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주류 군불때기, 다양한 시나리오 속 정계개편 신호탄

신당론 '솔솔'… 민주당 헤쳐모이나
신주류 군불때기, 다양한 시나리오 속 정계개편 신호탄

최근 정치권에 민주당 신당론이 솔솔 피어오르고 있다. 밖으로는 이라크전 파병 찬반 문제로 떠들썩하고 안으로는 4ㆍ24 재ㆍ보궐선거 문제로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에도 민주당 신주류를 중심으로 신당론이 슬며시 고개를 들고 있다.

민주당 김원기 고문과 이상수 사무총장 등 신주류 측에서 잇따라 신당 창당에 대한 필요성을 주장하고 나서자 동교동계를 비롯한 구주류 측은 바짝 긴장하는 눈치며, 한나라당도 정계개편의 의도라고 반발하는 등 묘한 기류가 감돌고 있다.

민주당 신주류가 고려하고 있는 신당론은 크게 세가지. 노무현 대통령을 위시한 당내 세력군이 탈당한 뒤 국민개혁정당 등 진보성향의 다른 정파와 함께 신당을 만들어 민주당이나 한나라당 등 일부 세력을 포함시키는 ‘새집 마련법’이 현재로서는 가장 가능성이 높다.

또 국민회의 창당 때처럼 민주당 구주류를 제외한 당내 세력들이 나가서 새 간판으로 다시 모이는 이른바 ‘뺄셈식 창당’도 가능하며, 이 경우 다른 정파들과는 정책별 사안별 연대를 이룰 수 있다. 이도 아니면 현재의 민주당을 재편하면서 당의 간판이나 모양새를 바꾸는 형태의 ‘리모델링 창당’도 하나의 방법으로 대두되고 있다.

신주류와 뜻이 다른 세력들은 공천을 통해 물갈이하는 방안이 포함돼 있으며 이들의 반발식 탈당도 계산에 넣고 있다.

민주당 신주류 측에서 흘러나오는 이런 신당론은 표면적으로 노 대통령의 국정수행을 돕기 위해 보다 강력한 지지층의 결집이 필요하고, 3김 정치와 지역 정치를 탈피하기 위한 토양 마련이 시급하기 때문이란 이유를 대고 있다. 하지만 실제 속마음은 다른데 있는 듯 하다. 지난 대선 때 반대편에 섰던 구주류와의 단절이 보다 중요한 현안인 데다 현 구도로 가면 내년 총선에서의 고전이 예상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민주당 구주류, “올것이 왔다?”

신당론은 민주당 지도부에서부터 점화됐다. 김원기 고문은 3월26일 “당 개혁이 불가능하면 신당이 논의될 수 있다”고 은근히 구주류를 압박하고 나섰고, 천정배 의원은 “당 개혁이 실패할 경우 신당 수순으로 갈 것”이라며 아예 지구당위원장직을 사퇴했다.

또 이상수 사무총장은 한발 더 나아가 “이원집정부제나 내각제를 매개로 신당추진이 될 수 있다”고 개헌론까지 언급하며 신당론에 기름을 부었으며 김경재 의원도 “현상유지로 가면 신당 불가피론이 나온다”고 가세했다. 시기와 방법 및 절차 등에서는 약간씩 차이가 있지만 대세는 구주류 물갈이를 통한 ‘신장개업’에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신당론 불씨를 키워가던 차에 결정적인 ‘한 방’은 노 대통령의 핵심 측근에서 터져 나왔다. 이강철 전 특보가 기자와 만나 “동교동계가 빨리 나가줬으면 좋겠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 것. (이 전 특보는 파문이 확산되자 “동교동계를 지칭한 적이 없다”고 해명하고 나섰지만 동교동계의 불만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상황이 이쯤 되자 다급해진 구주류 측은 맞불 작전으로 전선(戰線)을 확대하고 있다. 이훈평 의원은 “지금 동교동계가 어디 있다고 누구보고 나가라 마라 하느냐”며 “나가려면 세든 사람이 나가야 한다”고 반박했다.

전갑길 의원은 “새 판을 짜기 위해서라면 자기들이 떠나면 될 것인데 왜 나가라고 하는지 모르겠다”고 밝혔고 다른 의원도 “당 개혁안을 밀어 붙이다 안되니까 다수(多數)를 반 개혁세력으로 매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동교동계의 핵심 인사들도 뼈 있는 한마디씩을 던졌다. 김옥두 의원은 “동교동계는 노 대통령이 잘 되기만을 기원하며 매사에 조심하고 있으니 다른 사람들도 언행을 삼가해 줬으면 한다”고 신주류를 겨냥했고 한광옥 전 대표도 “특정 계파를 매도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반응을 보였다. 신당을 하려 해도 배척이 아닌 외연 확대식이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는 것.

