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지리 연구가 고제희

"풍수는 감이 아니라 과학입니다"

풍수지리 연구가 고제희


신행정수도 입지선정 관련, 풍수지리분야 자문 전담

‘100여년간 끊겼던 국가 풍수(風水)를 현대판 상지관(上地官)이 잇는다.’참여 정부의 국정 과제인 신행정수도 건설 사업에 정통 풍수지리학이 한 몫을 톡톡히 할 전망이다.

대통령 정책실 신행정수도건설 추진기획단은 8월 5일 고제희(44) 사단법인 대동풍수지리학회 이사장을 기획단 자문위원회 전문위원으로 임명했다.

이에 따라 현재 고 위원은 자문위원회의 ‘경관ㆍ조경 소위원회’ 에 속해 신행정수도 입지 선정과 관련한 풍수 지리 분야에 대한 자문을 전담하고 있다. 최근 두 차례에 걸쳐 자문단 회의에 참석한 그는 위성 사진과 수치 지형도 등을 통해 후보지 물색을 위한 도상(圖上) 조사에 참여하고 있다. 기획단은 내년 상반기중 신행정수도 후보지 2~3곳을 선정, 하반기에 최종 후보지를 확정할 계획이다.


국운상승과 번성의 기운이 첫째조건

이번에 임명된 자문위원회 전문위원 중 풍수 연구가로는 유일하게 뽑힌 그는 우리나라 정통의 이기(理氣) 풍수론인 ‘대동풍수론’을 바탕으로 땅의 길흉을 따지는 풍수지리 전문가. 그는 자연의 순환 궤도를 살피는 패철(佩鐵:방위를 보는 도구)을 통해 방위와 혈(穴) 등을 살펴 특정의 터가 왜 좋고 나쁜 지를 풍수 경전에 입각해 이론적으로 풀어낸다. 감(感)이 아니라 과학이다.

1980~90년대 고 육영수 여사의 묘 자리를 선정했던 지창룡씨나 김대중 전 대통령 부모의 묘를 이장한 손석우씨가 풍수 전문가로 한 시절을 풍미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풍수경전을 바탕으로 한 탄탄한 이론적 근거 보다는 개인적인 감을 중요시했던 탓에 풍수지리는 미신이나 도술이란 오해를 불러 일으키는 데 한몫을 했다. 고 위원은 “조선시대에는 과거 과목인 유학과 역학 등과 함께 10개 학문 중 음양풍수학이 포함될 만큼 합리성을 추구하는 자연 친화적 학문”이라고 강조한다. 특정 터의 좋고 나쁨을 이론적으로 풀이한 일종의 감별 증명서인 결록(訣錄)을 발급, 풍수와 실생활을 하나로 묶는 그는 풍수지리학을 체계화된 과학으로 격상시키고 있다.

고 위원은 신행정수도 선정을 위한 우선 조건으로 “21세기 초일류 국가로 가기 위해 국운의 상승과 번성의 기운을 도모하는 ‘터’로서, 입법과 행정 통치의 효율성에 그 초점이 맞혀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행정수도의 산천지세가 국가 행정과 입법에 맞는 땅을 선정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는 “땅은 무궁무진한 자원으로 무생물이기 보단 만물을 탄생시키고 결실을 맺게 하는 생명체”라며 “땅은 그 개체가 지닌 성격에 맞춰 지덕(知德)이 발복(發福)하는 때가 있고, 땅의 지기가 발동하지 못하 운이 트이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한다. 고 위원은 신행정수도의 위치 선정은 물론 행정기관 건물이 들어설 땅이 그 기관의 성격과 맞는지를 검토하고 건물 지붕의 모양과 형태, 건물의 좌향(머리방향)까지 자문할 것이라는 기대감에 부풀어 있다.


"풍수는 인간을 위한 학문"

삼성그룹 공채 25기 출신으로 삼성항공, 삼성전자에 근무하다 삼성문화재단 문화사업 담당 과장 재직시 풍수지리에 심취했던 그는 1998년 8월 대동풍수지리연구원을 세워 전문 연구가로 나선 이색 경력의 소유자다.

그는 “풍수지리학은 인간을 위한 학문”이라고 단언한다. 무덤자리나 보러 다니는 것 아니냐는 삐딱한 시선에 대해 그는 할말이 많다. 집 하나를 보러 가도 북향인지 남향인지, 시끄럽지는 않은지, 물이 새지는 않는지 둘러보듯 풍수도 마찬가지다.

양택(陽宅)이 산 사람이 살아 갈 곳을 찾는 것이라면 음택(陰宅)은 죽은 사람이 누울 곳을 찾는 것으로 결국 사람을 위한 터 잡기라는 점에서는 동일하다는 것이다. 살아계신 부모를 위해 좋은 집을 얻듯, 돌아가신 부모를 위해 좋은 묏자리를 구하는 것은 인간 된 도리다. 후손의 발복은 둘째로 치더라도 중요한 것은 그 자리에 있을 사람의 평안이라는 얘기다.

고 위원은 조상이 묻혀있는 선영의 풍수가 그 자손들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말했다. 그 대표적인 사례로 최태원 SK 그룹의 회장이 구속되는 등 최근 위기를 맞고 있는 ‘SK가(家)’를 들었다. 사실 고 위원은 최근 SK측으로부터 경기 와우리 선영을 다른 곳으로 이장하는 문제를 검토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수개월간 이 지역을 답사했다.

