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기와의 전쟁은 인고의 장기전"

[인터뷰] 국세청 최명해 조사국장
"투기와의 전쟁은 인고의 장기전"

국세청이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에서 전면으로 나섰다.

국세청은 ‘5ㆍ23 부동산 시장 안정 대책’ 발표 이후 서울 강남과 수도권, 충청권 지역에서 투기 조장 혐의가 있는 부동산 중개업소 600곳에 사상 유례 없이 조사 인력 3,000명을 대거 투입하는 등 소위 ‘떴다방(이동중개업소)’과 중개업소의 삼각 끈을 옥죄는 전면적인 세무조사를 벌이고 있다.

“예년과 같이 일시적인 단속으로 알았다가는 큰 코 다칠 겁니다. 부동산 시장이 안정될 때까지 지속적으로 강도 높은 세무 조사가 이뤄질 계획입니다.” 5월 30일 국세청 최명해(54) 조사국장은 국세청이 전면전을 벌이고 있는 ‘투기와의 전쟁’을 인고(忍苦)의 장기전으로 규정하고, 집무실에는 침낭까지 마련해 놓을 만큼 비장한 각오를 보였다.

1980년대 신도시 개발 이후 부동산 가격의 이상 과열 현상이 발생할 때 마다 소방수 역할을 자처해 온 국세청 조사국은 “국세청이 나서야만 부동산 가격이 꺾인다”는 전례를 매번 남겨왔다. 이 같은 ‘약발’ 때문일까.

‘5ㆍ23 조치’이후 1주일이 지나면서 부동산 시장이 벌써 약보합 상태로 선회할 기미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투기의 열기를 다 잡았다고 보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것이 국세청의 판단이다. ‘투기와의 전쟁’에 나선 국세청 조사국 수장의 얘기를 들어 봤다.


국세청 조사요원 절반 투입한 전면전


-투기 조장 혐의가 있는 부동산 중개업소들에 대한 상주 조사 등 강도 높은 단속이 이뤄지고 있는데, 지금까지의 효과는.

“아직 무엇이라고 속단하기에는 이르다. 하지만 최근 서울 동시 분양에서 사상 최고의 경쟁률을 기록한 강남구 도곡 주공 1차에서 미분양 사태가 벌어질 만큼 집값 상승의 핵심 요인이던 재건축 아파트의 시세 상승률이 차츰 둔화되고 있다. 부동산 가격이 이상 급등하는 데는 투자자들 뒤에서 가격을 부추기는 세력이 반드시 있기 마련이다.

국세청은 부동산 투기를 억제하기 위해 탈루 혐의가 있는 부동산 거래현장에 조사 요원들을 사상 처음으로 직접 상주시키면서 매출과 수입, 지출 금액 등을 파악하는 입회 조사를 벌이고 있다. 국세청은 이번 조사를 위해 전체 조사요원 6,000명중 절반인 3,000명을 투입할 만큼 전면전을 벌이고 있다.

서울 강남권 등 부동산 가격 이상 급등에 따른 일반 소시민들의 심리적 허탈감과 상실감은 그 정도가 너무 심각하다. 이번 기회에 그 근본적인 치유책을 찾아야 한다.”


-이번 조사의 특징과 재건축 지역 등 부동산 시장이 언제쯤 진정세로 돌아설 것으로 보는가.

“이번 입회조사는 109개 분양현장의 ‘떴다방’에 대한 특별관리와 서울ㆍ수도권 부동산 투기혐의자에 대한 세무조사가 병행되는 것이어서 시너지 효가가 극대화 될 것으로 기대된다. 부동산 투기가 극심한 분양현장에서는 가수요자로 판단되는 경우와 ‘떴다방’을 통해 현장에서 분양권을 매매한 자에 대해선 입금수표를 확인, 자금을 추적하는 등 그 즉시 세무조사에 착수하고 있다.

조사 대상자는 지난해 2월부터 올해 3월까지 1년간 아파트 분양권 명의 변경 자료 총 7만5,464건을 수입, 분석해 시세 차익이 큰 분양권 양도자료를 중심으로 선별하고 있다. 또 앞으로 재건축의 일반 아파트 분양 물량에 대해 후 분양제가 도입되고 투기 과열 지구가 수도권으로 확대될 경우 투기 심리는 일단 꺾일 수 밖에 없다. 결국 가수요에 의한 비정상적인 부동산 과열 현상은 조만간 진정세로 돌아설 것이라고 본다.”


