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워지지 않는 몸과 마음, 밖으로 나온 욕망의 흡입구

[시네마 타운] 바람난 가족

채워지지 않는 몸과 마음, 밖으로 나온 욕망의 흡입구

‘바람’보다 좀 더 공식적이고 무거운 용어는 ‘불륜’ 혹은 ‘외도’이다. 불륜은 지난 50년 동안 한국영화에서 가장 인기 있던 소재 중의 하나였고 흥행과 직결되는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어 1956년의 <자유부인>, 1968년 <미워도 다시 한번>, 1971년 김기영 감독의 <화녀> 등이 대표작에 꼽힌다.

특히 1980년대 5공화국의 출범과 더불어 검열의 완화, 성 개방과 성 상품화의 봇물을 타고 1982년 <애마부인>을 필두로 수많은 부인의 혼외 정사를 다룬 영화들이 붐을 이뤘다. 그 동안 남편의 외도를 다룬 영화들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가부장제 사회에서 가족의 중요성과 유교적 도덕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유부녀의 바람이 더욱 적절하고 흥미로운 소재로 여겨졌다.

1990년대 말에 등장한 두 편의 영화는 페미니즘의 영향, 가부장제의 약화, 남성중심적 시각으로 묘사된 여성의 성 욕망에서의 탈피, 여성주체적 행동 등을 내세워 기존의 불륜소재 영화들과는 차별화했다.

<정사>(1998)에서 동생의 약혼녀와 사랑에 빠진(바람 난 게 아님) 서현은 남편이 그 사태에 대해 판단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할지 스스로 결정을 내린다. <해피엔드>(1999)에서 최보라가 바람을 핀 것은 사회적으로 어떻게 처벌을 내릴 수 있는 게 아니어서 남편 최민기가 살해를 하지만 그에게 남는 것은 오히려 더 허무한 일상일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더구나 남편은 실직했고 아내는 영어학원 원장이었다).


한가족의 바람과 사회적 함수관계

<바람난 가족>은 위의 영화들과 연장선상에 놓고 볼 때 분명 여러 가지 면에서 문제작이다. 불륜이 여성 개인의 잘못된 선택으로 인한 문제이며 여성을 가족 파괴의 주범으로 설정해왔던 것에 비해 <바람난 가족>은 모든 가족 구성원 각자의 외도라는 이슈들이 가족이라는 큰 테두리 안에서 어떤 역학관계를 갖고 있는지, 한 가족의 바람으로 인한 변화들이 사회 전체의 변화와 어떤 함수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잘 만들어진 드라마를 통해 설득력 있게 그려내고 있다.

30대 변호사인 남편 영작과 전직 무용수이고 현재 무용의상을 만드는 호정, 그리고 그들이 입양한 아들 수인은 넓어보이는 평창동 단독주택에 살고 있다. 영작은 20대의 섹시한 사진작가와 바람을 피우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호정은 오히려 자신이 아니라도 영작이 마음을 터놓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영작에게서 채워지지 않는 몸과 마음이 답답할 때쯤 호감을 품은 옆집 고등학생 지운이 ‘화끈한 연애’를 제안한다. 지운 또한 부유한 가정이지만 이혼한 아버지와 살면서 기물(특히 유리나 거울) 파손으로 인한 자해로 아버지에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수 밖에 없는 문제아다.

호정은 지운의 섹스 파트너가 아니라 선생님이 되어주고, 호정이 절실히 누군가의 위로가 필요할 때 지운은 그녀의 파트너가 되어준다.

이 가족에게는 세가지 결정적인 사건이 순차적으로 발생한다. 하나는 북에 가족을 두고 온 아픔으로 술로 세월을 보내 간암에 걸린 영작의 아버지 창근에 관한 것이다. 창근은 아버지와 같이 남하했지만 남쪽에서 다시 장가를 간 아버지가 싫어서 모든 가족이 영작의 할아버지와 연락두절 상태다.

결국 창근은 죽고 영작은 할아버지를 찾아 나서지만 할아버지는 몇 년 전에 이미 돌아가셨다는 얘기만 듣는다.

한국전쟁의 잔해는 영작의 아버지를 통해서만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영작이 담당하고 있는 소송사건에도 등장한다. 어느 마을에서 6.25 때 동네 주민들에 의해 매장된 그 마을 사람들의 부모 혹은 조부모의 유골이 발견되면서 처벌과 보상문제가 발생한다.