경기 화성시 봉담읍 와우리에 위치한 SK 선영에는 1대 최종건 회장과 2대 최종현 회장의 묘를 비롯 최 회장의 부모 및 조부모의 묘가 하나의 내룡(산줄기)에 위아래로 자리잡고 있다. SK선영은 소가 편안히 누워 풀을 뜯어먹는 듯한 ‘와우(臥牛: 큰 인물을 내고 자손 대대로 누워 먹을 수 있을 정도로 큰 부자를 배출한다)’ 형세를 갖추고 있다. 이 같은 풍수의 영향을 받아서 인지 SK는 오늘날 국내 유수의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문제는 선친의 묏자리 위치에 있었다. 고 최종건 회장의 부친 최학배 선생과 모친 전주 이씨의 합장묘는 묘역의 맨 위쪽으로 조부모 묘보다 산 위쪽에 있어 소위 역장(逆葬)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특히 내룡의 흐름에 맞춰 그 중심에 묘를 둬 주산에서 뻗어온 산세로 보아서는 생기 발랄하지만, 패철로 보아서는 음양의 기운이 쇠약하다고 고 위원은 진단했다.

즉 총명한 자식이 일찍 죽고, 규중의 부녀와 딸들도 상할 흉한 좌향이라는 해석이다. 고 위원은 “장남 최종건 회장이 48세에 쓰러지고 차남 최종현 회장 역시 1998년(향년 68세)에 세상을 뜨는 등 장수하지 못한 것은 풍수적 흉함이 자식의 운명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친 것이라 여겨진다”고 풀이했다.

고위원은 “1대 최종건 회장의 묘는 부모 묘 아래에 자리잡고 있는데 용맥의 흐름이 꺾였고 지세도 쇠약한 곳”이라며 “자손들은 똑똑하고 재물은 쌓일 것이나 좌청룡의 우뚝 솟은 봉우리는 자손중에 흉한 일을 일으킬 흉상”이라고 말했다.


SK선영, 현대 계동사옥 터 안좋아

최근 정몽헌 현대아산 이사회 회장이 투신자살한 현대 종로 계동 사옥 터에 대한 그의 평가도 눈길을 끈다. 원래 계동은 조선 초부터 명당으로 주목 받는 터였다. 세종때는 창덕궁 서쪽 천하의 명당으로 꼽혀 이궁(離宮)인 창덕궁을 계동 쪽으로 옮겨야만 나라가 만대로 이어진다는 얘기까지 나올 정도였다.

이곳은 주산인 응봉이 매를 닮아 꿩이 매의 공격을 피해 납작 엎드린 복치혈(伏雉穴)의 형국에 해당한다. 매의 공격에 쫓겨 다급해지면 꿩은 엉덩이를 바깥으로 내놓은 채 머리만 풀숲에 박고 있는 형세. 이때 목에 힘이 잔뜩 들어가면서 긴장이 조성되는데, 그 긴장감이 지기의 발동을 불러 복덕을 가져 다 준다는 해석이다.

하지만 매가 꿩의 엉덩이를 못 볼 리 없다. 곧 매가 발톱을 곧추 세운 후 꿩의 엉덩이를 사정없이 낚아 채 잡아먹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고 위원은 “이 같은 복치혈의 터는 몸을 숨기기는커녕 오히려 세상에 드러내 놓아야 하는 모험과 도전 정신이 끊임없이 요구되는 기업의 터로는 부적합하다”고 평가한다.

현대그룹의 흥망사도 이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긴장감속에 안전하게 숨어 매의 공격을 피할 수 있는 은신과 공부에 적합한 학자들의 터로 써야 제격이라는 진단이다. 따라서 조선시대 외교문서를 관리하던 승문원과 천문을 관측하던 관상감, 근대에는 민족교육의 산실인 휘문학교가 있었던 이곳은 땅을 지기의 성격에 맞게 이용했던 것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청계천 복원, 풍수지리적으로 큰 의미

청계천 복원공사와 관련해 고 위원은 “환경적인 부분 외에도 풍수지리적으로 봤을 때 그 의미는 매우 크다”고 강조했다. 고 위원에 따르면 서울의 중심부를 관통하는 청계천은 내당수이고 한강은 외당수에 해당한다.

동에서 서로 흐르는 한강과 이에 역행해 서에서 동으로 흐르는 청계천이 만나는 경우를 ‘명당수(明堂水)’라고 한다. 풍수에서는 ‘명당수’란 한자만 봐도 부귀가 쉬지 않는 터로 해석한다. “땅은 물로 인해 생기를 응집하는데 물이 역행해 흐를 경우 강력한 생기가 모여들고 이 기가 발동해 그 땅에 의지해 사는 사람들에게 복을 가져 다 준다”는 설명이다.

지난해 고 박정구 금호그룹 회장의 묘자리를 포함해 금호그룹 5형제의 경기 화성시 팔탄면 기천리 선영을 선정하는 작업에도 참여했다. 저서로는 ‘쉽게 하는 풍수공부’, ‘한국의 묘지기행(전3권)’, ‘실록소설 문화재 비화(전2권)’, ‘누가 문화재를 벙어리 기생이라 했는가(우리 문화재의 숨겨진 이야기)’등이 있다.

장학만 기자


장학만 기자 local@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