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소장그룹의 '60대 용퇴론'에 중진 의원들 발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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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소장그룹의 '60대 용퇴론'에 중진 의원들 발끈

한나라당의 내부 진통이 예상외로 심각하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으로 비유되는 당내 소장파와 중진의원간의 세대교체를 둘러싼 갈등이 갈수록 폭발력을 더해가며 심각한 분열 양상으로 접어들고 있다. 당의 존립 기반을 통째로 흔들만한 두 번의 잇단 대선 패배에도, 텃밭인 PK(부산ㆍ경남)지역 출신 대통령 탄생에도 전혀 끄덕 없던 한나라당이다.

그러나 정작 소속 의원들의 정치생명이 걸린 공천문제에 대해서는 사생결단의 자세로 서로가 ‘샅바’를 잔뜩 조이고 있다.

발단은 8월26일 원희룡 기획위원장(39ㆍ초선ㆍ서울 양천 갑)에서 비롯됐다. 원 의원은 “지역 여론을 보면 내년 총선에서 60세 이상은 어렵다고 본다”며 “희생과 결단으로 길을 터주기 위해 용퇴하는 사람이 무더기로 나와야 한다”고 ‘60대 용퇴론’을 들고 나왔다.

그는 “큰 약점이 없거나 경력이 뒤지지 않는다면 나이가 총선 승패의 중요 요인”이라며 “최병렬 대표가 개혁적 공천 의지가 없다면 대대적 당내 싸움에 들어갈 것이며 그 때는 대표고 뭐고 없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당연히 중진 의원들 사이에서는 난리가 났다. 당장 계파별로 모임을 갖는 등 분주하게 움직였고, 한백회와 상록회 등 당내 중진 의원모임에서는 최 대표에게 원 위원장 문책을 요구했다. 이에 최 대표는 “60대 용퇴론은 당내 뿐 아니라 지역에서도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며 재론시 엄중 문책을 천명했다.

하지만 ‘윗분’ 엄포에 가만히 있을 소장파도 아니다. 원희룡 남경필 오세훈 의원 등 소장파들은 회동에서 “중진들이 계속 공세적으로 나오면 맞받을 것”이라며 반격 채비를 갖췄다. 원 위원장은 “유권자는 50세 미만이 60%를 차지하는데 한나라당은 60대 이상이 50%를 넘는 역삼각형”이라며 “40~50대가 중심이 되는 마름모꼴 정당이 불가피하며 이를 위해 언제든 사표를 낼 각오가 돼 있다”고 일전불사 의지를 밝혔다.


60대이상 의원이 53.0% 수준

원 위원장의 주장을 되짚어 보면 현실적인 공감과 비현실적인 방법론이 극명하게 교차한다. 한나라당 의원 149명중 60대 이상은 총 79명. 전체 53.0%에 해당한다. 이중 70대는 8명이고 60대에서도 내년 총선에 당선되면 70대로 넘어서는 의원들도 상당수다. 분명히 ‘경로 정당급’인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가뜩이나 지난 대선의 패배가 젊은 층의 여론 수렴 실패 탓으로 규명되는 터에 소속 의원들의 물갈이가 없이는 평균 연령은 더욱 높아지고 따라서 차차기인 2007년 대선에서의 승리도 더욱 멀어진다는 논리가 성립되기도 한다.

박관용 국회의장도 “국회가 강화되려면 제도ㆍ기구보다는 국회 구성원의 변화가 중요하다”며 “나도 나이가 찼지만 바꿀 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하고 내년 선거에선 상당한 공천자 변화가 있지 않겠나 생각한다”고 변화에 무게중심을 뒀다.

이에 대해 중진급 의원들, 특히 타깃이 되고 있는 영남권 민정계 출신 의원들의 반발 강도가 거세다. 유흥수 의원은 “나이를 기준으로 한다는 것은 키 160㎝이하는 안 된다는 것과 뭐가 다르냐”고 반문했고, 이상배 의원은 “물갈이는 당헌에 따른 공천과 유권자가 하는 것이지 젊은 의원들이 무 자르듯 할 수 있는 게 아니다”고 반박했다. 이원창 의원도 “나이가 됐으니 물러나라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않고 현실성이라도 있느냐”고 거들었다.

