흑자를 빚고 연구하는 공방인 가평요(加平窯)가 자리하고 있다. 가평 출신 김시영씨는 맥이 끊긴 고려시대 흑자의 신비를 10여년간의 노력 끝에 재현해낸 도공.

조종천 물줄기가 멋들어지게 휘돌아가는 물가엔 조선시대에 숭명배청을 고집하던 씁쓸한 아픔을 살필 수 있는 조종암(朝宗岩)이 있다. 그 앞의 징검다리는 조금 규모가 크긴 해도 조종천의 운치를 한 단계 격상시켜준다. 또 지난 봄엔 우리나라 자생화만으로 화단을 꾸민 가평야생수목원이 조종암 근처에 문을 열었다.


가평을 지켜온 천년고찰 현등사

일반적으로 조종천 여름 나들이의 마무리는 상류의 운악산에 자리한 현등사에서 하게 마련이다. 시설지구 올라가는 길목의 삼충단(三忠壇)은 을사조약 파기를 외치며 순절한 조병세, 민영환, 최익현 세 분을 모신 제단. 묵념으로 나라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떠올리고, 막바지 무더위를 한방에 날릴 수 있는 계곡길을 오른다. 햇살이 파고들 틈조차 없는 짙은 녹음 드리워진 숲길이 좋다. 도중에 만나는 시원한 계류에 손 담그고 땀 들이는 맛도 그만이다.

독경소리에 끌려 녹음의 굽잇길을 돌면 높다란 축대 위에 터를 잡은 현등사(懸燈寺). 오랜 세월 가평을 지켜온 이 절집은 신라 법흥왕 때 불법의 진수를 전하기 위해 목숨 걸고 동방으로 찾아온 인도승 마라하미(摩羅訶彌)를 위해 왕이 지어주었다.

그 후 폐허가 되었는데, 이번엔 신라 말에 돔굇뭘怜?이곳을 찾는다. 개경이 새 나라의 도읍이 될 것이라 예상하고 개경에 세 곳에 절집을 지었으나, 풍수상 동쪽의 기가 부족해 이를 보완할 곳을 찾다가 현등사를 중창했다.

그리고 다시 오랜 세월 폐사가 되었던 이 곳으로 들어온 이는 고려 때의 보조국사. 산중턱에서 빛이 나오는 석등을 발견해 다시 절을 지으면서 현등사라는 현판을 달았다. 현등(懸燈)은 ‘부처의 가르침을 드러낸다’는 뜻도 담고 있다.

아담한 현등사를 둘러본 뒤 산길을 되짚어 내려간다. 아까는 지나쳐온 운악산 입구의 식당에서 가평의 토속주인 잣막걸리를 마실 생각에 벌써 입안엔 군침이 돈다. 텁텁한 잣막걸리 한 잔을 들이킨 다음, 조종천의 시원하고 맑은 물에 두 발 담그면 이까짓 무더위쯤이야 한방에 날려버릴 수 있을 것이다.


▲ 교통 서울→46번 국도→구리→남양주→청평검문소 삼거리(좌회전)→37번 국도→조종천. 또는 서울 강남→올림픽대로→팔당대교→6번 국도→능내리(좌회전)→45번 국도→새터삼거리→청평검문소 삼거리.


▲ 숙식 조종천 물가에 숙식 가능한 민박집이 아주 많다. 여름엔 녹수계곡유원지, 대보유원지 등 대부분의 유원지에서 일정액의 입장료를 받는다. 운악산 현등사 입구에도 식당이 많다. 메뉴는 잣막걸리서부터 순두부백반, 도토리묵, 토종닭 요리 등 다양하다.

할머니손두부집(031-585-1219)은 20여년 전통의 손두부 요리로 유명하다. 볶은 김치를 곁들인 모두부도 맛이 좋고 도토리묵도 괜찮다. 손두부 5,000원, 도토리묵 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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