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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LP 여행] 심수봉(上)
흑인판 여자의 일생



1978년 제2회 대학가요제. 포크와 록이 주류를 이뤘던 경연장에서 명지대생 심수봉의 트로트 노래는 파격이었다. 상상을 못했던 트로트 대학생 가수의 출연에 당황하던 관객들은 경쾌하면서도 구슬픈 가락을 담은 그녀의 창작 트롯 곡에 끝내 열광적인 반응을 보였다. 수상을 하지는 못했지만 그녀는 단숨에 '대학 가요제의 이단아'로 떠올랐다.



참가 곡 '그때 그 사람'은 전국을 강타하며 1979년의 최고의 히트곡으로 떠올랐다. 매일 같이 TV,라디오의 가요프로그램은 심수봉 열풍이 몰아쳤다. 평론가들은 뒤늦게 '트롯만이 갖는 멋과 맛을 가장 정확하게 표현하는 가수', '천부적으로 한국적인 한이 담겨있는 목소리의 주인공'이라며 호들갑을 떨었다.



하지만 그녀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10.26 시해 사건의 현장에 연루된 '그 때 그 여인'으로 한동안 세인들의 따가운 눈총 속에 살아가야 했던 비련의 주인공이기도 했다.



본명이 심민경인 심수봉은 공식적으로는 1955년 7월 11일 충남 서산에서 태어난 것으로 신고돼 있지만, 실은 5살 줄여진 나이다. 그녀의 할아버지 심정순은 경지에 도달했던 판소리 명창이자 가야금 명인이었다.



작은 아버지 심사건은 인간문화재로 지정된 소리꾼이었고 막내 고모 심화영 또한 승무로 1983년 인간문화재가 되었던 사람이다. 민요 채집가였던 아버지 심재덕은 이대와 숙대에서 국악 강의까지 할만큼 일가견이 있었다.



어머니 장형복은 부친의 제자였다. 배다른 형제를 가져야 했던 가정 환경은 그녀에게 원초적 한의 정서를 남겼다. 3살 때 부친을 여의고 홀어머니와 어렵게 살아온 그녀에겐 소리꾼 집안의 피가 흐르고 있었다.



어린 시절 동네에 서산 극장 악극단의 풍물패가 지나가면 자다가 신발도 신지 않고 뛰어 나갈 정도로 소리를 좋아했다. 심수봉은 "당시 트럼펫 소리로 듣던 '타향살이' 가락은 지금도 어린 날의 숨막히던 흥분으로 몰고 간다"고 말했다.



이미자의 '정동대감'을 구성지게 부르던 그녀는 동네 아줌마들의 인기 스타였다. 유치원을 다니는 딸 아이의 뛰어난 음악성을 깨달은 그녀의 어머니는 딸을 서산읍에서 피아노가 있던 단 한 곳이었던 서산초등학교 교감 선생님 집으로 데려 갔다.



심수봉은 교감 선생님의 딸에게 2년 간 피아노를 배우며 음악의 기초를 닦았다. 초등학교에 들어간 그녀는 음악과 미술, 국어에 재능을 보였다. 음악 책의 악보를 보고 단번에 계명으로 노래를 부르는 아이는 그녀가 유일했다. 하지만 남편과 사별 후 재혼을 한 그녀의 어머니가 파경을 맞자, 어머니를 따라 2학년 때 서울 흑석동으로 올라 와 은로초등학교에 전학 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명문 여중 입학을 목표로 과외를 받았다. 당시 과외 공부를 했던 흑석동 언덕의 담임 선생집에서 그녀는 친구들에게 귀신 장난을 호되게 당한 뒤 귀신에 대한 공포감에 시달렸다.



원인을 알 수 없는 '뇌신경 인프레'란 병 때문에 정상적인 교육까지 포기해야 했다. 병세가 짙어진 그녀는 진학을 포기하고 인천 앞 바다에 있는 무의도에서 요양을 했다. 당시 그녀의 유일한 벗은 음악을 들려 주었던 라디오.



1년 뒤 영등포에 있던 여중에 입학했지만 치료를 위해 또 다시 2년 휴학을 했다. 심수봉은 "당시 어머니의 종교는 이단으로 지목 받는 신흥 종교였다. 광적인 예배의 소음과 혼돈은 참기 힘든 두통을 안겨주었다"고 고백했다. 휴학을 한 그녀는 다시 무의도로 들어갔다.



심수봉은 해변가에서 어느 대학생 오빠가 기타를 치며 들려주는 '해뜨는 집(House of the Rising Sun)'의 파격적인 가사 내용에 충격을 받았다. 그녀는 그 기타 소리를 들으며 충격과 환희를 맛보았다. 무슨 악기든 연주하고 싶었고 노래를 부르고 싶어 안달이 났다. 불현듯 어린 시절 그리도 좋아했던 음악이 떠올랐던 것이다. 그녀는 어머니에게 부탁을 해 기타와 교본을 가지고 연습을 시작하며 건강을 회복해 갔다.



그녀는 인천 인화여고에 뒤늦게 입학을 했다. 음악에 관심을 갖게 되자 공부보다는 취미 활동에 적극성을 보였다. 어느 날 TV에서 여성 드러머가 연주를 하는 모습을 보고 반해 버렸다. 여름방학부터 그녀는 삼각지에 있던 음악학원에서 드럼을 정식으로 배웠다.



미8군 아나운서를 했던 배다른 큰언니가 소문을 듣고 송민영 악단의 드러머를 소개시켜 주었다. 그렇게 개인 지도를 받기 시작한 그녀는 시민회관에서 열린 아마추어 재즈경연대회에 출전을 해 장려상을 수상할 만큼 실력이 붙었다.



음악계에서 쓸만한 드럼주자로 이름이 나기 시작하자 '밴드에 참여하라'는 제의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녀는 로큰롤을 주로 연주했던 보컬 그룹 '논스톱'의 드럼 주자로 미8군 전용 클럽 무대에 섰다. 이 당시 심수봉은 김수희등과 친분을 맺었다.



이후 남자 드럼머 선배의 조언을 따라 재즈피아노로 전향한 그녀는 1973년 여고 졸업 후 소공동에 위치한 이태리 고급 레스토랑 '라 칸티나'에서 아르바이트 가수 활동을 시작했다. 이 당시 그녀는 하얀색 그랜드 피아노를 치며 '키사스 키사스', '베사메 무쵸'와 같은 라틴 노래들을 주로 불렀다.



그러던 어느 날 60년대를 풍미했던 밴드 마스터 엄토미씨가 "보광동에서 개인 파티가 있는데 피아노 반주를 좀 해달라"고 부탁을 해왔다. 심수봉은 미조라 히바리의 엔카 몇 곡을 불러 '라 칸티나'의 한달 봉급 5만원의 4배가 넘는 20만원의 거액을 수고비로 받았다.



그 파티는 당시 청와대 박종규 경호실장이 주최한 연회였다. 이후 그녀는 경호실장이 여는 비밀 사교 파티에 자주 불려 나가며 1975년 박정희 대통령과 첫 대면을 하게 되었다.



최규성 가요 칼럼니스트 kschoi@hk.co.kr


입력시간 : 2003-10-02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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