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류 아우르는 통합신당으로 가닥, 지역 위력에 개혁 주춤

돌고 돌아 '도로 민주당?'

신·구류 아우르는 통합신당으로 가닥, 지역 위력에 개혁 주춤

민주당의 신당 문제가 우여곡절 끝에 밑그림이 완성돼 가는 느낌이다. 신ㆍ구 주류는 일단 추가적인 신당 논의는 배제한 채 ‘통합신당’으로의 의견조율을 위한 막판 절충을 시도하고 있다. 지난해 12ㆍ19 대선이 끝난 뒤부터 탈당과 분당 등 위기 상황을 거쳐온 지 8개월여만의 일이다.

8월22일 열렸던 신당 관련 대화ㆍ조정기구 모임에서는 전당대회 또는 대의원 여론조사 중 한가지로 한다는 데까지 의견접근이 이뤄졌으며, 의제 내용도 ‘신설합당식 통합신당’ 대 ‘흡수합당식 통합신당’을 놓고 대의원들의 선택에 맡기도록 했다. 이는 합당 방식의 차이일 뿐 실제 내용적으로는 신ㆍ구 주류 양측을 아우르는 ‘통합신당’의 출범을 알리는 수순이다.

여기에다 이번 신당 논의가 마무리되면 더 이상의 추가 신당 논의는 없다는 것도 양측이 잠정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통합신당이 개혁신당으로 가기 위한 징검다리’라는 구 주류 측의 의구심을 해소하기 위한 일종의 신뢰 조치이다.

신당파 좌장인 김원기 고문은 23일 “아직 그렇게(의견 접근이라고)까지 말하긴 어렵다”면서도 “정통모임(구 주류)이 전보다 좀 나아진 것 같다”고 말했고, 조순형 의원도 “구 주류 측이 전당대회 개최 자체에 대해 각종 문제를 제기하며 반대했던 데 비하면 진전이 있었던 셈”이라며 신당 논의의 발전적 진행과정을 소개했다.

구 주류 측은 방식의 차이를 떠나 내부 이견이 결국 통합신당으로 귀결되는 만큼 별다른 반발은 없는 상황이다. 지도부 교체 등을 일각에서 제기할 수는 있지만 일단 개혁신당의 깃발을 잠재웠고, 민주당의 정통성을 살려 나갈 수 있다는 데에 만족하는 것 같다. 문제는 신 주류 강경파들이다.

정권이 출범하기 전부터 노무현 대통령의 ‘복심’(腹心)으로 불린 이들 강경파는 “모든 기득권을 버리고, 새 정치문화를 이룩하고, 망국적인 지역감정을 해소하기 위한…” 등의 각종 수식어를 앞세워 개혁신당의 기치를 높게 세운 바 있다. 이 때문에 호남 중심의 동교동계 등 구 주류보다는 당 밖의 김원웅, 유시민 의원의 개혁정당과 더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고, 한나라당 탈당파와도 상당한 교감을 유지해 왔다.

그러면서 전국정당의 기반을 닦을 수 있는 개혁신당만이 유일한 살 길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지금 상황은 그토록 본인들이 반대해오던 ‘도로민주당’의 길로 들어서고 있다.


개혁신당 외침은 어디로…

신당 파동이 통합신당으로 결정될 경우 전체적으로 민주당의 의석 수와 지지기반 면에서 약간의 상승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아직은 유보적이지만 내년 총선을 앞두고 김원웅 대표의 개혁정당과 한나라당 탈당파의 통합연대 등과 손을 맞잡고 반(反) 한나라당 연대를 구축한다면 겉 포장 모양새는 ‘개혁 대 보수’라는 보혁구도를 이뤄낼 수 있다.

더구나 민주당 대주주 격인 호남민심을 붙잡으면서 상대적으로 한나라당에 시큰둥한 ‘젊은 표심’마저 끌어온다면 수도권 등 격전지에서 의외로 큰 수확을 일궈낼 수도 있다.

