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좌파의 시선으로 그린 '피카소 죽이기'


■ 피카소의 성공과 실패
존 버거 지음/박홍규 옮김/아트북스 펴냄

10대에 이미 스페인의 미술학교에서 더 배울 것이 없었던 신동, 다빈치의 스승이 제자의 솜씨를 보고 그림을 포기해 버렸듯이 미술교사였던 그의 아버지가 아들의 재능에 놀라 자신의 화구를 물려준 천재, 자신의 작품으로 천문학적인 돈을 벌어들인 억만장자. 교황이 누구인지, 심지어 자기 나라 총리가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도 이 사람의 이름은 안다. 파블로 피카소.

이 책은 바로 피카소에 대한 평전이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대표적인 좌파 비평가가 쓴 ‘비판적인’피카소 평전이다. 이 때문인지 이 책은 출간되자마자 엄청난 찬사와 그에 못지 않은 비판을 함께 받았다. 이번에 우리말로 번역된 책은 1965년에 나온 초판이 아니라 이를 증보한 1987년판이다.

피카소의 예술과 삶을 찌르는 지은이 존 버거의 칼날은 거침이 없다. 반면에 버거는 1987년판 머리말에서 “내 책에 대한 비판적인 태도에 나는 조금 놀랐다”고 말했다. 버거 자신은 정작 ‘화가’ 피카소와 ‘인간’피카소에 공감을 표한 책을 썼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까닭은 짐작할 만하다.

초판 발간 당시 피카소는 살아있었고, 그를 성인으로 떠받드는 책과 글이 쉼없이 쏟아져 나왔다. 무비판적으로 그를 찬양하거나, 호사가들의 입에 오르내릴 법한 일화를 담은 책들만 가득한 가운데 버거의 칼날은 실제보다 더 날카롭게 받아졌을 수 있다.

버거는 이렇게 말한다. “상상력이 풍부한 예술가는 당대 시대정신을 선구적으로 보여준다. 파시즘에 항거했던 스페인시민전쟁은 피카소의 생애에서 ‘위대한 예외’였다. 하지만 부르주아 세계에 투항했을 때 그에게 돌아온 것은 빵이 아니라 돌이었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의 영혼을 의탁할 민중이었으나 정작 그를 둘러싼 것은 아첨꾼들 뿐이었다. 예술가가 자신의 개인적인 천재성 안으로 도피했을 때 그는 무기력과 정체에 직면한다.” 비판의 주안점이 피카소의 반 사회성에 있었던 것이다.

버거가 피카소를 마냥 깎아내리기만 한 것은 아니다. 입체주의의 선구자였고, 정치적으로나 인간적으로 냉소적이지도 않았고, 우리 시대의 중요한 투쟁에 적극적으로 기여한 휴머니스트였다는 게 버거의 평가다.

그렇다면 무엇이 피카소의 성공과 실패인가. “그는 혁명가일 때 성공했으나 천재로 남았을 때는 실패했다.” 이것이 버거가 바라보는 피카소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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