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특한 외모 맛깔스런 색이 동화적 이미지 극대화

[문화 속 음식 이야기] 호박
독특한 외모 맛깔스런 색이 동화적 이미지 극대화

영화 ‘음식남녀’를 보고 나면 어느새 중국집 전화번호를 뒤적거리게 되고, 해리포터를 읽으면 버터 맥주가 어떤 맛인지 궁금해진다. 좀 엉뚱한 발상이기는 하지만 작품에 나오는 요리를 먹으며 주인공에게 감정이입을 해보는 것도 색다른 재미일 것이다. 문화 속에 숨어있는 요리 찾기, 지금부터 함께 떠나 볼까요?

호그와트 마법 학교, 9와 4분의 3번 승강장, 번개 모양의 흉터…. 전세계 어린이들을 열광하게 만든 소설 ‘해리포터’ 시리즈에는 페이지 곳곳마다 신비스러운 소재들로 가득 차 있다. 특히 재미를 더해 주었던 것은 읽는 이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요리들이다. 마법사와 마녀들은 두꺼비 모양의 페퍼민트 크림, 피 맛이 나는 캔디 등 엽기적인(?)음식들을 즐긴다.


호기심 자극하는 엽기적 음식들

일본의 한 해리포터 동호회에서는 소설 속 요리를 만들어 보는 모임도 열렸다고 하는데 이런 요리들을 실제로 만들어 보자면 상당한 용기가 필요할 것이다. 그 중 비교적 맛이 좋을 듯 하고 자주 등장하는 것을 꼽아 보자면 ‘호박’요리가 있다.

해리포터가 처음 맛보게 되는 마법사 세계의 요리가 바로 호박 파이이며 할로윈 아침에 호그와트 기숙사의 학생들은 ‘호박을 굽는 달콤한 향기’에 잠에서 깨어난다. 이들이 즐겨 마시는 음료수 역시 차가운 호박 주스이다.

그런데 왜 하필 호박일까? 작가는 중요한 사건들이 일어나는 시기로 ‘할로윈’을 자주 채택한다. 이 날은 마법사와 마녀들의 명절로 일컬어지며, 할로윈의 상징이 바로 호박을 파내어 만든 ‘잭오랜턴’이다. 작가 조앤 롤링은 이에 착안해 마법사들이 즐겨먹는 음식이 호박이라고 가정한 듯 싶다.

여기서 잠깐, 할로윈의 정확한 의미를 알아보자. 어린이들이 분장을 하고 과자를 얻어 가는 이 재미있는 명절의 유래는 알고 보면 으스스하다. 기독교 전래 이전 영국에 살던 켈트인들은 겨울이 시작된다고 믿었던 11월 1일, 동물이나 인간을 죽음의 신 삼하인(Samhine)에게 제물로 바쳤다고 한다.

할로윈 밤에는 유령이나 마귀, 마녀, 해적, 요정들이 인간을 대신해서 세상을 다스린다고 믿어졌다. 이 습속은 기독교 전래 이후에도 계속되었으나 본래의 의미는 사라지고 어린이들이 즐기는 축제로만 남아있다.


할로윈 상징, 순무대신 호박

할로윈의 상징인 ‘잭오랜턴(Jack-o'Lantern)’역시 유령과 관련이 있다. 술주정뱅이에 난봉꾼이었던 ‘잭’이란 인물이 죽음의 마귀를 골탕먹인 후 죽게 되었는데 앙심을 품은 마귀 때문에 그는 천국도 지옥도 가지 못하고 겨울 밤 벌판을 정처없이 헤맸다.

추위에 지친 잭이 마귀에게 몸을 녹일 불을 달라고 사정하자 마귀는 타다 남은 숯 한덩이를 던져 주었다. 그것도 감지덕지한 잭은 먹던 순무의 속을 파내고 숯을 넣어 등불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그렇다면 잭오랜턴은 원래 순무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호박 등은 미국에서 유래했다. 감자 흉년 때문에 미국으로 건너간 아일랜드인들은 순무 대신에 신대륙에 많이 자라고 있던 호박으로 등불을 만들었다고 한다. 지금은 원산지인 영국에서도 미국식 풍습이 역수입되어 호박등을 만든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머글’이 아닌 마법사들이 순무 대신 호박을 썼다는 건 좀 이상한 일이다.

