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편의 방화와 세 편의 외화가 펼치는 대목 특수잡기

[추석특집-영화] 웃기거나 또는 화끈하거나

네 편의 방화와 세 편의 외화가 펼치는 대목 특수잡기

올 추석은 한국 영화와 할리우드 영화로 풍성하다. 추석은 설과 함께 관객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대목’. 영화사들은 명절 대목 특수를 위해 사활을 걸고 뜨거운 홍보전에 나섰다.

네 편의 한국 영화와 세 편의 외국 영화 등 어느 때보다 선택의 폭이 넓지만 좁혀서 말하자면 ‘웃기거나(한국영화) 또는 화끈하거나(할리우드)’다. 올 추석 극장에서 흥행몰이를 하려는 영화들의 노림수다.


한국 영화

‘조폭마누라2’ ‘오! 브라더스’ ‘불어라 봄바람’은 모두 이색적인 짝패를 내세운 코미디다. ‘조폭마누라2’는 여성 조폭 두목과 그의 후계자로 등장할 여고생, ‘오! 브라더스’는 불륜 현장을 파헤치는 파파라치와 그를 돕는 조로증 이복동생, ‘불어라 봄바람’은 자린고비 3류 소설가와 다방 레지를 각각 내세웠다.


조폭마누라 2

‘조폭마누라’ 1편의 과도한 욕설과 폭력, 그리고 유치한 대사가 떫떠름한 맛으로 남아 있다면 손쉽게 ‘조폭마누라2’를 고르기 어려울지 모르겠다. 그러나 고층빌딩 옥상에서 벌어지는 화끈한 조직 간 결투 장면을 보는 순간 그런 걱정은 순식간에 사라질 터이다. 헬리콥터 위에서 로프를 타고 내려와 곤경에 빠진 부하를 구하는 차은진(신은경)의 와이어 액션은 아마 한국액션영화에서 여성이 소화해낸 무공 가운데 최고를 다툴 것이다.

2편은 1편의 엉성함과 난폭함을 순화시킨 개량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2편의 핵심인 차은진의 기억상실증을 중심으로 만든 이야기는 그런 대로 짜임새가 있다. 차은진이 중국집 배달원으로 일하면서 감전되기, 벼락맞기 등 온갖 방법으로 기억을 되찾으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화상을 입은 백상어가 발성기를 통해 생각지도 않은 웃음을 자아낼 때가 그렇다.

차은진과 중국집 주인 윤재철(박준규) 사이의 로맨스 아닌 로맨스가 꽤 길게 이어지는 게 흠이다. 차은진이 이끄는 가위파가 재개발 위기에 몰린 서민을 구하고 부당한 이권을 행사하려는 백상어파를 응징한다는 내용을 가소롭게 볼 수도 있지만, 이런 심판 과정이 후련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일부 조연의 촌스러운 연기와 별 이유 없이 차은진이 남자들을 두들겨 패는 대목들은 식상하게 다가올 수도 있다. 감독은 ‘가문의 영광’을 만든 정흥순. 매력/중성미를 한껏 뽐내는 정의의 여신 신은경.


오! 브라더스

‘오! 브라더스’는 올 추석 작품 가운데 드라마의 짜임새가 가장 탄탄하다. 불륜 현장을 찍어 호구로 삼는 오상우(이정재)는 한심한 건달. 빚을 갚을 길이 막막하자 조로증에 걸린 이복동생 봉구(이범수)를 찾아간다. 아버지가 장애아 학교에 동생을 위해 돈을 맡겨 놓은 것이다. 상우는 봉구가 나이는 열두 살이지만 자신보다 늙어 보인다는 데 착안, 수금을 위한 해결사로 동생을 기용한다.

