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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탐구] 설경구

선량한 카리스마 "진짜 진국이네"
본능에 가까운 연기로 한국 최고 배우 된 '범생이'






"설경구 어때요?" 누가 물어오면 가슴이 먼저 답답해진다. 뭐라고 해야 하지? 어떻게 말하는 것이 정확한 걸까? 고민하고 또 고민하면서도 항상 내뱉는 말은 똑같다.

"가능하면 직접 만나보세요" 다소 무책임한 말일지 모르지만 설경구라는 사람은 다소 그렇다. 직접 얼굴 마주하며 대화하고 있어도 뭐라 규정할 수 없는 배우, 할애된 몇장의 지면에 그에 관한 이야기를 쓴다는 것이 위험한 일일 수도 있다는 걸 느끼게 하는 배우가 바로 설경구다.

솔직히 기자들 '입맛'에 맞는 사람은 아니다. 심혈을 기울여 질문 하나 던지고 나면 단 1분 대답에 끝나고 마는 단답형의 말투, 사진찍기는 '재미가 없어' 싫다는 약간의 카메라 기피 증세. 거기다 처음 본 사람과는 심드렁한 태도로 일관하는 낯가림까지.

짧은 시간에 많은 것을 끌어내야 하는 기자들에겐 진땀 나는 취재원이 아닐 수 없다. 그래도 어느 순간, 두터운 마음 속에 장벽이 허물어지고 나면 없던 시간도 쪼개고 쪼개 속내를 털어놓는 것이 그다.

"사람을 두루두루 많이 사귀고 정을 주는 편은 아니에요. 성질이 못돼 먹어서 그런지, 마음이 통한다고 생각하는 몇몇하고만 깊이 사귀고 속깊은 이야기도 하는 편이죠."(웃음)

그가 말하는 마음 통하는 몇몇사람 리스트에는 단연코 최민식과 송강호가 우선 순위를 차지하고 있다. 같은 작품에 출연한 적은 없지만 술자리에서 죽이 맞는 최고의 동료배우들이다. 그래서 그런지 설경구에게 존경하는 배우를 몰으면 예전엔 로브 드 니로나 알파치노를 말했는데 요즘엔 같이 일하는 동료배우들을 언급한다. 알지도 못하는 먼 나라 배우보다는 같이 고생하는 한국의 선·후배, 동료배우들이 훨씬 더 훌륭하고 존경스럽단다.


연극무대에서 잔뼈 굵다



알다시피 그는 영화 '박하사탕' 한 편으로 우리시대의 페르소나가 됐다. 어리숙한 범생이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최고의 배우가 된 그는 이제 관객의 머리와 심장을 제 것인 양 쥐락펴락하고 있다.

본인의 표현대로라면 '어리버리 하게' 학창시절을 보낸 그는 연국연출을 할 생각으로 한양대 연극영화과에 들어갔다. 제대로 된 연출을 하려면 무대에 서는 배우의 심리도 알아야 된다는 요량으로 무대에도 곧잘 섰는데 어느 날 한 선배로부터 쪽지를 전해 받았다. "무대에 있는 네 모습도 참 어울리더라."

그 뒤부터 연기하는 설경구. 배우 설경구의 삶은 시작됐다. 사나흘씩 집에 못 들어가는 것은 보통이고 술과 담배도 배웠다. 소극장에만 처박혀 있었지만 이른바 운동권 학생들과도 날 새는 줄 모르고 시국을 인생을 논했다. 확신없는 열정은 재앙과도 같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설경구. 연기를 하는 이유와 사람살이의 치열함에 눈뜰 시간이 필요했다.

그렇게 깨지고 상처받으려고 돈도 안되는 연극판을 헤집고 다녔다. 1993년 연극 '삼바 새매'가 공식 데뷔작으로, 게이로 출연했는데 그의 범상치 않은 연기를 눈치챈 연출가 김민기의 '지하철 1호선', '모스키토'등에 연이어 출연하면서 대학로에 설경구라는 이름을 확실히 알렸다.

영화에 관심이 생겨 충무로를 기웃거리고 있을 무렵. '처녀들의저녁식사'를 준비하고 있는 임상수 감독으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진희경과 하룻밤을 보내는 만화가 역인테 한석규처럼만 하라는 거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한석규가 나오는 영화를 모조리 찾아 보면서 그가 내뿜는 특유의 편안한 카리스마를 연구했다. 그 탓일까? 사람들은 그를 두고 '제2의 한석규'라고 치켜세웠다. 한번은 새벽까지 이어진 술자리에서 한석규에게 물었단다. '형! 사람들이 나보고 한석규래." "네가 왜 한석규나? 넌 설경구야. 그 뿐이야." 한석규의 말대로 이제 어느 누구도 그를 한석규와 비교하지 않는다.

대신 연기 좀 되는 남자 배우가 나타났나 싶으면 '제2의 설경구'라는 말들이 쏟아져 나온다. 불과 몇년 사이 그는 연기가 되는 성격파 배우로 인정받은 셈이다.

그의 성장에는 현 문화부 장관인 이창동 감독의 도움이 컸다. 무명이나 다름없던 시절을 보내던 새파란 신인에게 작가주의 영화의 주인공을. 그것도 한국 현대사를 온몸으로 관통한 남자의 인생을 맡긴 이창동 감독은 설경구라를 배우 한명에게 모든 것을 맡겼다고 털어놓는다.

"설경구는 많은 수원지를 안고 있는 사막같다" 그는 설경구의 사막이 아닌 수원지에 방점을 찍은 유능한 감독이다.


그는 진짜배우다



소설가 신경숙은 설경구를 두고 '강철같은 배우'라고 했지만 그는 정착 '플라스틱 같은 배우'이고 싶단다. 강철은 제철소에 가서야 녹일 수 있지만 플라스틱은 언제 어디서나 아무렇게 녹여서 원하는 모양으로 만들어 낼 수 있으니, 사람들 사이에 있을때 연기가 보이고 사는 것 같단다.

"삼겹살에 소주 마실때가 제일 좋습니다. 정말이요, 사람들은 저보고 변신의 귀재라고 하는데 변신은 개뿔, 어떤 역할에서도 그 인물 속에는 설경구가 있어요. 나와 그놈이 만나 하나가 되는 거죠. 전 분석할 줄 몰라요. 분석은 감독이 하는 거고 영화는 관객이 판단하는 거니까요."

사실 그의 얼굴 어디에도 영웅적인 힘이나 관능적인 매력 따위는 풍기지 않는다. 얼굴에 담겨 있는 표정도 일정치가 않다. 그렇지만 일단 카메라 앵글이 맞춰지면 그 얼굴에서 온갖 사연이, 상처가 슬금슬금 기어 나온다. 주어진 인물에 자아를 온전히 녹여낼 줄 아는 진귀한 능력으로 본능에 가까운 연기를 한다.

현재 촬영중인 강우석 감독의 '실미도'가 끝나면 내년 2월경엔 송해성 감독의 '역도산'이라는 작품에 출연할 계획이다.

1950년대 일본에서 유명했던 전설적인 프로 레슬러 역도산의 삶을 위해 살도 20kg정도 찌울 생각이다.

조연시절, 쌍꺼풀 없는 눈이 심심해 보여 눈에 풀을 붙이고 다녀보기도 했다는 설경구. 이제 그는 '아무것도 아닌 얼굴'이 '모든 얼굴'이 될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배우가 됐다. 흔히 말하는 진짜 배우. 그 끔찍하지만 해볼만한 목표점에 도달하고자 오늘도 그는 촬영현장을 누빈다.



김미영 자유기고가 minju@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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