하지만 민주당의 숙원이고 노 대통령의 최대 희망인 ‘동진(東進)전략’에는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기존의 틀 자체를 깨버리는 개혁신당의 모습이 아닌 현재의 민주당을 리모델링하는 정도의 신당이라면 한나라당 텃밭인 영남권에서는 더 이상 매력을 끌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아직도 ‘민주당=호남당’이란 지역 등식이 각인돼 있어서다.

문제는 또 있다. 노 대통령 후보 옹립에서 당선에 까지 이르게 했던 1등 공신들의 그간 주장이 무위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구 주류 전체를 사실상 퇴출 대상으로 몰아가면서 신 정치를 펼쳐야 한다고 강조했던 그들이다. 구 주류로부터 ‘5적’ 이라고 지목받은 당사자들은 줄곧 “노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모든 기득권을 버린 채 국민에게 당당히 심판받아야 한다”고 개혁신당을 주장했다.

이 과정에서 신ㆍ구 주류의 볼썽 사나운 몸싸움이 연일 언론 보도를 탔고, 민주당의 정통성이 오히려 꼬마민주당과 합당한 한나라당에 있다는 주장마저 나오면서 양측의 갈등은 극도로 치달았다.

분당 직전까지 대립각이 세워졌던 이들이 결국 통합신당으로 미봉되면 내년 총선을 위해 어떤 슬로건을 앞세울지 주목된다. 구 주류 측은 그간 노 대통령을 정면으로 비난하는 공세를 서슴지 않았고, 신 주류 측에서는 구 주류를 청산대상으로 몰아세운 바 있다. 통합신당의 운명은 내년 총선을 앞두고 이들의 마지막 기 싸움에 달려 있다.


'東野西與' 체제 유지되나

민주당이 통합신당으로 자리잡아가면서 가장 타격을 받는 쪽은 노 대통령이 후원하는 신당을 창당해 영남권에서 한나라당과의 한판 승부를 벼렸던 인사들이다. 지역기반에 충실하는 현재의 ‘동야서여’(東野西與) 체제가 유지될 경우 이들의 설 곳은 없다.

민주당 간판의 영남 승부나 한나라당 간판의 호남 승부는 결과가 정해진 사지(死地)에서의 싸움이다. 실제 최근의 한나라당 사고지구당 공모책 과정에서도 유일하게 호남지역은 단 한명의 지원자도 나오지 않았다.

민주당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아무리 통합신당 간판을 내세우더라도 동진(東進)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오히려 통합신당 자체가 영남단결 및 호남결집을 더욱 공고히한 측면이 강하다. 신 주류에서 청산대상이라고 소리높였던 지역정치의 ‘화끈한 부활’인 셈이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이로 인해 영남권, 그중 노 대통령의 고향인 부산ㆍ경남(PK)지역을 중심으로 한 독자신당 이야기가 솔솔 피어 오르고 있다. 어차피 이 지역에서 민주당(통합신당이든 간에) 간판으로 힘들기 때문에 여권 일부와 친여 PK세력을 주축으로 ‘노무현 신당’을 만들어 총선에 임하자는 전략이다. 민주당 인사들은 호남을 위시한 기존 지역구를 수성하는 방향으로, 신진 인사들은 신당의 간판으로 한나라당을 공격하자는 두 토끼 잡기 방안이 마련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는 현 민주당과 부산 등 영남권 중심의 신당이 한나라당 포위전선을 구축한 뒤 상황에 따라 총선전 합당하거나 아니면 복수여당 체제로 선거를 치른다는 계산도 깔려있다.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도 이에 대해 “여권은 총선을 앞두고 뭔가 깜짝 쇼를 통해 실정에 대한 국민의 심판을 피해가려 할 것”이라면서 “최악의 경우에 대비하고 있다”고 언급하고 있다.

하지만 한나라당으로서는 이런 여권 전략에 맞불을 놓을 수 있는 마땅한 연대세력이 없다는 데 고심하고 있다. 일부에선 충청권 총선대책의 일환으로 자민련과의 공조 추진을 주장하고 있지만 득보다 실이 많다는 지적도 만만찮아 고민하고 있다.

염영남기자


염영남기자 libert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