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재계·군 등 각 분야서 금녀의 벽 허문 당당한 대한민국 최초들

[여성1호] 양성 평등시대 연 '전女미답'의 개척자

법조·재계·군 등 각 분야서 금녀의 벽 허문 당당한 대한민국 최초들

애초에 길은 없었다. 사람들이 자주 다니다 보니 길이 생긴 것일 뿐. 그래서 우거진 수풀을 헤치고 발 밑에 깔린 돌을 치워가며 맨 처음 그 길을 개척한 이의 의미는 각별할 수밖에 없다.

‘1호’. 시대가 바뀌어도 그 상징성에 환호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일 지도 모른다. 1호가 있기에 2호, 3호가 탄생하고 그러면서 자연스레 길이 만들어지는 것일 테니까.

하지만 이는 토양이 척박하고 아직 개척되지 않은 길이 너무 많다는 것의 반증이기도 하다. 양성 평등의 시대라는 2003년, 하루가 멀다 하고 숱한 ‘여성 1호’가 탄생하는 것은 그래서 반갑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다.


법조계를 강타하는 女風

2월27일 구성된 노무현 정부의 첫 내각은 파격 일색이었다. ‘50대 후반 장관’의 관례는 무너져 40대 젊은 장관이 발탁됐고, 금과옥조였던 학벌과 서열은 무참히 파괴됐다. 국무총리를 제외한 20명의 각료 중 사상 최대라는 4명의 여성 장관을 배출하기도 했다.

너나 할 것 없이 ‘파격 장관’의 대열에 올랐지만 유독 여론의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된 인물은 강금실 법무부 장관이었다. 최초의 여성 법무부 장관. 통상 여성을 배려하기 위한 부서로 인식되던 여성부나 환경부, 혹은 보건복지부 등과는 의미가 분명 달랐다. 핵심 장관 부서인 것도 그렇거니와 법조계가 어느 관료 조직에 비해 서열과 남성 중심적 조직 문화가 뿌리 깊은 곳이라는 점에서도 그랬다.

게다가 지휘 라인 아래 쪽에 있는 검찰총장과는 사시 기수가 무려 10회나 차이 나는 젊은 법조인(사시 23회)이었다. 이후 노 대통령이 마련한 사상 초유의 ‘검사와의 대화’ 자리에서 강 장관은 온 국민이 지켜보는 앞에서 당당하고 소신 있는 법무부 장관의 위상을 과시함으로써 일거에 ‘스타 장관’으로 각광을 받았다.

직접 연관성을 부여하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지만 여성 법무부 장관의 탄생이 불과 6개월 뒤 사법부의 여성 헌법재판소 재판관 탄생에 기폭제가 된 것은 분명했다. 대법관 인사 개혁에 대한 법관 내부의 열망이 들끓던 8월 초. 한 법관은 당시 내부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이웃집인 검찰에서 여성 법무부 장관을 탄생시킨 마당에 대법원은 언제까지나 서열 위주의 인사를 해야 하느냐는 불만이 보수 성향의 법관들에게까지도 확산되고 있습니다.” 변호사, 시민단체 등으로 구성된 시민추천위원회에서 6명의 대법관 후보를 공개 추천하면서 2명의 여성 법관을 포함시킨 것도 이런 분위기를 다분히 반영한 것이었다.

‘꿩 대신 닭’의 성격이 짙기는 했지만 대법원은 8월 중순 헌법재판소 재판관에 사상 처음으로 여성 법관을 임명 제청했다. 고등법원 형사부 첫 여성 부장이었던 전효숙 신임 헌재 재판관이었다. 이로써 법원에서 대법관 자리를 제외하고 여성 법관들에게 미답(未踏)의 영역은 거의 사라졌다.

1995년에는 이영애 현 서울고법 부장판사가 여성으로서 처음으로 차관급인 고법 부장판사로 승진했고, 2001년에는 윤현주 판사가 첫 서울지법 형사단독판사에 발령되기도 했다.

