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스탠더드 팝의 대부 "내가 마이카 1호 가수"

[추억의 LP여행] 최희준(上)

한국 스탠더드 팝의 대부 "내가 마이카 1호 가수"

한국 스탠더드 팝의 대부 최희준. 1957년 서울법대 3학년 때 교내 장기 자랑 대회에서 입상 하며 노래 인생을 시작, 미 8군 무대를 거쳐 1960년 '목동의 노래'로 데뷔했다.

이어 '우리 애인은 올드 미스', '진고개 신사', '맨발의 청춘', '빛과 그림자', '하숙생', '종점'등 수많은 히트곡 퍼레이드로 대중들의 심금을 울려 준 그는 가수 출신으로는 최초의 국회 의원이었다.

그는 또 민요와 트로트 일색이던 60년대 초, 미8군 클럽을 주무대로 활약하며 위키 리, 유주용, 박형준, 작곡가 손석우, 김기웅과 함께 밝고 건강한 홈 가요의 보급으로 대중 가요를 발전시켜보자는 ‘신가요 운동’의 기치 아래 포 클로버스라는 최초의 노래 동아리를 결성해 가요 부흥에 앞장 선 선구자였다.

최희준(본명 최성준)은 전국 각지에 많은 땅을 소유했던 대지주 부모의 늦둥이로 1936년 1월 4일 서울 종로 익선동에서 태어났다. 집안 분위기는 봉건적이고 엄격했다. 어려서부터 매우 총명했던 그는 방산초등학교, 경복중학교를 거쳐 경복고에 진학했다. 6ㆍ25전쟁이 터져 수원 피난민학교에 잠시 다니는 등 어수선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도 학업에 열중했다. 그는 경복고 졸업 후 55년 서울대 법대에 합격했던 수재였다.

하지만 부친의 희망을 따라 선택했던 전공에는 관심이 덜했던 그는 수업이 없을 때는 학교 앞 '별장다방'에서 소일하며 팝송을 알게 됐다. 이후 팝송의 매력에 빠져든 그는 AFKN을 통해 흘러나오는 최신 팝송에 심취했다.

1957년, 대학 3학년 때 서울대 장기 자랑 대회에서 법대 대표로 나가 김광수 악단의 반주로 '고엽’등 외국 노래를 불러 입상을 한 것이 가수 인생의 시작이 되었다. 이를 인연으로 미 8군 쇼 밴드 마스터 파피에게 소개되어 쇼 보트라는 단체에 소속되면서 본격 가수 활동을 시작했다.

가정 교사보다 수입이 짭짤한 미 8군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긴 했지만 프로 가수가 되려는 마음은 없었다. 58년 대학 졸업반 때 고시에 낙방해 진로 문제를 고민하던 중 미 8군 무대에서 노래하던 친구의 소개로 작곡가 손석우를 만났다. 1960년 명동의 어느 다방. 새로운 목소리를 찾고 있던 당시 40세의 손씨는 그에게 노래를 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직업 가수가 되려는 마음은 없었던 지라 망설였다. 한번 낙방한 고시에 대한 미련을 완전히 접은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가수가 될 만큼 노래를 잘 알지 못한다는 생각이 컸다. 그러나 "처음부터 음악을 모르는 건 가수로서 흉이 아니다"는 손씨의 애정어린 충고에 용기가 생겨 가수로 나설 결심을 했다.

손씨는 '목동의 노래', ‘우리 애인은 올드 미스' 등 4곡을 가져 다 주었다. “제목처럼 재미난 노래였어요. 냇 킹 콜이 부른다면 아마 이렇게 부르겠지 하는 마음으로 녹음을 했습니다.” 작곡가 손석우는 본명인 성준 대신 ‘항상 웃음을 잃지 말라’는 뜻으로 희준(喜準)이라는 예명을 붙여주었다. 노래는 히트했고 가수 최희준으로 세상에 처음으로 이름을 알렸다.

이후 61년 '우리애인은 올드미스'가 히트할 무렵 해병 연예대 소속 멤버로 입대해 선배 도미(본명 오종수), 코미디언 임희춘 등과 함께 강원도 주문진에서 모병(募兵) 선전 영화를 찍기도 했다. 최희준은 미8군 무대에서 알게 된 한명숙을 손씨에게 소개해 '노란 샤쓰의 사나이'로 황색돌풍을 일으키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진고개 신사`부터 `하숙생`이 나왔던 무렵인 63~65년 사이에 그는 `맨발의 청춘`으로 가수로서의 중요한 전환점을 그었다. 가사가 검열에 걸려 판금 당한 `월급 봉투`를 비롯해 `엄처시하`, `길 잃은 철새`, `잃어버린 태양``, `샐러리맨 출세 작전`등이 이 무렵 나온 대표곡이다.

당시 유행하던 라디오 드라마나 영화의 주제가로 쓰였던 노래였다. `엄처시하`는 MBC 라디오 드라마 주제곡이었으며 `길 잃은 철새`는 TBC 드라마인 `특호실 여자 손님`의 주제곡이었다.

또한 `잃어버린 태양`, `위를 보고 걷자`는 동명의 영화 주제곡이었으며, 직장인들의 출근 무렵에 방송돼 인기를 끈 `샐러리맨 출세 작전`과 `광복 20년`은 각각 MBC와 TBC의 라디오 드라마 주제곡이이었다. `진고개 신사`의 심영식이 노랫말을 지은 `뜨거운 침묵`은 사형수의 사랑 얘기를 담은 KBS 드라마 주제곡이었다.

이런 주제가 홍수는 60년대 가요계의 특징 가운데 하나다. 당시는 방송국 개국이 급 물살을 타던 시기. 문화방송(MBC·61년)·동아방송(63년)·동양방송(TBC·64년) 등이 라디오 방송을 시작했다. 이전에 나온 KBS를 포함해 다채널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TV도 KBS·TBC·MBC 순으로 3대 TV 채널 시대로 자리잡게 된다.

61년 그는 남산의 KBS 스튜디오(지금 영화진흥위원회 시사회실)에서 열린 개국 쇼에서 `우리 애인은 올드미스`를 불렀다. 이후 63년 ‘진고개신사’, 64년 ‘맨발의 청춘’, ‘빛과 그리고 그림자’, 65년 ‘하숙생',‘종점’ 등을 연이어 히트 시키며 가수왕에까지 등극하는 전성기를 구가하며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바쁜 일정에 늘 쫓겼던 그는 64년 자가용을 마련해 마이카 1호 가수가 되었다.

최규성 가요칼럼니스트


최규성 가요칼럼니스트 kschoi@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