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부유층 겨냥한 초고가 마케팅, 불황은 없다

[르포] 명품족, "귀족이라 불러다오"
일부 부유층 겨냥한 초고가 마케팅, 불황은 없다

경기 침체가 계속되면서 시장이 체질 개선에 돌입했다. 양보다는 질에 승부수를 띄우는 ‘귀족 마케팅’이 본격화하고 있다. 구매력이 높은 일부 고객들만을 겨냥, 이들을 집중 공략하는 전략이다.

귀족 마케팅을 채택한 기업들은 경쟁에서 살아 남기 위해 기존에는 볼 수 없었던 파격적인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일부의 경우 고가의 제품이나 별장터를 경품으로 내거는 등 자칫 과열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지난달 말 서울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열흘 전쯤 시작된 ‘2003 프랑스의 봄’ 이벤트가 성황리에 열리고 있었다. VIP 고객을 위한 서비스 차원에서 마련된 이날 행사는 프랑스 귀족 문화를 엿볼 수 있는 기회였다. 눈이 휘둥그레해지는 화려한 의류와 보석 등이 선보였다. 한 병에 수백만원 하는 와인도 즉석에서 경매가 이뤄졌다.


5억짜리 책상위에 3억짜리 시계

백화점측에 따르면 행사에 전시된 제품들은 모두 프랑스에서 직접 공수해온 것들이라고 한다. 이날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9층 그랜드홀에 마련된 ‘18세기 프랑스 진품 엔티크전’. 일부 VIP 고객을 대상으로 한 전시회에는 중국 옷으로 제작된 검정색 책상(5억6,000만원), 여자 얼굴 장식이 달린 서랍장(3억3,000만원), 거북이 등껍질로 만든 책상(2억8,000만원) 등 일반인들은 평생 가야 만져볼 수 없는 명품들이 대거 선보였다.

물론 백화점측은 순수한 문화 행사로 이해해 달라는 주문이다. 소비자에게 명품 정보를 알려주는 이벤트에 다름아니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구매자가 나설 경우 즉석에서 판매도 하겠다”는 의지를 여러차례 언론을 통해 밝힌 만큼 단순히 전시회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이렇듯 경기에 적신호가 켜지면서 ‘불황 무풍지대’로 통하는 명품 시장이 급속히 가열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귀족 마케팅이란 이탈리아 경제학자 파레토가 창안한 ‘2080 법칙’(전체 인구의 20%가 전체 부의 80%를 차지하고 있다)을 마케팅에 응용한 기법. 매출에 별로 도움이 안 되는 80%보다는 높은 구매력을 갖고 있는 20%에 힘을 쏟아 붓는 전략이다.

눈에 띄는 점은 단순한 명품이 아닌 ‘초명품’의 시장 점유율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초명품이란 구찌, 루이비통 등 기존의 명품에서 한단계 업그레이드한 제품. 때문에 판매되는 제품의 가격은 상상을 초월한다. 보석이나 시계가 수억원대를 오르내리고, 차 한 대에 10억원에 달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지난해 힐튼호텔에서 첫선을 보인 프랭크뮬러 시계가 대표적인 ‘초명품’에 속한다. 이 제품은 시계에 예술 개념을 접목한 것이 특징. 요컨대 시계판을 덮고 있는 유리가 평면이 아닌 곡선으로 돼있다거나, 태엽을 감는 부분을 금보다 비싼 플라티늄 재질로 제작해 ‘시계의 피카소’라고도 불린다.

평균 가격은 1천5,000만원 선, 그러나 다이아몬드와 같은 보석을 박을 경우 3억원을 호가하기도 한다. 세계적으로 데이비드 베컴, 마이클 조던, 지네딘 지단 등의 스포츠 스타와 제니퍼 로페즈 등 할리우드 배우들이 즐겨찾는 브랜드다.

‘꽃보다 아름다운 보석’으로 알려진 반클리프앤아펠도 초명품 계보에 올라있다. 불가리, 티파니 등과 함께 세계 5대 보석으로 꼽히는 이 보석은 가격이 수억원을 오르내린다. 얼마 전에는 강남의 모 판매장에서 단일 보석으로는 최고가인 3억4,000만원에 판매되기도 했다.


