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체

[재즈 프레소] 드러머 크리스 바가의 한국 사랑





“고생스러울 때도 있었지만 전혀 고생이라고 못 느꼈어요.”한국 생활 5년 동안 드러머 크리스 바가(36)는 많은 것을 얻었다.

무섭게 발전하고 있는 한국 재즈의 힘, 젊은 재즈 뮤지션들, 다양한 음악적 경험, 게다가 한국인 아내까지. 한국어 솜씨도 이제 상당하다. 한국서의 바쁜 활동 덕택이다. 추석 연휴 직전인 9월 초 역시 그러했다.

5~6일 부산에서 ‘시와 음악의 만남’이란 이름으로 재즈 콘서트를 가졌고 7일은 대구의 클럽 ‘That’의 오픈 기념 콘서트에 초청 받아 입추의 여지도 없는 가운데 연주를 했다. 영락없는 재즈 뮤지션이다. 그럼에도 그는 굳이 재즈 라기보다는 자신의 음악을 추구해 나가는 과정으로 현재를 설명한다. 그의 편력을 알고 나면 수긍이 간다.

네브라스카주 링컨시에 있는 주립대에서 클래식 타악 전공, 시카고 데파울대 대학원에서의 재즈 전공이 그의 최종 정규 학력이다. 그러나 그것만이 다가 아니었다. 중학 이후, 취미로 해 온 재즈 밴드와 록 밴드에서 그는 진정한 자유를 느꼈다. “뮤지컬과 가스펠 활동도 했는데, 음악이 깊어지다 보니 자연히 재즈쪽으로 관심이 가더군요.”

재즈로 가게 된 데는 블루스에 심취해 있던 아버지의 영향이 크다. 특히 고교 이후, 그의 아버지는 원시 블루스(archaic blues) 음악을 테이프에 녹음해 주기도 했다. 그러나 클래식 피아니스트인 모친과의 갈등이 깊어져 이혼하고 말았다.

이후 함께 살게 된 새 아버지는 한술 더 뜨는 음악 애호가이자 음반사의 주인이었다. 덕분에 비밥 등 보다 깊은 재즈의 세계를 접하게 된 그에게는 미국 특유의 교육 시스템도 큰 힘이 됐다. 고등학교부터는 특별 재즈 프로그램을 둬 관심 있는 학생은 재즈를 더욱 깊이 탐색하도록 하는 과정이다. 그 같은 음악적 자유 덕분에 그는 시카고대 음대 대학원을 졸업하고 난 뒤 오케스트라와 재즈 클럽 활동을 병행해 갈 수 있었다.

“한국 여자 친구를 사귀고 있던 재즈 베이시스트 친구를 따라 한국에 오게 됐죠.” 막연히 외국 생활 경험을 쌓으려 한국땅을 처음 밟은 것이 1997년. 동네 PC방 아가씨, 연세대 어학당 등지에서 익힌 한국어도 제법 틀이 잡혀 갔다. 그와 동시에 서울의 재즈 카페에 출연하며 그럭저럭 이국땅에서의 생활이 1년째로 접어 들고 있던 그에게 들이닥친 것이 IMF 외채 환란이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믿을만한 한국 친구들이 있었다. 클럽에서 알게 된 또래의 한국 재즈 뮤지션, 정말로와 전성식이었다. “그들이 아니었으면 클럽 일자리 같은 것은 힘들었겠죠.”당시 친구의 소개로 싱가포르의 호텔 등지에서 일한 적도 있다.

다시 한국으로 온 것이 결혼 때문이었다. “동료 재즈맨이 세살 연하의 클래식 피아니스트 원경아를 소개시켜 주었죠.”2000년 4월 동네 교회에서 가졌던 결혼식에서는 한국의 재즈맨들은 물론 미국서 모친이 건너 와 축하해 주었다.

오랜 한국 생활덕에 바가는 사실 한국인이나 다름 없다. 한국말 실력도 그러니와, 음악도 상당히 한국화 됐다. ‘결혼은 미친 짓’, ‘중독’ 등 영화 OST, 정말로의 ‘벚꽃지다’와 김용우의 ‘질꽃냉이’ 등 한국의 토속미가 물씬 풍기는 재즈 음반, 캐나다의 대표적 재즈 기타리스트인 울프 바케니우스와 전성식 등과 협연한 음반 ‘Twilight’등 최근 한국의 재즈가 일궈낸 성과 곳곳에서 그의 타악 실력이 확인된다.

동덕여대 실용음악과와 강남의 대중 음악 학원 SMS에서 드럼 전공 레슨과 앙상블 등을 강의하는 “교수님”이기도 하다. 3살이 된 딸은 원애린, 에린 바가(Erin Varga)라는 이름으로 불리우고 있다.

한국 재즈의 허와 실을 제법 꿰뚫어 보고 있을 그에게 총평을 부탁해 본다. “늘 보던 사람하고만 음악을 하니 발전이 없어요. 그러나 친한 사람들과 계속 작업을 한다는 것은 좋은 점이죠.” 오십보백보 같은 말로도, 뭔가 의미심장한 말로도 들린다. “결국, 새로운 사람과 다양한 음악적 경험을 쌓아야 한다고 생각해요.”유창한 한국말로 한국 재즈의 딜레마를 잡아 낸다.

앞으로 사물놀이 등 한국의 전통 음악적 자산을 본격적으로 연구, 새로운 월드 뮤직을 창조하자는 꿈을 갖고 있다.



장병욱차장 aje@hk.co.kr

  • 페이스북
  • 트위터
  • 구글플러스
  • 카카오
배너
2019년 10월 제2799호
  • 이전 보기 배경
    • 2019년 10월 제2799호
    • 2019년 10월 제2798호
    • 2019년 10월 제2797호
    • 2019년 09월 제2796호
    • 2019년 09월 제2795호
    • 2019년 09월 제2794호
    • 2019년 09월 제2793호
    • 2019년 08월 제2792호
    • 2019년 08월 제2791호
    • 2019년 08월 제2790호
  • 이전 보기 배경
저번주 발행호 다음주 발행호
  • 지면보기
  • 구독안내
  • 광고문의
  • * 지면문의
    전화 : 02-6388-8088
    팩스 : 02-2261-3303
    주소 : 서울시 마포구 월드컵북로56길 19 드림타워 10층

    * 온라인 광고
    전화 : 02-6388-8019
    팩스 : 02-2261-3303
    메일 : adinfo@hankooki.com
    주소 : 서울시 마포구 월드컵북로56길 19 드림타워 10층

많이 본 기사

주간한국 유튜브 채널

서진의 여행 에세이

캐나다 몽트렘블랑 캐나다 몽트렘블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