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모두 사정권 안에…민주당 신당 미궁 속으로 빠질 가능성도

예측불허 '권풍…' 누가 다치나

여야 모두 사정권 안에…민주당 신당 미궁 속으로 빠질 가능성도

지지부진한 신당 창당 작업으로 바쁜 민주당 정대철 대표와 김원기 고문은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의 긴급 체포 소식에 ‘한 방 얻어 맞은 기분이었다’고 한다.

권 전고문이 체포(8월11일) 되기 며칠 전 두 사람은 권 전고문과 가까운 이용희 고문, 김태랑 최고위원과 함께 수감된 한광옥 최고위원을 면회한 뒤 민주당 전당대회를 낙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민주당의 한 핵심 당직자는 “정 대표와 김 고문이 권 전고문계인 한 최고위원을 통해 전당대회에 동교동계의 참여를 이끌어 내려 했고, 당내 P의원이 한 최고위원을 대신해 그 역할을 하기로 돼있던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그러나 권 전고문이 현대비자금을 받은 혐의로 15일 전격 구속되면서 8월 전당대회는 사실상 물 건너간 꼴이 됐다. 민주당내 ‘신당’ 논란도 미궁에 빠졌고, 정 대표와 김 고문의 고민은 깊어 가는 양상이다. 특히 권 전고문의 구속을 놓고 신ㆍ구주류 간의 갈등이 증폭되면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한 파워게임도 치열해지고 있다.


'구주류 정리' 옴모론 고개 들어

이 같은 상황에서 신주류 강경파가 탈당 불사를 외치며 단독 전당대회를 압박하고, ‘노심(盧心)’을 대변하는 청와대 인사들이 속속 총선 출마를 선언하면서 권노갑 구속 뒤에 숨어 있는 진짜 배경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권 전고문의 전격 구속을 놓고 그동안 검찰의 독자 수사에 따른 결과라는 해석과 함께 ‘음모론’이 꾸준히 제기됐다.

특히 정치적 타격이 적지 않는 구주류 측은 음모론적 시각에서 이번 사태를 보고 있다. 권노갑 구속은 대북송금 특검으로 시작된 신주류 측의 ‘구 주류 정리’마무리 수순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신당 창당을 둘러싼 전당대회를 보름여 앞두고 여전히 순탄한 합의를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권 전고문이 전격 체포된 것은 신 주류의 신당 창당 작업에 동력을 불어넣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이다.

구 주류뿐만이 아니다. 중도파와 신 주류 일각에서도 청와대와 검찰이 사전 교감아래 신당 추진을 위해 펼치는 ‘고공 플레이’라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정대철 대표와 김원기 고문 등이 전당대회를 앞두고 범 동교동계의 좌장격인 권 전고문측에 공을 들인 것은 그 방증이라는 것이다. 두 사람이 권 전고문에 대한 수사상황을 알았다면 구태여 한광옥 최고위원을 면회까지 갔겠느냐는 반문이다.

구 주류 정리든, 고공 플레이든 ‘권노갑 파문’이 몰고 올 ‘후폭풍’의 진로는 여전히 예측불허인 상태. 분명한 것은 ‘권풍(權風)’이 지나간 뒤 ‘한지붕 세가족’(신ㆍ구주류와 중도파)인 민주당의 주인(대표)은 물론 가옥 구조마저 바뀔 가능성이 현저히 높다는 점이다.

권노갑 파문이 신주류의 의도(?)대로 구 주류를 견제하는 결과를 가져올 경우 민주당의 신당행은 가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일부 중도파와 구 주류 측이 불참을 선언하더라도 신당은 ‘개혁신당의 돛’을 올리고 내년 총선을 향해 운항을 시작할 것으로 보인다.

거꾸로 권노갑 파문이 수도권 지역의 신주류와 386출신들의 도덕성을 훼손하는 쪽으로 흐름이 바뀌면 구 주류가 민주당을 장악하는 ‘도로 민주당’이 될 가능성이 높다. 권 전고문이 받은 현대비자금이 2000년 4ㆍ13 총선 때 신주류와 386출신들에게 흘러 갔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어 그 결과를 쉬 예측하기 힘든 상황이다.

마지막으로 확률은 낮지만 신ㆍ구주류가 모두 타격을 입는 경우도 상정 가능하다. 그럴 경우 신당 논의는 유보되고 ‘당 생존과 재건’쪽에 비중이 주어지면서 신 주류측이 추진해온 신당은 총선에 즈음해서야 가능할 전망이다.


심상치 않은 청와대 움직임

권노갑 돈 수사에서 지켜봐야 할 포인트는 민주당내에만 있는 게 아니다. 최근 검찰이 밝혔듯이 ‘권풍’은 민주당은 물? 한나라당까지 사정권내에 두고 있다. 자칫하면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계개편 등 여야 정치지형에 적지않은 변화를 가져올 수도 있다.

이러한 폭풍 전야에 움직이는 청와대의 동태가 심상치 않다. 노무현 대통령과 소위 코드가 맞는 ‘친노’(親盧) 세력인 청와대 젊은 참모들이 잇따라 총선 출마를 선언하고, 이들 중 신당연대, 통합연대. 개혁당 등 개혁그룹과의 연대를 모색하는 인사들이 나타나고 있다. 노 정권의 출범 후부터 꾸준히 논란이 돼온 ‘노심(盧心)’이 다시 주목을 받을 만한 상황이다.

이와 관련, 청와대와 코드가 맞는 신주류 인사가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신당 관련 문건 ‘신당 정국의 분석과 전망’은 노심을 엿볼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한다.

지난 6월에 작성된 것으로 알려진 이 문건은 A4 용지 18장 분량으로, 내용은 크게 ▲신당 정국 흐름 분석 ▲신당 창당의 정치적 환경과 세력 분석 ▲신당 추진의 위기 요인과 상호관계 분석 ▲신당 정국 관리와 신당추진 로드 맵(ROAD-MAP) 등으로 구분돼 있다.

이 문건에서 주목되는 것은 신당의 목적이 개혁 지향의 원내 제1당에 있다는 점이다. 문건은 신주류 온건개혁파의 국민참여신당이 제1당이 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국민참여신당 창당은 ‘합의’에 의한 것이 가장 바람직하지만 당 분란이 악화돼 분당이 불가피할 경우 다단계 탈당을 통한 ‘범개혁 신당’ 창당을 지향하고 있다.

그러나 강경개혁파 주도의 개혁신당은 권력투쟁의 노골화로 당 내부적으로 실현 가능성이 낮은 것으로 보고 있다.

반면 구 주류가 내세우는 리모델링 신당(기득권 포기 없는 통합신당)은 개혁이 배제된 ‘도로 민주당’으로 17대 총선에서 제1 당이 될 수 없을 것으로 본다. 구 주류의 정통모임이 개혁신당을 거부하고 지역구도를 고착화함으로써 ‘호남 자민련’이 될 것으로 분석한 것이다.

신당 로드 맵에 따르면 국민참여신당은 9월 중에 신당준비위를 발족하고 11월경에 창당대회를 여는 것으로 돼있다.

권 전고문의 파문에 휩쓸린 민주당은 신당 추진과 관련해 ‘정중동(精中動)’의 상태다. 정치권의 일각에서는 전당대회 개최 여부와 관계없이 ‘통합신당’파가 민주당의 주류가 될 것이라는 보기도 한다. 그러나 권풍은 이제 시작이다. 태풍의 진로가 어떻게 바뀔지 아직은 예측불허다.

박종진 기자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