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불가 의견 불구 고영구 국정원장 임명 강행"대통령 오만" "다수당 횡포" 감정싸움, 정국 급랭

盧·한나라당 정면충돌
국회 불가 의견 불구 고영구 국정원장 임명 강행
"대통령 오만" "다수당 횡포" 감정싸움, 정국 급랭


고영구 신임 국가정보원장의 임명을 둘러싸고 정국이 떠들썩 하다. 국회 정보위가 소속 여야 의원의 뜻을 모아 부적절 의견을 제시한 고영구 변호사에 대해 노무현 대통령이 임명을 강행하자 한나라당은 “국회의 의견을 무시한 폭거”라고 반발하고 노 대통령은 “대통령의 인사권을 침해하는 월권행위”라고 맞서 정국이 급랭전선을 형성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고 국정원장에 대한 해임결의안을 적극 검토하는 한편, 한발 더 나아가 지금의 인사청문회는 임명자에 대한 가부(可不) 권한이 없어서 비롯된 일이기에 아예 총리 임명동의안 처리와 같이 국회가 국정원장에 대한 임명 거부권 행사를 할 수 있도록 법을 고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민주당 신 주류와 시민단체에서는 “시대 변화에 걸맞은 적절한 인사”라고 노 대통령 입장을 옹호하고 있으며, 이상수 사무총장은 “보수일색인 정보위 의견을 국회 전체의 뜻으로 볼 수 없어 정보위 구성에 균형을 잡을 필요가 있다”고 정보위원 교체 주장을 들고 나오기도 했다.

이 같은 신 주류 측의 강경 발언에 대해 민주당 내부에서도 “같은 당 의원을 보수로 몰아붙여 사퇴 운운 하는 사람이 있는데 누가 개혁성이 강한지 해보자”고 반발하는 등 여야 충돌에 이은, 여여 갈등까지 심화하고 있다.

고 원장은 정치권의 반발에는 아랑곳 없이 “국정원의 탈 정치화-탈 권력화를 통한 정상화에 최우선 역점을 두겠다”고 소감을 밝힌 뒤 “국정원의 공백이 길어질수록 국가 안보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에 후속 인사를 서둘러 단행한다”고 참여정부 첫 국정원장으로서의 행보를 내디뎠다.

29~30일께 단행될 국정원 차장단 및 기조실장 인사에는 국회 정보위에서 이미 거부감을 표시한 바 있는 서동만 상지대 교수가 기조실장에 발탁될지 여부가 최대 관심사다.


노 대통령 “인사권은 대통령 고유권한”

노 대통령은 4월25일 고 원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하면서 “국회는 국회로서 할 일이 있고 대통령은 대통령으로서 할 일이 있으니 서로 권한을 존중해야 한다”고 서두를 꺼냈다.

이어 “의견 표현은 좋지만 국회운영을 한다 안 한다, 법안 심의나 추경도 안 하겠다고 하는데 그것을 볼모로 삼겠다는 것이냐”며 “국회가 검증을 하면 그만이지 국정원장을 임명하라 말라 하는 것은 대통령 권한에 대한 월권”이라고 정면으로 국회를 겨냥했다.

노 대통령은 또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국정원이 정권의 시녀 역할을 할 때 행세하던 사람이 나와서 색깔을 씌우고 하느냐”고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고 원장에게는 “과거에는 국정원장을 자기 말 잘 듣는 사람으로 시켰는데 이번에는 말을 잘 안 듣는 사람으로 시켰다”며 “국정원장은 소신을 갖고 일해 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노 대통령의 강경 방침에 민주당 송영길 의원 등 신 주류 측은 쌍수를 들어 환영했다.

송 의원은 “국정원장의 자격을 과거의 냉전 수구식의 잣대로 몰아가서는 안 된다”며 “고 변호사 같은 개혁성 있는 인사가 나서 내부 개혁과 함께 변화한 한반도 정세에 맞춘 새로운 국정원 상을 정립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같은 신 주류인 신기남 의원은 국회 정보위를 겨냥, “21세기를 맞아 국회 정보위원들의 역할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며 “보수적인 입장에서 제동을 걸거나 족쇄를 채우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고 쏘아 붙였다.

노 대통령의 말대로 인사권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다. 국민의 뜻에 따라 선출된 대통령이 헌법에 명시된 대통령으로서의 역할을 다하겠다는데 이를 무효화할 수 있는 사람도 시스템도 없다.

또 (고 원장 임명에 대해) 반대편에 서 있는 사람들도 그렇다. 아직 시작도 안 해본 일을 갖고 무조건 과거의 경력을 들춰내 ‘적합하다’ ‘부적합하다’ 논하는 것도 어찌 보면 성급한 구석이 있다. 일단 지켜본 뒤 마음에 안 들면 그때 가서 해임결의 등의 방법을 동원할 수도 있는 문제다.