하지만 유골들도 이미 세상을 뜬 창근과 그의 아버지처럼 자연사가 아니었어도 덮어둘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전쟁을 경험한 이후 어쩌면 이미 가족의 연대기적(대가족 족보) 고리는 끊어져 버렸다는 것을 암시한다.

두 번째는 영작의 사소한 교통사고에서 시작해 극도의 비극을 가져오는 사건이다. 집에는 세미나에 참석한다고 둘러대고 사진작가와 여행을 다녀오던 길에 영작은 자폐성향이 있는 우편배달부 지루와 충돌한다. 영작은 자신이 법조인이라는 위치와 부를 이용해 모든 책임을 지루에게 씌운다. 그러나 영작의 진술 때문에 직장을 잃은 지루는 아들 수인을 납치해 살해하고, 자신도 목숨을 끊는다.

수인을 잃은 슬픔은 그 동안 전혀 다툼의 원인이 아니었던 외도에 대한 싸움으로 이어진다. 영작의 슬픔은 집에서 호정과는 등을 돌린 채 다른 방향의 욕실에서 샤워를 하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어두운 창가 너머로 보이도록 처리된다.

호정의 비애는 비 내리는 오후 산에 올라가 통곡을 하는 모습과 병원에서 나와 지운과 무용 연습실에서 섹스를 하면서 울부짖는 처절함으로 처리되고 있다. 사실 이 장면은 호정이 아들을 잃은 슬픔조차 남편과는 함께할 수 없다는 비극, 그리고 사랑해서나 욕정 때문이 아니라 선택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위안이라는 것, 그래서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 질 수 있었다는 것을 의미함과 동시에 왜 이 영화에 나체가 많이 나오고 섹스가 직설적으로 묘사되고 있는 지에 대한 결정적인 의미를 제공한다.


어른들이 함께 보고 고민해야

마지막 사건은 호정이 지운의 아이를 임신하고 독립을 선언하는 것이다. 호정과 영작이 함께 할 때 이들의 집은 대부분 밤이고 어둡다. 밝은 때는 수인이 함께 있을 때 실내에 불이 환하게 켜져있을 때일 뿐 채광이 좋을 것 같은 이들의 주택에는 자연광이 환하게 비춰주는 때가 없다. 마지막 호정이 짐을 챙겨 떠난 것을 집에 들어온 영작이 발견할 때야 비로서 거실은 햇빛으로 밝다.

초반 부에 등장해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게 살아야 한다며 초등학교 동창 애인과 멀리 떠나는 60살 시어머니 병한의 충고는 가족 속에서 존재의 의미를 깨닫고 있다고 생각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던지는 메시지나 다름 없다. 중요한 것은 영화에 등장하는 개인들의 변화(특히 여성들의)가 가족의 변화(한 부모 가족, 입양가족, 동거 가족의 출현), 그리고 사회의 변화(후기 자본주의)와 맞물려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영화의 카피처럼 아내에게는 보여주지 말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어른들이 함께 보고 고민해봐야 가족과 사회의 격변하는 흐름을 덜 아프게 견뎌낼 수 있을 것이다. <바람난 가족>은 <살인의 추억>에 이은 올해의 수작임에 틀림없다.

시네마 단신
   
<와일드 카드> 형사팀, 명예형사 됐다

영화 <와일드 카드>에서 강력반 형사로 출연했던 정진영, 양동근, 한채영이 명예 경찰이 됐다. 경찰청은 이들이 이 영화에서 바람직한 경찰상을 보여준 것에 감사하는 뜻으로 이들 3명을 명예경찰 경위로 위촉하고, 김유진 감독에게는 경찰청장 감사장을 수여했다.


충무로, 저작권 위반 법적대응

영화 콘텐츠 동영상을 다운받아 볼 수 있는 인터넷 사이트에 대해 충무로가 법적 처벌을 요구하고 나섰다. 플래너스(주) 시네마서비스, CJ엔터테인먼트 등 22개 영화사로부터 업무를 위임받은 한국영상협회는 7월30일 온파일, 앤폴더 등 4개 P2P 서비스 제공 사이트와 에로스 토토, 데이폴더 등 3개 웹 저장매체를 '저작권 위반' 혐의로 서울지방검찰청에 고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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