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론 사분오열, 유엔 통한 파병 등 전략적 속도 조절 필요

이라크 전투병 파병-'뜨거운 감자'

국론 사분오열, 유엔 통한 파병 등 전략적 속도 조절 필요

이라크 파병이라는 ‘뜨거운 감자’가 다시 도마위에 올랐다. ‘감자’의 크기나 뜨거운 상태는 지난 4월의 1차 비 전투병 파병 때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다. 정부는 여론 뿐만 아니라 국제상황도 고려해야 하는 고차원의 문제라 해법찾기에 골몰하고 있다.

일단 국민여론을 수렴하고 이라크 현지 조사, 유엔결의안 내용 등 국내외 사정 등을 고려해 합리적인 결론을 내리겠다는 입장만 세운 상태다.

그러나 ‘명분’과 ‘실리’ 사이에서 최적의 해법을 이끌어 내겠다는 정부의 방침은 한미관계의 특수성, 그리고 한반도를 둘러싼 북핵 위기 등으로 인해 적지 않은 도전을 받고 있다. 미국이 요청한 추가 파병은 병력규모와 조건 등도 문제이지만 끊임없이 계속되는 주둔 미군에 대한 테러 등 위험한 이라크 현지 분위기는 물론, 국내의 반미 감정 등 여론이 발목을 잡고 있다.

미국이 요청한 병력 규모는 8,000-1만명 규모로 알려졌다. 베트남 참전이래 최대 병력 파견이다. 더욱 큰 문제는 병력 규모가 아니라 파병 부대의 성격이다. 공병 및 의무 부대로 이뤄진 1차 파병과는 달리 총을 들고 상대와 싸워야 하는 전투병력이라는 점이다.

언제든지 우리 군대가 목숨을 걸어야 하는 ‘위기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9월20일에도 주둔 미군이 후세인 잔당으로 보이는 무장세력으로부터 공격을 받아 3명이 사망하는 등 이라크 현지에서 사망한 미군 병사는 이라크 전쟁 중 희망자를 넘어선지 오래다.

그러나 무엇보다 노무현 정부를 곤혹스럽게 하는 것은 사분오열된 국론. 일반 국민은 물론 파병에 결정권을 쥔 정치권과 청와대조차 시각이 엇갈리고 있는 상황이다.

국내 진보단체와 소장파 의원, 청와대 386참모들은 ‘명분’없는 파병에 반대 입장을 나타낸 데 반해 보수단체와 중진의원, 청와대 국방ㆍ외교 관계자들은 ‘국익’을 위해 파병에 적극성을 띠고 있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추가 파병 문제에 대해 ‘전략적’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미국 입김서 벗어날 수 있을까?

청와대의 한 고위관리는 “국제여론이 미국측에 불리한 것은 사실이지만 한국은 한국대로의 사정이 있다”며 “하루빨리 파병 결정을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북핵문제에서 ‘키’는 여전히 미국이 쥐고 있다”며 “한국의 안보와 경제에 미국의 입김이 어느 정도인지는 다 아는 것 아니냐”며 반문했다.

가뜩이나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미국이 이라크 파병 문제와 관련해 ‘인상’을 쓸 경우 내년 4월 총선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의 자문위원인 미국 코넬대 서재정 정치학과 교수는 “정부측이 파병의 논거로 내세우는 ‘국익’과 ‘실리’가 과장돼 있다”고 반박했다. 서 교수는 “이라크 파병과 한국의 안보문제가 직접적인 관련성이 없다”며 “지난 4월 한국의 이라크 파병이 결정된 직후에도 미국은 베이징 3자 회담의 긍정적인 측면은 애써 무시하고 ‘핵무기 보유’ 등 북한측의 강경 발언만 공개함으로써 5-6월 위기의 중대한 요인을 제공했다”고 주장했다.

국익 찬반이 팽팽한 가운데 대체적으로 파병문제에 대해 ‘단계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가급적이면 유엔이라는 국제기구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되 같은 입장에 처한 국가들의 태도를 참조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 전문가인 K대 ○교수는 “한미관계의 특수성이 있지만 지난 1차 파병 때처럼 조급성을 보이는 우(愚)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부시 공화당 정부는 내년 대선을 앞두고 지지율 하락의 원인이 되고 있는 ‘이라크 함정’에서 가급적 빨리 빠져 나오려 하고 있다”며 “유엔과 프랑스 독일 등이 비협조적인 상황에서 미 병력의 손실을 한국과 터키 등에 떠넘기려 하고 있다굅?지적했다.

그는 “미국의 부시 대통령이 지난 3일 미국을 방문 중인 윤영관 외교통상부 장관을 예정에도 없이 만난 것은 미국의 ‘시급한’ 사정을 반영한 것”이라며 “한국은 진지하면서도 최대한의 실리를 추구하는 방향에서 파병문제에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북핵 6자회담도 파병 결정에 변수

또다른 전문가는 “현재 이라크 문제에 대해 미국과 유엔, 관련국 간에 막판조율이 진행되고 있는 만큼 이라크에 대한 다국적군 파병 및 전후 복구비 분담 등을 골자로 한 유엔결의안의 내용을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유엔 결의안은 한국의 선택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에게는 ‘진지하게’고려할 시간이 그렇게 많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시기적으로는 오는 10월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 전까지 결론을 내도록 미국측이 압박을 가하고 있고, 10월말께로 추진되고 있는 2차 북핵 6자회담도 ‘파병’에 변수가 될 수 있다.

미국의 대표적인 매파인 럼스펠드 국방장관의 10월 방한도 강력한 압력이 될 전망이다. ㅇ교수는 “럼스펠드가 일본에게는 내년 이후로 늦춘 자위대의 조기 이라크 파병을 요청하고 한국 정부에겐 추가 파병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그는 “럼스펠드가 6자회담이 열리는 예민한 시기에 한국을 방문하고 그 동안 대북 강경태도나 주한미군 철수 등 한국정부를 자극했던 전례를 볼 때 그의 방한은 노 정부에 그리 반가운 일이 아닐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와 관련, 청와대의 한 고위관계자는 “‘파병’쪽에 더 무게추가 옮겨진 것이 사실”이라며 “남은 과제는 국민을 충분히 설득하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노 대통령은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파병하더라도 명분과 이익이 있는 시기를 택해야 하는 것이고, 파병하지 않더라도 (미국과) 관계가 불편해지지 않는 절차와 방법을 거쳐야 할 것”이라고 말해 그 같은 가능성을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명분’과 ‘실리’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는 묘안이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는데 노무현 대통령의 고민이 있다.

박종진 기자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