相生의 정치 완전 실종

그러나 고 원장의 임명 강행으로 불거지는 진짜 문제는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국회가 대통령의 인사권을 침해할 수는 없지만 의견 개진만큼은 존중해야 하는 것이 대통령으로서의 당연한 책무다. 국정원장 국세청장 검찰총장 경찰청장 등 이른바 ‘빅4’의 인사청문회를 선거공약으로 받아들인 사람도 다름아닌 노 대통령이었다.

또 민주당에서 당론으로 거부한 특검제 도입을 노 대통령은 국회 뜻 존중과 상생의 정치를 내세워 받아들였다. 그때는 상생의 정치를 앞세우다 여야가 대다수의 의견일치로 건의한 의사는 ‘월권’이라며 반박했다.

앞선 국세청장 검찰총장 경찰청장의 청문회에서는 국회에서 별다른 거부의사를 표명하지 않자 그때는 노 대통령도 국회 인사청문회에 대해 아무런 언급이 없었다. 내 뜻과 같으면 상생이고 내 뜻과 다르면 월권인 것인지, 도대체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하는 지 감이 잘 잡히지 않는다.

이런 노 대통령의 갈 지(之)자 행보에 같은 민주당에서부터 불쾌감은 감지된다. 민주당 소속 김덕규 국회 정보위원장은 “국회의원은 적임성을 물어볼 위치에 있고 청문회에 따라 평가를 한 것이지 대통령 인사권을 침해한 일은 없다”고 밝혔다.

민주당 간사인 함승희 의원도 “국회의 의견을 대통령이 존중하는 모습을 보여줬어야 했고 국회를 존중하는 자세를 보이면서 임명을 관철시킬 수도 있었는데 너무 감정적 대응에 치우친 것 같다”고 비판했다.

한나라당은 말할 것도 없다. 당장 박희태 대행이 4월27일 예정에 없던 기자회견을 갖고 향후 대 청와대 투쟁에 나서겠다고 강력 대응방침을 천명하고 나섰다. 1단계의 원내 투쟁에 이어 점차 2,3단계로 공격수위를 높여갈 계획이라고 한다.

이런 여야의 움직임에도 청와대는 여전히 꼿꼿하다. 한 관계자는 “야당과의 관계복원을 위한 특단의 대책은 없다”며 “야당의 잣대로만 고 원장의 이념적 편향성을 거론하는 것은 국민정서와 동떨어진 것”이라고 못박고 있다. 인사문제에서 더 이상 밀려서는 안 된다는 판단에 따라 냉각기는 불가피하다는 논리다.

이런 청와대의 반응에 대해 짚고 넘어갈 부분이 있다. 노 정권 이후 인사문제에서 한나라당이 극도의 거부감을 표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고 건 총리 임명동의안도 처리됐고, 이전의 빅3에서도 문제점을 제시하진 않았다.

1기 장관들에 대해 개별적 견해는 있었지만 집단으로 뜻을 모은 적도 없었다. 비서실장과 정무수석 인사는 오히려 환영을 받았다. 더구나 이번은 여야가 함께 했다. 야당 만의 정략적 문제와는 차원이 다르다.

국민 위에 국회가 존재할 수 없듯이 국민 위에 대통령도 군림할 수도 없다. 하물며 국민의 대표인 국회 위에 대통령이 서 있을 수도 있다. 국회의 뜻을 보다 존중하는 대통령의 모습은 이전의 권위주의 정권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개혁적인 대통령의 상이다. 그것이 국민의 뜻을 받드는 탈 권위적이고, 보다 개혁적인 대통령의 자세가 아니던가. 노 대통령 말대로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은 굳이 고 원장 말고도 얼마든지 있을 것이란 말을 해주고 싶다.

고영구는 누구인가
   

강원 정선 출신으로 건국대 법학과를 졸업한 고영구 신임 국정원장(66)은 1964년 서울지법 판사로 법조계에 입문, 80년 변호사 개업 때까지 대전지법 공주지원장, 서울고법 판사, 서울민사지법 부장판사 등을 역임했다.

5공 때인 81년 11대 총선에서 민정당 2중대로 평가 받는 민한당 공천으로 고향인 강원 영월 평창 정선에서 첫 배지를 달면서 정치권에 발을 들여놓기도 했다.

이후 국민운동본부와 민주연합추진위원회 공동 대표를 역임하면서 재야활동에도 몸담은 뒤 91년에는 민주당 부총재까지 지냈다. 93년부터 법무법인 시민종합법률 사무소 대표를 맡고 있으며, 94~96년에는 노무현 대통령의 인재 풀로 활용되는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회장을 역임했다.

 

염영남 기자


입력시간 : 2003-10-01 16:42


염영남 기자 libert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