‘60대 용퇴론’의 반발이 거세지자 소장 그룹의 주축인 남경필 의원은 “60세로 잘라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나 총선 승리를 위해 개혁공천이나 인물변화가 필요하다”며 “원로 선배들의 아름다운 결단을 기대하고 그게 안되면 여러 기준과 제도를 통한 공천이 필요하다”고 용퇴론에 초점을 맞췄다.

한 소장파 의원도 “60세 이상이라는 대목보다는 용퇴 여부가 문제다”라며 “앞으로 이런 취지에 염㉶求?초ㆍ재선 의원들을 규합해 세확산에 나설 것”이라며 강경자세를 굽히지 않았다. 이들 소장파는 9월초 정기국회 대비 연찬회를 용퇴론 공론화를 위한 ‘D데이’로 잡고 전면전 준비작업에 들어갔다. 적어도 공천심사위원회의 구성에 젊은 인사들이 대거 들어가 제도적으로 물갈이 작업을 이뤄내야 한다는 태세다.


용퇴할 사람도 못하게 한 전략적 잘못

‘뭔가 바뀌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의견에는 많은 이들이 공감하지만 방법론 면에서는 지극히 회의적인 의견이 많다. 오히려 섣부른 60대 용퇴론이 정말 시급한 당내 개혁을 후퇴시켰다는 비판도 일고 있다.

중간 지점에 있는 재선그룹에서는 나이를 기준으로 한 용퇴여부는 부적절하다고 일단 중진쪽의 손을 들어줬다. 김문수 의원은 “두부 자르듯이 나이를 나눠서 나가라는 주장은 적절치 못하다”면서도 “하지만 도태되어야 할 인사가 많은 것은 사실인 만큼 그 방법을 신중히 연구해야 한다”고 방법론의 문제점을 제시했다.

홍준표 의원은 “세대 통합을 해야 할 마당에 갈등을 부추기는 철부지 망상이며 그 기준을 들이대면 최 대표와 홍 총무부터 나가야 한다”며 “물갈이는 해야 하지만 젊은 사람이 철없이 성급하게 나서 용퇴할 수 있는 사람도 못하게 분위기를 만든 것은 전략ㆍ전술적으로 잘못”이라고 노골적으로 비판했다.

지금까지의 당내 분위기는 이렇듯 소장파와 중진간의 반목으로 흐르고 있지만 이면에는 최 대표를 향한 의심의 눈초리도 많다. 아무리 최 대표가 재발방지를 주문하고 있지만 원 위원장은 대표가 임명한 직계 당직자이다. 더구나 최 대표는 대표 경선을 전후해 당내 변화를 늘 외쳐왔고 내년 총선 결과에 대표직을 걸겠다고 공언해 왔다.

또 아직도 곳곳에 남아 있는 이회창 전 총재의 그림자도 최 대표에게는 부담으로 남아 있다. 결국 물갈이 공천, 그것도 대폭적인 변화가 필요한 상황이다.

하지만 당내 기반이 약한 최 대표 입장에서는 본인이 총대를 매기에는 역부족이다. 이 때문에 젊은 초선의원들의 힘을 빌어 물갈이 공천에 시동을 걸려고 하는 것이 아니냐는 시선이 있다.

이에 홍 의원은 좀 색다른 주장을 폈다. 그는 최 대표(서울 강남 갑)와 원 위원장 및 오세훈 청년위원장(서울 강남 을) 등을 지목, “서울 강남 지역구 의원들은 강북의 어려운 지역에 도전하고 당선이 쉬운 강남은 신진인사 영입 몫으로 활용해야 수도권에 바람이 분다”고 ‘강남 물갈이론’을 주장했다. 그는 “젊은 의원도 (물갈이)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세대교체를 위한 60대 용퇴론과 이에 맞선 정년론 반대 주장, 수도권 바람을 위한 강남 물갈이론과 소임 여부에 따른 역할 정년제 등이 어지럽게 소용돌이치는 한나라당의 앞일을 예단하기는 어렵더라도 창당 6년째를 맞아 비로소 변화의 시동을 조금이나마 걸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9월초 열리는 소속 의원 연찬회를 시작으로 다수의 노(老)와 소수의 청(靑)의 힘겨루기가 본격적으로 무대에 오를 전망이다.

염영남 기자


염영남 기자 libert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