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 토요 휴무제 전격실시, 산업계 전반으로 확산 조짐

"삼성도 노는데…"주 5일근무, 대세로
삼성그룹 토요 휴무제 전격실시, 산업계 전반으로 확산 조짐

5월 첫째 주 토요 휴무제가 처음 도입된 삼성그룹 기획홍보팀의 노승만 부장은 1일부터 5일까지 황금 휴무일을 맞아 다양하고 ‘살 맛나는’ 휴가계획을 세웠다. 우선 근로자의 날인 1일에는 회사 동료들과 골프를 하고 2일 하루를 집에서 쉰 뒤, 3일에는 대학 동창들과 인근의 맛 기행을, 4,5일은 가족과 함께 봄꽃 축제가 한창인 안면도 꽃 박람회장에서 보냈다.

노 부장은 휴가계획을 짜면서 “여름 휴가철보다 더 확실하게 쉴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는 게 너무 행복하다”며 웃음꽃이 피었다. 옆 자리의 최석진 차장도 2박3일 일정으로 유채꽃이 한창인 제주도를 다녀왔다. 근로자의 날과 어린이날 등 쉬는 날이 이어지는 5월 초는 도심을 피해 밖으로 몰려 나가는 인파들로 그렇게 지나갔다.

두 사람이 황금연휴를 보내게 된 것은 삼성그룹이 전격적으로 주5일 근무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어차피 토요 휴무제가 대세라면 더 꾸물댈 것 없이 먼저 치고 나가자는 삼성식 발상인 셈이다. 삼성은 토요일 휴무를 연월차 휴가로 상쇄하는 방식을 택했다.

하지만 연월차 대체방식은 노동계가 주장하는 임금 삭감 없는 주5일 근무제와 상치돼 노조가 있는 다른 기업에선 적용이 어려운 것이다. 자칫 올 임금 협상 시기와 맞물려 ‘춘투’의 또 다른 빌미가 될 수도 있다.


연월차 대체방식

삼성의 한 관계자는 “법정 주5일 근무제에 대한 정부의 입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인 상황에서 제도 도입시 예상되는 근무환경 변화에 재빨리 적응한다는 취지에서 매주 토요 휴무제를 실시키로 했다”고 말했다.

삼성은 이미 2년 전부터 격주(1ㆍ3주) 토요 휴무제를 도입한 데 이어 3월부터는 삼성증권이 매주 토요일 휴무를 시범적으로 실시하는 철저한 사전준비를 해 왔다.

이 관계자는 “그동안 실시해온 격주 토요 휴무제가 임직원들에게 여가 기회를 확대해줘 삶의 질을 향상시켰을 뿐 아니라 지난해 창사이래 최고의 경영성과를 실현하는 등 생산성 향상도 동시에 이룩했다는 자체 평가가 주5일 근무제의 도입 바탕이 됐다”고 설명했다.

삼성의 주5일 근무제는 현재 업무 형편과 사업장 특성에 따라 회사별로 노사 협의를 거쳐 시행되고 있다. 삼성그룹 24개 계열사들은 토요 휴무에 따른 구체적인 운영 프로그램을 마련해 놓은 상태다. 법정근로시간(주 44시간)을 줄이지 않으면서도 매주 토요 휴무를 실시하기 위해서는 업종과 사업장 특성에 맞는 창의적인 프로그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미 은행권이 전면적인 주5일 근무제를 실시 중인 만큼 생명ㆍ카드ㆍ캐피털 등 금융계열사의 경우 별다른 어려움 없이 휴무제에 들어갔다. 주요 업무가 은행을 통해 이뤄지고 있는 삼성물산도 해외법인과의 거래를 탄력적으로 조정했다.

반면 주5일제 근무가 현실적으로 어려운 회사들도 있다. 삼성전자와 삼성SDI 삼성전기 등 제조 계열사는 당장 생산직 사원에게까지 적용하기에는 무리라는 입장이다. 삼성전자는 반도체와 LCD(액정표시장치) 등 4조3교대로 24시간 근무체제를 유지하는 사업장의 경우 현행 근로시스템을 유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삼성SDI 역시 브라운관 2차 전지 PDP(플라즈마디스플레이패널) 등 주력제품의 생산 여건이 24시간 완전 가동 상태를 유지해야 하는 만큼 생산직에까지 적용하기는 어려운 상태다. 다만 삼성전기와 삼성전자 디지털미디어 및 백색가전 사업장 등 조립라인의 경우 근무시간 탄력운영하고 있다.

삼성중공업은 2005년 상반기까지 조업물량이 꽉 차 있는 상황이어서 납기 준수를 위해 주5일 근무를 도입하기가 어려워 현재 시행 중인 격주 토요 휴무제를 유지하고 있다.


타기업들 도입여부 고심

삼성그룹이 전격적으로 주5일 근무제를 시행함에 따라 다른 기업들은 이 제도의 도입 여부를 놓고 고심하는 분위기다. 이미 주5일 근무제를 시행중인 기업도 있고 삼성이 띄워올린 신호탄에 동조하려는 움직임에 무게가 실리기는 하지만 제도적 장치가 완비되기까지 유보한다는 신중론도 만만찮다.

