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녕 '큰불뫼' 밝히는 억새꽃의 화려한 춤사위

[여행] 창녕 화왕산

창녕 '큰불뫼' 밝히는 억새꽃의 화려한 춤사위

억새는 불꽃이다. 한줌 가을바람에도 흔들리는 가녀린 ‘하얀 불꽃’이다. 창녕의 진산(鎭山)인 화왕산(757m) 꼭대기는 가을이 되면 ‘하얀 불꽃’이 가득 피어난다. 여름 내내 푸른빛으로 흔들리던 억새가 한꺼번에 새하얀 꽃을 피워내는 정경은 연분홍빛 가득한 봄날의 ‘진달래 꽃불’과 쌍벽을 이룬다.


화왕산성 십리평원에 활짝 핀 억새꽃 일품

‘메기가 하품만 해도 물이 넘치는 곳’인 우포를 서쪽에 두고있는 창녕은 옛 부터 홍수 피해를 많이 입었고, 이번에 태풍 ‘매미’가 불어닥쳤을 때도 큰 피해를 당했다. 그래서 주민들은 수기(水氣)를 누르기 위해 고을 진산의 이름을 화왕산, 곧 ‘큰불뫼’라 지었다.

전해오는 바에 따르면 화왕산에 큰불이 나야 다음해 풍년이 들고 모든 군민이 평안하며 재앙이 물러갔다고 한다. 이렇듯 창녕 사람들은 ‘큰불’에 대한 믿음이 유달리 강한 전통이 있었는데, 사실 화왕산에 있는 세 개의 연못은 화산 활동으로 생긴 분화구다. 또 임진왜란 때 의병장 곽재우도 왜군에 맞서 배화진(背火陣)을 치고 농성을 했으니 화왕산과 불과는 뗄 수 없는 관계라 할 수 있다.

창녕여중 뒤쪽의 도성암 등산로. 따가운 가을 햇살을 받으며 가는 ‘환장고개’ 오름길은 정상이 가까워질 무렵이면 코가 땅에 닿을 정도로 가팔라진다. 땀을 한 줄금 흘린 뒤 마지막 계단을 지나 고갯마루에서 서면 세월의 더께가 잔뜩 묻어있는 성벽을 넘어온 한 줄기 가을 바람이 온몸을 상쾌하게 감싼다. 눈에 걸리는 나무 한 그루 없는 5만6,000여 평의 산상 분지는 새하얀 억새꽃으로 가득하다. 바람이 불면 억새꽃이 몸을 눕힌다.

환장고개 마루인 서문(西門)에서 분지 안쪽을 곧장 가로지르면 창녕 조씨 득성비와 연못을 지나 동문(東門)으로 나서게 되지만, 가을 억새꽃 감상은 서문에서 정상을 거쳐 동문 지나 배바위 넘은 뒤 다시 서문으로 돌아오는 성곽일주 코스가 최고다. 사람 키를 넘는 억새 가득한 성곽을 한 바퀴 도는 데 걸리는 1시간쯤은 가을의 추억을 담기에 부족함이 없다.

성안엔 군사들에게 생명수를 제공하던 아홉 개의 샘을 비롯해 ‘창녕 조(曺)’씨의 시조가 태어났다는 용지 등 세 개의 연못이 남아 있다. 화왕산 억새산행에 걸리는 시간은 창녕여중~도성암~환장고개~성곽일주~도성암~창녕여중 코스가 총 3시간30분쯤 걸린다.

매년 10월엔 화왕산 정상에서 산신제, 의병추모제, 통일기원횃불행진 등의 행사가 펼쳐지는 축제가 열리는데, 올해는 태풍에 피해 입은 농가가 많아 취소되었다. 창녕군 관계자는 “행사는 비록 취소되었어도 10월 초부터 11월 초까지는 억새 구경을 하는 데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밝힌다.

화왕산 억새에겐 가을 낭만만 있는 게 아니다. 우리 선조들은 억새를 생활 곳곳에 요긴하게 이용했다. 특히 억새가 많이 나는 곳에선 지붕을 덮을 때 짚대신 억새를 썼다. 억새를 베어 엮은 이엉으로 지붕을 덮으면 물빠짐이 좋기 때문에 수명도 볏짚보다 훨씬 긴 20~30년쯤 되었다고 한다.

창녕읍 술정리 동삼층석탑(국보 제34호) 부근에 있는 하병수가옥은 지붕을 억새로 이은 정면4칸의 전통 가옥. 조선시대의 가옥구조와 민가의 건축술을 알 수 있는 남향의 초가인 이 가옥은 하씨(河氏) 집안이 몇 대째 살아온 곳이다. 조선 영조 때인 1706년에 지어진 집이라 하니 300년 가까운 연륜이 쌓인 셈이다.

이외에도 561년에 세운 것으로 남한에서 최고로 오래된 빗돌인 진흥왕척경비(국보 제33호) 등의 볼거리가 있다. 원래 화왕산 기슭에 있던 것을 읍내 만옥정공원으로 옮겼다.


우포늪은 생태계의 보고

이런 유적들을 둘러본 뒤 창녕읍에서 20번 국도를 따라 20분쯤 달리면 우포늪이다. 대합면 이방면 유어면 일대에 걸쳐 우포늪, 목포늪, 사지포, 쪽지벌 이렇게 4개로 형성되어 있는 이곳은 국제적으로 중요한 물새서식지로서 1996년 자연생태 조사결과 총 342종의 동식물이 자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희귀식물로 잎의 지름이 1m가 넘는 가시연꽃을 비롯하여 노랑어리연꽃, 마름, 생이가래 같은 습지식물과 어류, 수서곤충 등 다양한 생물이 서식하고 있다.

또 늪의 많은 부분을 뒤덮은 물억새는 물오리들이 숨어 지내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고, 큰고니,중대백로,왜가리 등 많은 철새들이 해마다 날아오는 도래지로도 각광을 받고 있다. 1997년 생태계특별보호구역으로 지정되었고 1998년에는 국제습지조약 보존습지로 지정되어 국제적으로도 주목을 받는 늪이 되었다.

수심 2~3m 안팎의 늪에는 가물치, 미꾸라지, 붕어들로 꽉 차 있다. 주민들은 “우포늪은 물반 고기반”이라 한다. 거룻배를 타고 나가 늪에서 물고기를 잡아오는 광경은 우포늪이 아니고선 보기 어려운 광경이다. 노을 속을 날다가 갈대 속으로 숨어 드는 철새를 구경하고, 잔물결 찰랑이는 늪가에서 말조개나 우렁이의 흔적을 좇는 것도 우포늪에서 느낄 수 있는 재미다.


▲ 숙식 창녕 읍내엔 창녕장(055-533-0707) 등 숙박시설이 많다. 화왕산 입구도 민박집과 식당이 여럿 있다. 읍내서 승용차로 30분쯤 달리면 우리나라 온천수 중 최고의 온도(78℃)를 자랑하는 부곡온천이다. 원탕고운호텔(055-536-5655), 부곡하와이 관광호텔(055-536-6331).


▲ 고통 중부내륙고속도로 창녕 나들목으로 나와 창녕군청 방향으로 1km쯤 가면 사거리가 나온다. 이곳서 직진해 1km쯤 더 가면 화왕산 매표소. 창녕군청 문화공보과 전화 055-530-2241.

민병준 여행작가


민병준 여행작가 sanmin@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