이에 구주류인 정균환 총무는 “진보와 보수로 정치권이 개편되면 극한 대립으로 정치가 어려워질 뿐 국익에 도움이 안 된다”며 “정치개혁은 권력구조를 개편하는 방향으로 가야 하는데 인적 청산으로 방향이 잘못 잡혔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현재 민주당 안팎에서는 4ㆍ24 재ㆍ보선에서 자당 후보 대신 다른 당 후보를 내보내 당선되면 그 바람을 이용해 개혁신당을 밀어 붙일 것이라는 얘기와 함께, 선탓【?질 경우 내년 총선 필승론에 입각한 신당설이 강력하게 대두될 것이란 소문이 돌고 있다.

어느 경우에서든지 신당론은 5월의 최대 화두로 떠오를 전망이다. 선(先) 당 개혁, 후 리모델링식 신당 창당이냐 구주류와의 결별을 전제로 한 창업형 신당 창당이냐의 방법론만 남은 것 같다.


좌불안석 한나라당도 경계경보 태세

한나라당도 길 건너편 앞집 얘기로만 구경할 형편이 아니다. 노-소장파가 당 개혁을 놓고 치열하게 대립하고 있는데다 정치구도가 조금만 바뀌면 언제든지 ‘저쪽’으로 건너갈 의원들도 상당수 있다.

이미 마음속으로는 이삿짐을 싸 놓은 의원들의 경우 섣불리 옮기면 ‘철새 정치인’이란 말을 들을까 봐 자제하고 있을 뿐이지 큰 틀의 변화가 있으면 미련없이 떠날 태세다. 이를 경계하는 당 지도부도 민주당 신주류 측의 신당론을 잠재우기 위한 불끄기에 나서고 있다.

박종희 대변인은 논평에서 “안보와 경제가 이토록 불안한 비상시국에 엉뚱한 언동으로 국론분열을 꾀하고 있어 걱정이다”며 “신당론이든 개헌론이든 오로지 내년 총선에서 승리하기 위한 인위적 정계개편의 신호탄이요, 정략적 속셈이 깔린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다른 의원도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의원 빼가기를 통한 세 불리기를 획책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나라당의 걱정은 민주당 신주류의 신당론이 현 정국을 진보 대 보수, 개혁 대 반개혁 구도로 몰아가는 데 있다. 친노(親盧) 세력은 진보와 개혁군이고 나머지는 보수적인 반 개혁세력으로 밀어붙여 이를 바탕으로 내년 총선을 지역대결이 아닌 이념과 사상의 대결장으로 만들어 한나라당과 자민련 및 민주당 구주류 모두를 구 정치 산물로 몰아 붙일 의도라고 반발하는 것이다.


신당 성공의 전제 조건

신당론을 둘러싼 각 정파의 속셈은 이처럼 제각각이고, 나름의 찬반 명분과 논리도 있다. 때문에 실제 신당이 탄생하기까지에는 적잖은 고비가 있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작심이라도 한듯 신당론을 꺼내든 민주당 신주류측이 이를 포기할 가능성은 거의 없고, 따라서 어떤 형태로든 신당이 만들어질 것이라는 게 정치권의 대체적인 전망이다.

다만 민주당 신주류측이 신당을 통해 내년 총선, 그리고 그 이후까지의 정치적인 성공까지 머리속에 그리고 있다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낡은 정치 청산, 새 정치 실천’이라는 노 대통령의 정치 신념을 현재의 신당론과 어떻게 맞춰 나갈 것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우리 정치사를 되돌아보면 정권이 바뀔 때마다 여당의 얼굴이 바뀌어왔다. 5공은 민정당, 노태우 정권은 민자당, YS는 신한국당, DJ는 민주당으로 기존의 정치틀을 바꾸려 했다. 만에 하나 이번에도 신주류측의 신당 구상이 대선 때 누구 편에 줄을 섰느냐는 식의 논공행상으로 국민들에게 비춰진다면 이는 결국 과거의 실패를 되풀이할 공산이 크다.

염영남기자


입력시간 : 2003-10-01 14:08


염영남기자 libert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