꽉 짜인 플롯을 바탕으로 적절하게 맛을 입힌 농담과 앙증맞은 복선을 깔았다. 늙수그레한 얼굴과 천진난만하고 저돌적인 아이의 성격, 여기에 당뇨병 때문에 맞는 인슐린 주사를 남들은 ‘뽕’으로 오해하니 봉구만 데려가면 상우는 거칠 것이 없다. ‘태양은 없다’에서 악덕 사채업자(이범수)와 그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건달(이정재)로 나왔던 두 사람은 5년만에 다시 호흡을 맞춰 진한 형제애를 보여준다. 김용화 감독의 데뷔작. 매력/이정재, 이범수의 물오른 코믹 앙상블


불어라 봄바람

‘집중 좀 할게요’. ‘라이터를 켜라’에서 화장실 미화원 아주머니의 나가라는 독촉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변기를 지키던 김승우를 기억하는 이라면 ‘불어라 봄바람’에서 그가 한심한 3류 소설가로 변신한다는 소식이 반갑게 들릴 것이다. 거기에 ‘가문의 영광’에서 엄청난 흥행력을 자랑한 ‘CF의 ㈎蘿?김정은이 화려한 드레스를 벗어 던지고 알록달록한 차림으로 스쿠터를 타고 커피를 배달하는 모습을 예고편에서 봤다면 ‘불어라 봄바람’에 구미가 당길 것이다.

소설가 고선국(김승우)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2층 방을 세 놓는 바람에 다방 레지 화정(김정은)이 들어와 원치 않는 한집살이를 하게 된다. 두 사람이 티격태격 하면서 사랑을 하게 된다는 얘기는 신선하지 않다. 화정이 들려주는 사랑 얘기를 소설가가 몰래 소설로 옮긴다는 설정도 ‘브로드웨이를 쏴라’ 등에서 익히 본 것이다.

난방비 아끼느라 자기 집에 머무는 제자에게 내복 입기를 강요하는 선국의 캐릭터도 신선하지는 않다. 화정이 들려주는 얘기가 내용이 충실했으면 더 좋은 작품이 될 뻔했다. 감독은 ‘라이터를 켜라’를 만든 장항준. 매력/중심 줄거리보다 잔가지가 더 재미있네.


영매(靈媒)-산 자와 죽은 자의 화해

9월5일부터 하이퍼텍 나다에서 상영하는 ‘영매’는 눈물샘을 자극하는 다큐멘터리다. 가족들과 손 잡고 함께 볼만한 감동적인 작품. 특히 아들을 잃은 어머니와 갓 스물 넘은 나이에 비명횡사한 아들이 무당의 입을 빌어 서로 울며 대화를 나누는 대목이나, 동생 당골(세습 무당) 채정례가 죽은 언니 당골 채둔굴을 기리는 씻김굿을 하는 대목 등에서 목이 메이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남도의 씻김굿과 중부지방의 진오귀굿 현장 등을 2년간 밀착 취재했다. 강신무당과 세습무당인 당골의 삶과 그들이 굿판을 노는 과정을 카메라에 담았다. 신 내린 무당이 닭의 목을 비틀고 돼지의 피를 빨고, 죽은 어머니와 접신하는 장면 등이 인상적이다. 굿이 단순한 미신이 아니라, 마음 속에 맺힌 것을 풀고 가족을 이어주는 전통적인 의례임을 진지하고 정직하게 보여준다. 설경구가 내레이션을 맡았다. 매력/보고 나면 밉고 보기 싫은 가족까지 사랑하게 된다.


외국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블랙펄의 저주

‘캐리비안의 해적_블랙펄의 저주’(Pirates of the Caribbean: The Curse of the Black Pearl)은 단연 조니 뎁의 영화다. ‘가위손’의 환상적인 연기와 ‘길버트 그레이프’에서 보여준 따뜻하고 선한 눈빛만으로도 그는 충분히 매력적이지만,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악당 연기도 그에 못지 않다.

그는 할리우드 주류의 정서보다는 어딘가 다른 세상에서 온 듯한 비주류적인 정서를 대변하는 배우다. 연기 폭도 넓어서 에밀 쿠스트리차 감독의 ‘아리조나 드림’, 말론 브란도와 함께 출연한 ‘돈 쥬앙’, 팀 버튼 감독의 ‘슬리피 할로우’, 라세 할스트롬 감독의 ‘초콜렛’등 다양한 감독과 작업을 했다.

신경질적이면서도 때론 퇴폐적인 모습 등 천의 얼굴을 마음껏 과시했는데, ‘초콜렛’의 매력적인 집시역에 이어 ‘캐리비안의 해적’에서는 해적으로 변신했다. 약삭빠른 모습을 보여주지만 인간미가 있는 ‘미워할 수 없는 악당’으로서의 매력을 유감 없이 발휘한다.

