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혹의 선율, 신명의 가락을 타다

[재즈 프레소] '음악적 프레데터' 해금주자 강은일
매혹의 선율, 신명의 가락을 타다

해금 연주자 강은일이 전방위적 연주력을 다시 한 번 과시했다. 국악에서 재즈, 그러다 가요까지, 그야말로 해금이 필요한 곳이라면 손길이 미치지 않던 곳이 없던 그가 이번에는 불교계의 행사에 참석해 애절한 농현음을 선사한 것이다.

4월 24일 KBS홀에서 열렸던 불교 교향악단 니르바나의 제 6회 정기 연주회장(불기 2547년 부처님 오신 날 봉축 기념 음악회)은 단순한 종교 행사의 차원을 훌쩍 뛰어 넘는 자리였다. 글린카의 유명한 ‘루슬란과 뤼드밀라 서곡’으로 문을 열고 비제의 ‘카르멘 조곡’으로 대미를 장식한 이날의 무대는 그 중간의 자리가 빛났다.

사물놀이 한울림의 ‘사물놀이를 위한 협주곡-마당’(작곡 강준일), 대중적으로 절정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국악 가요 가수 장사익의 오케스트라 협연 등에서 흘러 나온 신명의 가락은 1,000여 관객들에게 익숙한, 그러나 언제 봐도 흥에 겨운 무대였다.

이 같은 퓨전적 무대는 더욱 승화돼, ‘합창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교성곡(칸타타)-부처님 이야기’(작곡 최영철)에서는 마치 화엄의 진경을 보는 것 같은 웅장함을 선사했다.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이날 강은일이 니르바나와 14분 동안 펼쳐 준 ‘해금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얼’은 국악, 그 중에서도 해금만이 가지고 있는 매혹적 서정의 세계를 새삼 확인시켰다.

“굿거리, 자진모리처럼 장단은 국악의 것만 썼지만, 선율은 반음까지 구사했죠.” 고유의 장단에 서양 현대 음악의 선율을 구사한 현대적 음악이었다는 강씨의 말이다. 또 정통 국악에서는 쓰이지 않던 최고음까지 구사하는 등 이전의 주법을 탈피하려 노력했다고 그는 말했다. 그 결과, ‘얼’은 생동감이 넘치는 무대로 기억됐다.

그러나 마이크는 여전히 문제였다. “연습때는 마이크 없이 했지만, 공연까지 그랬다면 빈약한 해금 소리는 오케스트라에 완전히 묻혀 버렸을 거에요.” KBS 홀에 있던 마이크를 끌어 공명통 바로 곁에 붙여 치뤘던 이날 연주에 대해 그는 “고육지책”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해금이란 악기는 활을 구사(운궁ㆍ運弓)하는 데 따라 찢어지는 소리까지 나는 법이다. 그럴 경우 그 음이 마이크를 통해 증폭된다면 객석은 뜻밖의 고문을 당할 수도 있다. 그래서 콘서트 내내 그는 몸을 조금씩 움직이며 곡의 진행에 따라, 마이크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려 객석은 눈치 못 차릴 정도로 애를 썼다.

연주자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신경 쓰이는 상황이었지만, 그는 “해금이 세계로 뻗어 나가기 위한 방향 모색의 자리였다”며 웃는다. 그 말대로, 그는 해금이란 조그마한 악기를 갖고 이뤄낼 수 있는 최대치를 모색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이것은 이질적 장르와의 만남, 시쳇말로 크로스오버다.

현장에서의 돌발 사태에 기민하게 대처하는 능력은 국악이라는 출발점만을 고집하지 않는 특유의 활발함과 자신감에서 기인한다. 외곬에 파묻히기 일수인 국악인들과 강은일이 가장 확연하게 구분되는 점은 재즈와의 활발한 활동. 전성식(베이스), 임미정(피아노) 등 또래의 젊은 재즈 뮤지션들과 두물 워크샵 등지에서 가졌던 앙상블은 국악과 재즈는 어떻게 만날 수 있는지에 대한 답을 제시했다.

또 1998년 성공회대 성당에서 처음으로 파이프 오르간과 이뤄냈던 해금 산조, 민요, 찬송가 등의 앙상블은 양악과 국악의 만남에서 신선한 감동을 자아냈다. 가톨릭 신자인 그는 “해금을 통해 사랑을 전할 수 있으면 뭐든 하겠다”고 다짐했다.

사실 그는 안치환, 강산에, 홍순관 등 개성 있는 가수들의 작업에도 적극 참여, 그들의 노래를 더욱 빛내주고도 있다.

지금 한양대와 전남대 국악과의 강사로 나가고 있는 그는 “앞으로 재즈 교육 기관에서도 불러 주면 강의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재즈 관련 전문 지식이 별로 없을텐데 어떻게? “가르치면서 배우는 게 재즈 아니냐”는 씩씩한 답이 곧 돌아 온다. 그렇다. 원칙에 얽매이지 말고 늘 열린 마음으로 부딪치고 ‘깨짐’을 두려워 하지 않는 것, 그것이 재즈의 정신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음악적 무게중심을 항상 국악에 둔다.

오는 7월 25일 국립국악원 우면당 무대에서 그는 100% 정통 국악인으로 변신한다. 산조 전바탕은 물론, ‘영산회상’도 연주한다. 하나는 속악의 정수이고, 다른 하나는 정악의 진수다. 그는 욕심이 참 많다. 음악적으로, 그는 어떤 것이든 소화해 내는 ‘프레데터(predatorㆍ포식자’)가 되길 꿈꾸고 있는 것일까.

장병욱 차장


입력시간 : 2003-10-01 17:23


장병욱 차장 aj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