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의 눈] 파병외교엔 與野 구분이 없다

평원군(平原君)은 중국 전국시대 조(趙)나라 재상이다. 그는 진(秦)나라의 공격으로 수도 한단이 포위되자 이웃 초(礎)나라의 도움을 얻기 위해 사신으로 갔다. 일행 중에 모수(毛遂)라는 식객이 있었는데, 그가 초나라 왕과의 담판에서 이기자 이렇게 말했다. “모 선생의 세치 혀가 100만 군사보다 더 강하오.” 사기(史記)의 평원군 열전(列傳)에 나오는 이야기다.

거란의 소손녕은 고려가 신라 땅에서 일어난 것을 트집잡아 조공을 바치라며 공격해 왔다. 고려 성종의 중군사(中軍使) 서희(徐熙)가 소손녕을 만나 “우리나라는 옛 고구려를 계승한 나라라 국호도 고려라고 했다. 만약 땅의 경계를 논한다면 너희 땅 동경(東京)도 고려 땅”이라고 반박해 조공은커녕 강동 6주 300리까지 넘겨받았다. 우리 외교사의 백미로 널리 알려진 일화다.

말은 개인간에 ‘천냥 빚을 갚을’ 수도 있고, 대외적으로는 100만 대군보다 더 강하기도 한다. 불교 법구경(法句經)은 ‘지자(智者)는 잠깐이라도 어진 이를 가까이 섬기면 곧 참다운 법을 아나니 혀가 국맛을 아는 것과 같다’고 했다. 혀는 바로 ‘지자’(智者)를 상징하고 부처의 긴 혀는 중생들에게 가르침을 널리 펴는 역할을 한다고 해서 설법(說法)과도 통한다. 중앙아시아 일부 지역에선 혀에는 초자연적인 힘이 담겨 있다는 속설도 있다. 그만큼 말은 중요하다.

노무현 대통령은이 취임 후 한동안 이런 저런 말로 설화(舌禍)를 겪더니 미국의 이라크 파병 요청과 관련해서는 아주 신중한 태도를 지키고 있다. 지난 봄 600여명의 의료 및 공병부대를 파병하는 과정에서 성급하게 나서다가 혼이 난 게 약이 됐을 것이다.

이번에는 총을 들고 상대와 맞닥뜨려야 하는 전투병 파견문제여서 결정하기가 쉽지 않다. 자칫하면 외교적으로, 또 정치적으로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 오해나 뒷말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최종 결정을 내리기 전까지 노 대통령은 말을 아끼는 게 옳다고 본다.

미국의 이라크 파병요구는 우리의 외교안보정책을 되돌아보게 한다. 무조건 앞을 보고 달리다 느닷없이 외환부족이라는 암초에 부딪혀 나라 전체가 넘어졌던 IMF위기를 연상케 한다. 그래서 파병 여부를 결정하기 전에 철저한 사전 조사와 전략적 사고가 국익에 꼭 필요하다.

하지만 시중에는 성급하게 감정적으로 대응하려는 듯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베트남전 이후 첫 대규모 전투병 파병에 본능적으로 거부감을 갖는 당연하다. 70년대 중동건설이란 제한적인 접촉을 제외하면 역사 문화적으로 아무 관계도 없는 중동의 싸움터에 우리 젊은이를 보낸다는 것에 대한 우리의 정서라고 본다. 또 미국의 대 이라크 전쟁에 대한 진보계층의 비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고 전후 주둔미군을 상대로 한 대규모 자살테러 사건도 섣불리 파병을 못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군을 모술 등 이라크 북부 지역의 경비 및 게릴라 소탕전에 투입할 것이라 한다. 파병 대상 부대도 폭동진압과 게릴라전 훈련을 받은 특전사를 지목했다고 한다. 파병이 이뤄지면 우리 젊은이들이 이라크 땅에서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장면을 TV로 지켜볼 가능성이 높다. 과연 누구를, 무엇을 위해 우리가 피를 흘려야 하나 하는 의문이 들만도 하다.

하지만 대외관계에서는 국민 정서나 명분 못지않게 의리와 실리도 중요하다. ‘우리 젊은이가 누구를 위해 피를 흘리느냐’고 자문할 때 주한미군은 “그럼 우리는?”하고 눈을 흘길지도 모른다. 미국으로서는 제대로 훈련된 정예병력을 지닌 러시아 프랑스 중국 등이 이라크 전쟁의 정당성을 이유로 파병을 사실상 거부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군의 파병을 기대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하겠다. 여차하면 막후에서 ‘중동건설 특수’를 미끼로 던질 수도 있다.

한국군의 파병 여부에 대해 ‘된다’ ‘안된다’ 논쟁을 벌이는 것은 주권국가로서 당연히 거쳐야 할 과정이다. 국론분열 어쩌고 하면서 토론 자체를 막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 술자리든 공개 토론회든 언론이든 자신의 주장을 펴고 반대파를 설득하는 노력을 통해서만 국론통일이 가능하다.

그런데 가끔 귀에 거슬리는 말들이 들려오기도 한다. 파병반대론을 펴다가 “그렇게 파병해야 한다면 당신이 직접 총을 들고 가라”는 식의 막말은 온전한 토론 자세가 아니다.

토론보다 더 시급한 게 있다. 바로 전방위 외교 활동이다. 부시 미 대통령이 노 대통령은 친구라고 부르고, 윤영관 외무장관을 만나고,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를 미국 조야에서 극진히 대접하는 저의를 알아야 한다. 바로 미국식 파병외교다. 우리도 그?상응하는 외교가 필요한 때다. 서희는 거란에 조공을 ‘해야 한다’ ‘안 된다’ 논란이 치열할 때 소손녕을 만났고, 모수도 초나라 왕과 마지막 담판에서 목적을 이뤘다.

이진희 부장


이진희 부장 jinh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