-전국부동산중개업협회 등은 이번 조사에 대해 크게 반발하고 있는데.

“일부에서는 부동산 중개업소 상주 입회 조사가 정상 영업을 방해하는 것이 아니냐는 볼멘 소리도 있다. 그러나 정상적으로 영업을 하는 업소들에서는 평소와 별 다른 동요가 없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번 상주조사는 이미 누적 관리해온 업소들을 대상으로 상습적으로 이중계약서를 작성하고 세금을 탈루하는 등 탈세를 부추기는 혐의가 있는 중개업소 600곳을 선별해 집중 단속하고 있다. 결코 정상적인 영업을 방해하려는 것은 아니다.”


투명하고 공정한 조사기준과 절차


-국세청의 조사가 일시적으로 약효를 보일 수 있지만 근본적인 대책은 아니라고 보는데.

“물론 부동산 보유세를 현실화하는 등 장기적으로 제도적인 보완점이 같이 따라 주어야만 부동산 투기 심리를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국세청이 벌이는 이번 조사가 단지 일시적인 조사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부동산 시장이 안정될 때까지 지속적인 단속이 이뤄질 것이다. 부동산 투기 혐의자는 부동산 거래 관련 자금 흐름을 추적받게 되는 것은 물론 양도소득세와 증여세, 상속세 등을 포함한 통합 조사를 받게 된다. 필요하다면 최대 15년이나 되는 국세 부과 제척(除斥) 기간내의 모든 자금 흐름까지 추적 조사할 계획이다. 이번 조사를 결코 만만하게 봐서는 안될 것이다.”


-올들어 국세청이 법인들에 대한 특별 세무 조사를 없애기로 했다는데, 그 근본 취지는.

“최근과 같이 경기 불황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경영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하다. 가뜩이나 어려운 기업들에게 예상치 않은 특별 세무 조사는 큰 충격으로 국가 시책에 어긋난다고 본다.

따라서 원칙적으로 특별 세무 조사를 폐지하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동일 업종의 모든 법인들에 대한 세무 성실도 분석은 이미 전산화돼 누적 관리되고 있으며 검증 받고 있는 상태다. 다만 탈세 혐의가 분명한 경우, 예를 들어 부동산 투기 등 경제 질서를 어지럽히는 법인들에 대해 극히 제한적으로 조사는 이뤄질 것이다. 기존 특별 세무 조사에 해당하는 94%정도는 일반 세무 조사로 시행할 계획으로, 6% 정도만 특별 조사가 이뤄진다고 보면 될 것이다.”


-때론 정치적인 배경이 있는 경우 세무 조사에 대한 기준이 자의적이라는 평가도 있는데.

“과거에는 탈세를 하고도 버젓이 영업을 하는 기업이 주위에서 부러움을 살 수 있었을 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은 공평 과세에 대한 의식 수준이 높아졌다. 성실하게 납세한 기업들이 오히려 대접을 받는 분위기로 바뀌고 있다.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투명하고 적합한 공정 과세가 이뤄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조사 기준과 절차 역시 투명하고 공정하게 이뤄지고 있다. 또 최근 서울 지역에서 조사 담당관 제도를 시범 운영하고 있다. 과거엔 세무조사를 받게 될 경우 국세청에 학연과 지연이 있는 연고자를 먼저 찾아가 상의하고 청탁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이제는 실무자인 조사 담당관을 찾아가 상담을 의뢰할 수 있도록 했다.”


세무조사에 대한 피해의식 사라져야


-국세청 조사국장이 된지 이제 두 달째에 접어드는데.

“그간 부동산 투기 세력과의 싸움에 진력하다 보니, 시간이 어떻게 지나 갔는지 모를 정도다. 국민들이 일상적으로 느껴 온 세무 조사에 대한 오해와 편견이 바꿔져야 할 시기가 왔다고 본다. 세무 조사라면 무조건 갖는 피해 의식과 억울함은 사라져야 한다. 납세 의무자도 이젠 클라이언트(client)로 대접 받는 시대가 왔다.”

장학만 기자


입력시간 : 2003-10-02 14:22


장학만 기자 local@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