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 이은 가신서 대 이은 역적으로?

이익치와 현대家의 악연

대 이은 가신서 대 이은 역적으로?


유족들, 정주영 병세 악화·정몽헌 자살에 '원인제공' 시각

내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고 정몽헌 현대아산이사회 의장이 주도하는 대북사업에 김윤규 현대아산 사장함께 ‘트로이카’ 체제를 구축해 온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이 마지막 날까지 정 회장의 빈소를 찾지 않았다.

이익치 전 회장은 2001년 3월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빈소에 들렀다가 가족들로부터 “당신, 여기 왜 왔어?”라고 사실상 축객령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대가(家)에서는 그를 현대그룹을 분열과 쇠락으로 이끈 장본인으로 보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일부에서는 이익치씨가 정주영 전 명예회장의 병세 악화와 정몽헌 전 의장의 자살에 간접 원인을 제공했다고 보기도 한다. 그 내막은 이렇다. 정 전 명예회장은 2000년 6월 말 이른바 ‘막걸리 방북’때 건강이 크게 악화돼 기력을 되찾지 못했다는 것이다.

당시 정 전명예회장의 방북은 남북정상회담 이후 대북 창구를 확고히 하고 현대의 유동성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는 이익치씨의 주장이 강하게 반영됐다는 게 현대 관계자의 설명이다.

그러나 북한은 물자지원 없는 현대측의 일방적 방북을 탐탁치 않게 여겼다. 때문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정 전명예회장의 방북 사실을 알고도 평양을 떠나 원산에 머물고 있었다고 한다.

정 전 명예회장은 평양에 도착하자마자 김 국방위원장을 만나기 위해 폭우를 뚫고 자동차로 원산까지 이동해야만 했다. 출발 전부터 기력쇠약 증세를 보였던 정 전 명예회장은 그로 인해 건강이 극도로 악화돼 판문점을 넘자마자 사실상 쓰러지고 말았다. 그리고 식사를 제대로 못해 죽과 영양제로 대신하며 한달에 두세번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현대의 대북사업은 정몽헌 전 의장에게 넘어갔지만 그 사건은 현대가의 발목을 잡는 아킬레스가 되고 말았다. 정 전 명예회장도 건강을 회복하지 못하고 2001년 3월 운명했다.


MH를 대북사업에 끌어들인 장본인

정몽헌 전 의장의 자살 뒤에도 이익치씨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고 있다. 정 전 명예회장은 98년 대북사업을 성사시킨 아들에게 현대의 대권을 물려주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한다.

정몽구. 정몽헌의 ‘대권전쟁’은 불이 붙었고 초기에는 장자격인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이 주도권을 잡았다.

이때 고 정몽헌 회장측을 구한 사람이 이익치 당시 현대증권 회장. 이씨는 정몽헌 회장에게 아버지로부터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전할 친서(親書)를 받아낼 것을 주문했고, 그 친서를 갖고 일본으로 날아가 오랜 지인이자 북한통인 재일교포사업가 요시다 다케시에게 전달했다. 요시다는 평양으로 건너가 김정일 위원장에게 친서와 함께 정몽헌측의 경협 조건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정몽헌(사실상 이익치)측이 북한에 제시한 경협 조건은 정몽구측 보다 훨씬 파격적이었으며, 그 결과 대북사업권을 따냈다. 박세용 당시 현대그룹 종합기획실장이 정몽헌측의 경협조건을 보고 놀라 “그렇게 하면 현대가 망한다”며 정주영 전 명예회장에게 진언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현대주변에 떠도는 이야기다.

이씨는 또 지난해 대선을 앞두고 유력한 후보였던 정몽준 의원을 공격했고 대북송금 특검 과정에서 현대 비자금 150억원을 언급해 정몽헌 전 의장을 궁지로 몰았다. 현대가에서 정몽헌 전 회장의 죽음과 관련, 이익치씨에게 분노하고, 그가 끝내 빈소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셈이다.

박종진 기자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