수입차 시장에 불황은 없다

그러나 가장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곳은 수입차 시장이다. 불황이 장기화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수입차 시장은 사상 최대의 매출을 기록하는 등 전성기를 맞고 있다.

한국자동차공업협회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에서 팔린 수입차는 1만9,119대. 수입차 개방이 시작된 지난 87년이래 최대 판매량이다. 업계에서는 올해 실적이 지난해 대비 최소한 50% 이상 증가한 2만 여대가 팔려나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물론 수입차 시장도 점차 ‘초고가 마케팅’으로 시스템이 재편되는 추세다. 지금까지 가장 비싸게 팔린 자동차는 차 값만 10억원에 달하는 코닉세그CC. 이 차는 최고시속이 390km이며,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에 도달하는 시간이 3.5초에 불과하다. 이 달 중으로 2대가 스웨덴에서 공수될 예정인데 국내 굴지 그룹의 재벌3세와 대구에서 사업하는 지방유지가 이미 예약을 마친 것으로 알려진다.

전문가들은 당분간 이 같은 추세가 사그러들지 않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LG경제연구원의 한 관계자는 “명품의 경우 경기에 대한 영향을 그다지 받지 않을 뿐 아니라 마진율도 크다”며 “최근 경기로 볼 때 명품 마케팅 열기는 당분간 수그러들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분석했다.

물론 귀족 마케팅을 채택하고 있는 이들은 사회적 이목을 우려해서인지 대대적인 선전은 피하고 있다. 종전의 명품들은 연예인에게 옷을 입히는 ‘스타 마케팅’이나 대규모 판촉전을 벌이는 방법으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러나 과소비 조장 등 ‘곱지 않은’ 목소리가 잇따르자 1대1 마케팅으로 전략을 대폭 수정했다.

오히려 판매를 억제하는 ‘디마케팅’ 전략을 활용해 명품으로써의 ‘이미지 굳히기’에 공을 들이는 추세다. 삼성패션연구소의 한 관계자는 “명품 열풍이 불면서 루이비통이나 구찌 등은 이미 명품으로써의 희소성을 상실한지 오래다”며 “디마케팅의 경우 수요 억제를 통해 고급화 이미지와 부자들의 구매 심리를 높이는 ‘1석2조’의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불황 마케팅 ‘극과극’
   

시장의 변화와 더불어 눈에 띄는 것이 ‘중간 지대’의 퇴보다. 요즘 시장을 보면 한 쪽에서는 ‘초고가’ 상품이 불티나게 팔려나가는 반면, 다른 쪽에서는 ‘떨이’를 외치는 극과 극의 상황이 자주 연출된다. 요컨대 양극단 마케팅이 동시에 펼쳐지는 ‘마케팅 동거’ 시대에 돌입한 것이다.

초고가 마케팅의 경우 이른바 파레토의 ‘2080 법칙’을 뛰어 넘어 특별한 소수만을 위한 ‘1% 마케팅’으로 진화하고 있다. 일부 상류층을 상대하는 이들의 서비스는 상상을 초월한다. 자산 관리 전문가들 동원해 세미나를 벌일 뿐 아니라 절세를 위한 1:1 상담까지 벌이고 있다. 최근에는 VIP 고객에게 명품 부동산을 연결한 명품 부동산 업체까지 서울 압구정동 요지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에 반해 한쪽에서는 ‘싸게, 더싸게’를 외치는 ‘초저가’ 상품에 구름떼 같은 인파가 몰려들고 있다. 이들은 정장 한벌에 1만원을 밑도는 초저가로 주머니 사정이 빈약한 서민들의 귀를 솔깃하게 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현상을 ‘마케팅 코아비타뇽(동거) 현상’으로 분석하고 있다. 한 마케팅 전문가는 “돈되는 고객 위주로 시장이 재편되고 있다”며 “불황이 장기화될 경우 시장이 파행으로 치달을 수 있는 만큼 관계 당국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석 르포라이터


입력시간 : 2003-10-01 17:39


이석 르포라이터 zeus@newsbank21.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