난파된 해적선에서 살아남은 해적의 아들이 대장장이로 자라나, 총독의 딸을 사랑하게 되고, 해적에게 납치된 그녀를 위해 모험에 뛰어든다는 설정. 대장장이 윌 터너는 ‘반지의 제왕’이 배출한 꽃미남 올란도 블룸이 연기했고, 조니 뎁은 해적선을 빼앗긴 ‘허탈한’ 해적 잭 스패로우로 나온다.

저주를 받아 낮에는 선원이지만, 밤에는 해골로 변하는 해적 선원들의 모습이 볼거리. 놀이공원에 놀러온 듯한 화끈한 볼거리와 현대극을 방불케 하는 유머러스한 대사가 돋보이는 사극 어드벤처 영화. 감독 고어 버빈스키. 매력/부모와 아이가 함께 손잡고 즐겁게 볼 수 있다.


패스트&퓨리어스 2

화끈하기로 말하자면 올 추석 가운데 단연 으뜸이다. 게다가 자동차 광이라면 ‘패스트&퓨리어스 2’를 결코 놓쳐서는 안 된다. 대개의 액션영화들이 줄거리가 허술한데 반해서 꽤 탄탄한 이야기도 갖추고 있다. 마이애미의 10대들이 길거리를 막고 튜닝한 자동차를 내모는 거리 질주 장면은 압권이다. 힙합 패션을 한 섹시한 ‘거리의 아이’들이 보여주는 도발적이면서도 열정 넘치는 언더 그라운드 문화가 눈길을 빼앗는다.

마이애미의 범죄 조직 두목 베론(콜 하우저)을 잡기 위해 전직 경찰 오코너(폴 워커)와 자동차 경주광 피어스(타이리스 깁슨)가 짝을 이뤄 악당 소탕전에 나선다. 시속 200㎞를 넘나드는 시원한 경주 장면, 자동차가 내장한 온갖 첨단 장치, 경찰의 손도 범죄 조직의 손도 들어주지 않는 냉정한 태도 모두가 소위 ‘쿨’하다. 스파이크 리와 함께 흑인영화의 거장으로 꼽히는 존 싱글톤 감독이 메가폰을 잡아 말끔하고 후련한 자동차 액션 영화를 빚어냈다. 매력/도심을 내지르는 자동차들이 스크린 바깥으로 뛰쳐나올 듯하다.


주온2

웃음도 액션도 싫다면 이색 공포영화를 즐겨도 좋겠다. ‘주온’(呪怨의 일본어 발음)이란 죽은 사람의 원한이 생전에 살던 곳을 떠돌며 산 자를 괴롭힌다는 뜻. 전작이 귀신 든 폐가를 무대로 하우스 호러의 전형을 보여준다면 속편 ‘주온 2’(감독 시미즈 다카시)는 영화 속 영화라는 소재를 택해 더욱 다채로운 공포의 양상을 보여준다.

한 남자가 아내와 아이를 살해하고 죽은 채로 발견된 사건이 모든 비극의 시초라는 1편의 컨셉은 그대로다. 여기에 ‘흉가 공포 체험’이라는 특집극에 참가한 배우와 제작 스태프가 차례로 죽는다는 내용을 엮었다. 불길한 고양이가 도로에 뛰어드는 바람에 식물인간이 된 마사시, 마사시의 옆자리에 탔다가 아이를 유산하는 배우 교코, 방을 두드리는 귀기스러운 소리에 자지러지는 리포터 토모카 등의 사례가 차례로 소개된다.

부엌, 화장실, 침실 등 익숙한 일상 속에 매복한 공포를 들추어 내던 전편의 소재주의에서 속편은 한 발짝 더 나아간다. 공포의 그림자는 먹물이 스민 종이처럼 객석을 공포로 젖게 한다. 새로울 것도 없고 기발할 것도 없지만 벽을 부딪치는 죽은 자의 발소리, 혼자서 돌아가는 복사기, 불 꺼진 수술실에서의 출산 등 기괴한 이미지의 조합으로 공포를 끌고 나가는 힘이 돋보인다. 매력/꿈에 볼까 두려울 정도로 아이가 보여주는 공포의 세계가 으스스하다.

이종도기자


이종도기자 ecri@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