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식의 문화읽기] 디지털 시대의 디카문화(上)


한 달이 조금 넘은 것 같다. 구한말에 멕시코로 이민을 떠났던 한국인들의 발자취를 작품 속에 담아내고 싶다며 훌쩍 과테말라로 떠났던 소설가 K가, 16세기에 지은 저택을 개조한 호텔에 머물고 있다며 안부를 알려왔다.

그러면서 영화에서나 보았던 고풍스런 서재를 배경으로 백년은 된 듯한 마호가니 책상에 앉아서 글을 쓰고 있는 사진을 커뮤니티 사이트에 올려놓았다. 반갑기도 했지만 어찌나 부럽던지. 곧이어 폭발적인 리플이 달렸다.

“와우~ 정말로 폼 난다. 건필!”(03.06 07:30) “멋져요. 다들 사진 보고 난리 났습니다. ”(03.06 09:12) “글이 저절로 써질 듯한 분위기! 아이고 부러워라. 근데 이 사진은 누가 찍은 건가요?”(03.06 15:38) “울 마누라 디지탈루다 찍은 거예염… 하핫”(03.07 05:54) 지구 반대편에서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사진 한 장이 가져다 준 작은 즐거움이었다.

최근 디지털카메라가 20~30대를 중심으로 급속히 파급되면서 길거리나 음식점에서 디지털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사람들을 자주 보게 된다. 작년까지만 하더라도 가끔 볼 수 있는 풍경이었는데, 올해에는 거의 매일 보게 되는 것 같다.

사람들은 이들을 가리켜 ‘디카족’이라고 부른다. ‘디카족’이란 디지털 카메라를 휴대하고 다니며 일상생활 속에서 찍은 사진을 인터넷 공간에서 선보이는 사람들을 일컫는 신조어이다.

친구들의 엽기적인 표정과 몸짓을 바라보다가 찰칵, 불판 위에서 그날 따라 예쁘게 구워지는 삼겹살에 필(feel)이 꽂혀 찰칵, 눈에 띄는 외모를 가진 이성을 만나게 되면 동의를 구하고 찰칵, 아이쇼핑을 하다가 마음에 드는 물건이 있으면 일단 찰칵, 자동차 접촉 사고가 나면 과학적인 수사를 위해서 다시 찰칵… 새로 구입한 디지털 카메라의 매력에 빠져들게 되면 한 달에 천 장 찍는 건 문제도 아니라는 말들이 여기저기에서 들려온다.

디지털 카메라는 편리하고 다양한 기능을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도 별도의 필름 값이 들지 않기 때문에 아무런 부담감 없이 셔터를 누를 수 있다. 촬영이 끝나면 그 자리에서 바로 이미지를 확인할 수 있고, 마음에 안 드는 사진은 삭제하면 된다.

또한 이미지 파일을 컴퓨터로 옮겨 포토샵이나 이미지뷰어와 같은 프로그램을 사용하면, 수정이나 합성이 가능하기 때문에 개인의 취향에 따라 재미있고 다양한 연출도 가능하다. 자신의 홈페이지가 있다면 갤러리를 만들어 사진을 전시하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으며, 혼자 보기 아까운 사진을 커뮤니티에 올려놓고 여러 사람의 품평을 기다리는 경험도 꽤나 재미있는 일이다.

실제 사진으로 뽑고 싶으면 인화서비스를 제공하는 온라인 사진관에 이미지를 전송하면 되고, 원하는 이미지를 케익, 쿠션, 명함, 티셔츠, 머그컵 등에다가 인화하는 일도 가능하다.

디지털 카메라가 새로운 문화적 아이콘으로 부상한 데에는, 물론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기술이 상향 평준화되었다는 점과 엔터테인먼트적 가능성을 발견했다는 사실을 빼놓을 수 없다.

1981년 소니가 최초의 디지털 카메라 마비카(MAVICA)를 개발한 이래로 디지털 카메라는 전문가들에 의해서만 제한적으로 사용되는 고가의 제품이었다. 1995년에 이르러서야 카시오의 QV-10, 코닥의 dc40, 애플의 퀵테이크100 등과 같은 대중용 디지털 카메라가 시판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디지털 카메라가 우리의 일상 속에 자리를 잡기까지는 좀더 많은 시간과 디지털 인프라가 필요했다.

21세기에 접어들면서 디지털 카메라는 작고 가벼워졌을 뿐만 아니라 감각적인 디자인까지 갖추게 되었고 간단한 조작으로 첨단기능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시대의 유행을 반영하는 패션 소품(accessory)이자 실용적인 가치를 지닌 일상용품으로 자리를 잡게 된 것이다.

또한 컴퓨터의 이미지 관련 프로그램들은 디지털 카메라에 내재되어 있던 엔터테인먼트적인 속성들을 극대화시키고 있으며, 인터넷과 링크된 디지털 카메라는 취향의 공동체와 즐거움의 문화를 배양하는 중요한 문화적 매개항으로 기능하고 있다. 디지털 카메라를 두고, 디지털 시대의 어른들을 위한 장난감이라고 해도 크게 틀리지는 않을 것 같다.

디지털 카메라는 디지털 기술과 일상생활 사이에 마련된 문화적인 접점이다. 달리 말하면, 디지털 기술의 일상화를 가장 두드러지게 보여주는 문화적 표지인 것이다. 디지털 테크놀러지에 대한 신화적인 열광이 가라앉은 후, 평범한 일상 속에서 디지털 기술을 만나고 즐기는 문화가 마련되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 디지털 카메라가 있다. 디지털 카메라의 문화적인 함의에 대해서는 牡슴?이어질 글에서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자.

입력시간 : 2003-10-01 14:38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