그러나 롤링의 이 실수(?)가 그다지 거슬리지는 않는다. 호박 대신 순무였다고 생각하면 소설의 재미는 훨씬 반감되었을 테니까. 신데렐라의 마차 역시 호박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호박은 마법사의 음식으로 상당히 매력적인 소재라고 할 수 있다. 호박의 독특한 외모와 넉넉한 크기, 그리고 먹음직스러운 오렌지색은 동화적인 이미지와 아주 잘 어울린다.


꽃은 튀김, 잎은 쌈, 씨는 술안주로

식품으로서의 가치를 생각하더라도 호박은 마법사의 음식으로 손색이 없다. 호박에는 녹말과 섬유질이 풍부할 뿐 아니라 카로틴과 비타민 B, C도 들어있다. 그리고 그 달콤한 맛은 야채를 먹지 않는 어린이들의 입맛에도 잘 맞아 청소년 마법사들에게 훌륭한 영양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꽃은 튀겨 먹고, 잎은 쌈을 싸 먹고, 씨는 술안주나 간식으로 쓸 수 있는 호박은 우리에게도 친숙한 식품이다. 한방에서 호박은 부기를 치료하는 데에도 쓰인다. 호박범벅, 호박떡, 호박고지 등 호박으로 만든 요리는 우리나라에도 많지만 이번에는 색다른 맛을 즐길 겸 마법사 세계의 요리湧?따라 해 보자.



◆ 호박파이

해리 포터가 호그와트로 가는 길에 기차 안에서 사먹었던 호박파이. 호박파이는 미국인들이 추수감사절에 즐겨 먹는 메뉴이기도 하다. 손수 만들기가 번거롭다면 시중 제과점에서 맛볼 수 있는 호박 페스트리도 별미이다.

-재료: 박력분 240g, 소금 5g, 물 100g, 버터 240g, 늙은호박 1600g, 설탕 12g, 계란노른자 10개, 생크림, 계핏가루와 넛멕 약간씩

-만드는 법:

1. 체에 친 박력분에 소금과 잘게 다진 버터, 물을 넣고 반죽한 다음 랩에 싸서 냉장고에 한시간 가량 넣어둔다.
2. 호박은 큼직하게 잘라 씨와 껍질을 제거하고 찜통에 찐다. 다 쪄지면 설탕을 섞어 가며 부드럽게 으깨 준다.


3. 2에 계란노른자, 생크림과 계핏가루, 넛멕을 섞는다.


4. 1의 파이 반죽을 얇게 펴서 파이 접시에 깔고 포크로 찔러준 후 가장자리를 접시 모양에 맞추어 잘라낸다.


5. 접시에 3을 채운 다음 표면에 달걀 노른자를 발라 220℃ 오븐에서 20분간 굽고 200℃로 낮추어 30분간 더 굽는다.

*tip: 넛멕은 과자류에 고소한 풍미를 더해주며 도너츠에 자주 들어간다.


◆ 호박주스

'해리포터와 비밀의 방' 편에서 학교 기차를 타고 오지 않은 해리와 론. 만찬회에도 참석하지 못한 채 벌을 받게 된 두 사람에게 맥고나걸 교수는 커다란 샌드위치 접시와, 두 개의 은 술잔, 그리고 얼음이 담긴 호박 주스 단지를 차려준다. 호박은 새콤한 맛이 없어 주스로 마시기엔 조금 이상하지만 레몬즙을 첨가하면 상쾌한 향이 난다. 여름에 시원하게 즐기는 호박 주스는 어떤 맛일까?

재료: 단호박 200g, 물 한컵, 꿀 한큰술, 레몬즙 한 큰술

1. 단호박은 껍질과 씨를 제거하고 부드러워질 때까지 쩌낸다.


2. 1을 잘게 잘라서 얼린 다음 레몬즙과 꿀을 넣고 믹서에 간다.

정세진 맛 칼럼니스트


입력시간 : 2003-10-02 15:05


정세진 맛 칼럼니스트 sejinjeong@yaho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