검찰 조직에 대한 여성 검사들의 침투 속도도 빨라지고 있다. 가장 최근 주목을 받은 ‘여성 1호’는 공안부 여성 검사. 검찰은 82년 여성 검사가 최초로 임관한 이후 지금까지 대공 선거 학원 노동 사건 등을 처리하는 공안부에 대해 사건의 중요성과 살인적인 업무량 등을 이유로 지금껏 여성 검사를 한 명도 배치하지 않아 왔다.

이번에 공안부로 발령된 여검사는 대전지검 강형민 검사(사시 38회)와 서울지검 서인선(사시 41회) 검사. 검찰 관계자는 “여성 공안검사의 탄생으로 과거 정권 유지의 한 축으로 인식되던 공안부의 이미지 개선이 이뤄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민간의 '여성 1호'들

여성 할당제 등 정책적 배려가 없는 민간의 경우 아직 남성 중심의 조직 문화에 여성이 비집고 들어갈 틈은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그래서 오히려 ‘1호’의 탄생이 더 비중 있는 뉴스로 다뤄지기도 한다.

올해 재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인물은 삼성전자의 첫 공채 여부장 황미정씨. 85년 공채를 통해 삼성전자에 입사한 뒤 줄곧 반도체 관련 기획ㆍ조사 업무를 맡아오다 3월 반도체 사업부인 디바이스 솔루션 네트워크(DS) 총괄기획팀 부장 직을 맡았다.

사정을 모르는 이라면 ‘삼성전자 첫 공채 여성 부장’이라는 수식어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을 수도 있다. “아무리 국내 최대 기업이라지만 무슨 일개 기업의 부장직을 두고 1호를 운운합니까. 홍보를 위한 홍보 아닙니까.” 하지만 재계의 척박한 여성 인력 진출 현황을 살펴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국내 최대 재벌이라는 삼성그룹에서 여성 임원은 그나마 올 초 승진 인사에서 3명이 늘어나 총 8명에 불과하다. 이 중 여성 파워가 센 광고 업계의 대부로 통하는 제일기획 최인아 상무를 제외하면 모두 외부 영입 케이스. LG그룹 역시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으며, 현대자동차 그룹과 SK그룹에서는 아예 여성 임원을 한 명도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다.

금융권에서도 ‘여성 1호 임원’가 탄생한 것은 최근의 일이다.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이 99년 외국 금융기관에서 30년 가량 경력을 쌓은 서송자씨를 IT본부장으로 영입하면서 ‘은행 첫 여성 임원’이라는 수식어를 달아 주었고, 지금은 하나은행에 합병된 옛 서울은행은 지난해 2월 김명옥 상무를 영업지원본부 담당 부행장으로 승진 발령해 ‘최초의 여성 부행장’을 탄생시켰다. 중앙은행인 한국은행도 지난해에야 처음으로 김선희씨를 여성 부국장에 승진 발령했다.


'금녀의 벽' 사라진 상아탑

학계의 ‘금녀의 벽’도 속속 무너지고 있다. 국내 최고의 권위를 자부하는 서울대 법대는 7월 양현아 박사를 ‘법여성학’ 담당 교수로 임용했다. 57년 역사상 여성 교수 임용은 처음이었다.

물론 순수 법학이 아닌 여성의 시각으로 법을 해석하는 학문이라는 점에서, 또 양 교수가 법학 전공이 아닌 사회학 전공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퇴색될 수는 있지만 서울대 법대라는 상징성 만으로도 화제가 되기에 충분했다.

6월에는 50여년 역사의 국어국문학회에 이혜순 이화여대 국문과 교수가 2년 임기 첫 여성 회장으로 선출됐고, 3월에는 서울대 행정대학원에 처음으로 여성 교수(우지숙 교수)가 임용되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학문의 성격상 남성 교수들의 전유물로 당연시됐던 공과 대학에도 여성 교수들의 진출이 잇따랐다.

부산대 공대가 50년 만에 처음으로 환경공학과 조교수로 우혜진 박사를, 고려대 공대는 화공생명공학과 부교수에 하정숙 박사를 각각 임용했다.

상아탑 내 학생 자치 조직에도 여성들의 파워는 갈수록 강해지고 있다. 99년 연세대가 학생회 역사 37년 만에 첫 여성 총학생회장(정나리씨)을 탄생시킨 데 이어 지난해에는 박순옥씨가 남성 경쟁자들을 제치고 응원단장 자리를 꿰차 뭇 학생들 앞에서 우렁차게 “아카라카”를 외쳤다. 또 올 3월에는 사법연수원 사상 처음으로 최고령 합격자인 박춘희(49)씨가 여성 자치회장에 선출되기도 했다.

