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식의 문화읽기] 욕망의 대변 '문신'


사전에 의하면, 문신은 피부나 피하조직에 상처를 내고 물감을 들여 글씨, 그림, 무늬 등을 새기는 일을 말한다. 말 그대로 몸에 글자를 새기는 일이며 동시에 몸에 지워지지 않게 씌어진 글자가 다름 아닌 문신이다. 따라서 글자로서의 문신은 메시지를 전달한다.

예를 들어보자. 안정환 선수의 양 어깨에 새겨진 문신들은 복합적인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달한다. 문신이 전달하는 첫번째 메시지는 ‘이것은 몸이다’라는 명제이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것은 나의 몸이다, 그리고 나는 내 몸의 주인이다’라는 완결된 의미를 전달한다.

문신이 그려진 몸에서 우리는 일반적이고 추상적인 몸을 발견하지 못한다. 문신은 일반화된 몸이 아니라 특정한 주체의 구체적인 몸을 새롭게 발견하게 만드는 기호(記號)이다. 문신의 기본적인 메시지는 ‘이것은 나의 몸이다’라는 주장이다.

문신의 가장 기본적인 기능이 고유하면서 구체적인 몸에 대한 환기라고 한다면, 문신의 두번째 메시지는 글자나 문양의 상징적 의미와 관련된다. 한쪽 어깨에는 십자가가 그려졌고 다른 한쪽에는 아내에 대한 사랑이 표현되었다면, 그 의미는 무엇일까. 아버지 하느님과, 사랑하는 연인이자 어머니인 존재에 대한 육체의 경배가 아닐까.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새로운 상징을 받아들이고 있는 몸이 그라운드를 뛰어다니고 있었다고, 과거의 기원을 망각하고 태어난 새로운 몸이 그곳에 있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안 선수의 골 세리머니는, 과거와 전적으로 다를 뿐만 아니라 자기가 원하는 몸을 스스로 만들고 싶다는 욕망을 대변하고 있다. 프로이트에 의하면, 내가 원하는 나의 이상적인 모습이 현재의 내 모습일 때를 가리켜 나르시시즘이라고 한다.

나르시시즘이라고 하면 공주병이나 왕자병과 같은 자아도취를 연상하기가 쉬운데, 이상적인 자아와 현실적인 자아 사이에 분열이나 구별이 없는 행복한 일치상태가 다름 아닌 나르시시즘인 것이다. 그렇다면 문신과 관련된 심리적 배경에는 몸과 관련된 나르시시즘이 강렬하게 작동하고 있는 셈이다.

뭔가를 단단히 결심한 남성들이 머리를 빡빡 밀고, 여성들이 머리를 자름으로써 과거의 상처와 결별을 고하듯이, 안정환 선수는 문신을 통해서 새로운 기원을 가진 몸을 만들어내고자 했던 것이 아닐까. 적어도 중계를 보고 좋아서 환호하고 있던 필자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안정환 선수의 문신이 가십거리나 논쟁거리가 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문신이 새로운 몸에 대한 절박한 욕망을 대변하고 있었고 그의 절박함이 무의식중에 우리에게 전달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보다 일반화시킬 수 있다면, ‘새로운 기원을 가진 몸’은 문신에 투영된 가장 근원적인 욕망이다.

아마도 그 느낌은 ‘나는 이제 나의 욕망에 의해서 새로운 몸을 가지게 되었다’라는 즐거운 자기확신과 가까운 것일지도 모른다.

문신이 전달하는 또 다른 메시지는 고통과 쾌락의 양가성이다. 고통이란 다름 아닌 시술과정에 겪어야 하는 육체적인 고통을 말한다. 반면에 쾌락이란 새로운 몸으로 태어나는 정신적인 기쁨을 의미한다.

그런데 새로운 몸으로 태어나기 위해서는 ‘작은 규모의 상징적인 죽음’이 필요한 법이다. 살아있는 상태에서는 다시 태어날 수 없고, 그렇다고 해서 실제로 죽을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몸의 일부분을 내어주고 새로운 몸을 되돌려 받는, 상징적인 교환이야말로 문신의 심리적 메커니즘이다. 문신을 한 신체부위는 결코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올 수 없다. 문신은 그 자체로 신체의 부분적인 죽음을 상징한다.

하지만 문신을 통해서 새로운 기원을 가진 몸이라는 자기환상 또는 자기확신이 주어진다. 문명화한 대부분의 사회에서 문신에 대한 터부가 자리잡았던 데에는, 문신의 모습에서 상징적인 죽음의 흔적들을 발견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른들이 문신한 사람들을 두고 독한 사람들이라며 경원했던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헤나문신이나 플라노 아트와 같은 패션문신의 경우, 기존의 문신과 마찬가지로 ‘나의 고유한 몸’을 드러내 보이는 기호이며, 동시에 새로운 기원을 가진 몸에 대한 욕망을 반영한다. 하지만 문신의 부정적인 측면인 신체의 영구적인 변형(지울 수 없음)에 대해서는 거리를 두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패션문신은 고통을 거치지 않고 즐거울 수 있는 몸에 대한 욕망을 대변하고 있는 셈이다.

마술적인 몸이자 신비한 몸이 아닐 수 없다. 스타일화된 문신이 몸에 대한 새로운 관념을 형성하고 있다는, 조금은 막연한 느낌을 가져본다. 문신을 옹호하거나 비난하고자 하는 풩뎬?조금도 없다. 전통적인 금기였던 문신을 둘러싼 사회문화적 맥락들이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잠시나마 들여다보고 싶었을 따름이다.

김동식 문화평론가


입력시간 : 2003-10-02 16:20


김동식 문화평론가 tympan@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