LG전자의 경우 이미 지난해부터 사무직과 연구직은 주5일 근무,생산라인은 격주 토요 휴무제를 실시 중이다.

SK도 관리직과 생산직 모두 격주 토요 휴무제를 실시 중이고 삼천당제약과 경농 등 일부 중견기업과 한국후지쯔 캐리어 등 외국계 기업과 IT기업들도 주5일 근무를 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이들 기업 협력업체 등으로의 확산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돼 국회 입법과는 무관하게 산업계 전반적으로 주5일 근무가 빠른 속도로 확산될 전망이다.

롯데그룹 경영관리본부는 조만간 전 계열사에 대한 주5일 근무 시범실시를 선언할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 관계자는 “이번 시범 실시는 전 계열사에 적용된다”면서 “특히 호텔이나 백화점, 롯데리아 등 서비스업의 경우 그 특성을 고려해 격주 5일 근무를 시행한 후 늦어도 6월이전에 매주 5일 근무로 가는 단계적 방안을 도입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롯데그룹의 주 5일 근무제 도입은 사업 운용 특성상 대부분 서비스 업종 이라는 점 때문에 파격적인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내부적으로는 연월차 등 비용을 아끼려고 한다는 비판도 있어 직원들에게 폭 넓게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하는 문제점도 있다.

포스코 역시 이른 시일 내에 시행한다는 방침 아래 노경협의회를 통해 구체적인 시행방안을 마련 중이다. 아직 시행시기는 불분명하지만 이르면 6월중 시행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한솔그룹도 정부시책에 맞춰 주 5일 근무제를 조만간 시행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고 SK도 그룹 차원에서 시행 방안을 검토하고 있으나 구체적인 시행방안, 시행 시기는 계열사별 노사협의를 통해 결정한다는 입장이다.

SK 관계자는 “그룹 오너인 최태원 회장과 김창근 구조조정본부장이 구속 중인 관계로 계열사별 단체협상이 지지 부진해 아직 불투명한 면이 많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자동차ㆍ건설업 등선 “시기상조”

이에 반해 토요 휴무제의 도입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기업들도 많다.

현대자동차는 관련법이 정비되기 이전에는 주 5일 근무제 도입을 당장 검토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현대차는 노조가 임금과 노동조건이 열악해지지 않는다는 전제 아래 제도 시행을 요구하는 상황이어서 이를 수용하면 생산성 저하가 불가피해 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현대차 관계자는 “현 상황에서 주 5일제 도입 여부에 대해 입장을 밝힐 게 없으며 자동차 산업의 특성을 고려할 때 다른 기업의 시행 여부에 영향을 받을 이유도 없다”고 설명했다.

일감이 넘쳐 나는 조선업계도 신중론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삼성중공업만 하더라도 그룹의 방침과 달리 당장 도입이 힘들며 좀 더 상황을 지켜보자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도 법제화 진행 상황을 지켜보겠다는 분위기인데 일감이 넘쳐 나는 상황에서 당장 이를 도입하면 조업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적극성을 띨 수 없다는 논리다.

현장 인력이 많은 건설업계는 사업특성 때문에 제도 시행에 매우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공사기간 단축이 최우선 목표인데 주간 근무일수가 5일로 줄어들 경우 발주처가 요구하는 공기를 맞추기 힘들고 공기 연장은 결국 비용증대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삼성물산 건설부문은 현장의 경우 공사 진척도 등을 감안, 현장 소장 재량으로 주 5일 근무제를 자율적으로 실시토록 함으로써 그룹 차원의 시행방침과 궤도가 약간 다르다.

LG그룹은 소리 소문 없이 주 5일 근무를 시행하는 케이스다. 이 그룹 계열사들은 2001년 하반기부터 점진적으로 주 5일 근무제를 조용히 도입, 시행해 오고 있다. LG전자가 2001년 9월부터 시행 중이고 LG건설도 건설사로는 이례적으로 2001년 하반기에 도입, 시행하고 있다. 또 LG상사도 지난해 3월 도입, 매주 토요일 휴무하는 등 LG그룹에서는 이미 정착단계에 접어들었다는 평가다.

생산현장에서 4조3교대 근무제를 시행 중인 기업들은 생산직에 대해서는 실질적으로 주 5일 근무(주 40시간 근무)가 적용되는 셈이기 때문에 굳이 제도를 도입, 시행하는 부산을 떨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다.


기업 및 노동문화에 큰 변화 예상

삼성그룹의 전격 시행으로 촉발된 주5일 근무제는 앞으로 우리 기업 및 노동 문화를 바꿔나갈 전망이다. 그래서 주 5일 근무제에 적합한 경영방식을 도입하는 등 경영 전반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많다.

한 대기업의 임원은 “주 5일 근무제의 확산으로 임직원의 여가 활용과 자기계발 프로그램도 마련해야 하고 기업별로 생산 공정이나 인사관리 등 경영 방식을 바꾸는 것도 불가피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장학만 기자


입력시간 : 2003-10-01 17:36


장학만 기자 local@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