군과 경찰에서도 ‘여성 1호’의 탄생은 늘 주목을 받아 왔다. 그 동안 남성들의 조직이라는 인식이 뿌리깊게 자리잡아왔기 때문.

국방부가 지난해 양승숙 대령을 준장으로 승진시켜 창군 53년 만에 첫 여성 장군이 탄생한 것은 일대 사건이었다. 또 지난해 9월 경북 예천 공군 전투비행단에서 열린 고등비행교육 수료식에서 박지연, 박지원, 편보라 중위 등 3명이 ‘빨간 마후라’를 목에 걸어 한반도 영공을 지키는 여성 전투기 조종사가 국내 최초로 탄생하기도 했다.

98년7월 옥천경찰서장에 부임해 경찰 사상 첫 여성 경찰서장으로 ‘티켓다방과의 전쟁’을 펼쳐 주목을 받았던 김강자 현 경찰청 여성청소년과장. 그녀는 이후 미아리 일대를 관할하는 서울 종암경찰서장으로 옮겨 첫 여성 서울 경찰서장이라는 영예도 함께 안았다.


시장에서 총리서리까지

근래 정ㆍ관계에서 가장 주목을 받았던 여성은 역시 지난해 7월 장 상 전 이화여대 총장이었을 법하다. 헌정 사상 54년 만의 첫 여성 국무총리의 탄생을 목전에 두고 있었으니 당연했다. 박지원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은 “21세기는 여성이 국운을 좌우하는 시대이기 때문에 헌정 사상 처음으로 여성 총리를 발탁했다”고 설명했다.

여성 총리 등장에 대한 환호와 우려의 교차. 하지만 국회 인사 청문회 과정에서 부동산 투기, 아들의 미국 국적 취득 문제, 학력 허위 기재, 위장 전입 등 의혹이 줄줄이 불거지면서 결국 낙마했다. 그리고 ‘여성 1호 국무총리’ 대신 ‘여성 1호 국무총리서리’라는 아쉬운 이력만을 남겼다.

대변인을 뜻하는 영어 ‘spokesman’이 ‘spokesperson’으로 바뀌었듯 국내 청와대에도 첫 여성 대변인이 등장했다. DJ 정부 말기인 지난해 초. 박선숙 청와대 대변인은 최연소 수석비서관이라는 타이틀과 함께 화려한 비상을 했다. 2001년 말 민주당이 ‘여검사 1호’로 잘 알려진 조배숙 의원을 정당 사상 처음으로 여성 수석 부대변인에 임명한 데 이어 여성들에게는 또 한 번의 쾌거였다.

여성 전담 부처를 제외한 일반 부처로는 처음으로 2001년 4월 김송자 당시 서울지방노동위원회 위원장이 노동부 차관으로 임명된 것도 파격적인 인사였다. 헌정 이래 각 정권마다 여성 장관이 임명된 사례는 종종 있었지만 비전문가 중심의 구색 맞추기가 전부였을 뿐이었다. 김 전 차관은 전문 관료 출신의 여성 차관이라는 점에서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는 평을 받았다.

시계를 조금 앞으로 돌리면 한나라당 전재희 의원이 ‘여성 시장 1호’의 기록을 갖고 있다. 9년 전인 94년 4월, 정부는 경기 광명시장에 당시 노동부 직업훈련국장이던 전 의원을 임명했다. 여성 첫 행정고시 합격자, 여성 최초 중앙부처 국장 등의 이력에 가장 의미 있는 한 줄을 첨가한 셈이었다.

언론계에서는 장명수 현 한국일보 이사가 98년1월 ‘기자의 꽃’이라는 주필 자리에 오른 데 이어 이듬해 8월에는 사장직을 맡아 모두 ‘여성 1호’의 기록을 안았다. 최초의 여성 편집국장으로는 영자 신문인 코리아헤럴드의 이경희 전 편집국장이 이름을 올렸다.

이영태기자


이영태기자 yt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