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틀러'별명의 강성 변신의 연속, 승승장구

최병렬 누구인가?
'최틀러'별명의 강성 변신의 연속, 승승장구

1938년생인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는 경남 산청 출신으로 진주중과 부산고를 나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한국일보 기자로 언론계의 첫발을 내디뎠다. 이어 조선일보로 자리를 옮겨 일선 기자들의 사령관격인 편집국장을 끝으로 5공 때인 1985년 2ㆍ12 총선때 전국구로 제12대 민정당 국회의원이 됐다.

당시 당 대표인 노태우 대표위원의 최측근을 자임하면서 13대 대선을 성공적으로 치러 박철언 전 의원과 함께 6공 정권 출범의 1등 공신으로 자리매김했다.

노 정권시절 최 대표는 청와대 정무수석과 문공부 공보처 노동부 장관 등을 잇달아 역임하며 승승장구한 뒤 민자당 3당합당 이후에는 서울 서초 갑에서 출마해 재선에 성공했다. 이어 같은 PK출신의 김영삼 전 대통령을 도와 정권 재창출에 기여해 문민정부 때 임명직 서울시장에 오르기도 했다. 동시에 15대와 16대 총선서 서울 서초와 강남 갑에서 잇달아 당선, 4선의 중진 의원 반열에 이름을 올렸다.

강력한 추진력에 합리적인 성품이 장점인 최 대표는 ‘최틀러’라는 별명이 따라다닐 정도의 불 같은 강공 드라이브가 트레이드 마크. 그러나 최 대표에게는 정권의 부침에 따라 끊임없이 변신을 거듭해왔다는 비난도 뒤따른다. 전두환 정권에서 첫 배지를 달았지만 전 전 대통령의 백담사 행에 일정 부분 역할을 했고, 노태우 정권의 핵심 참모였지만 문민정부 시절 박철언 전 장관 등 노 정권 측근이 줄줄이 구속되는 상황에서도 그는 살아 남았다.

또 12ㆍ19 대선의 한나라당 경선에서 이회창 전 총재가 손녀 원정출산과 김대업씨 병역비리 및 기양건설 뇌물수수 등 잇단 악재에 시달릴 때 ‘창 필패론’을 들고 나와 당 안팎으로부터 미움을 사기도 했다.

이번 대표 경선에서는 이회창 전 총재 삼고초려론을 만들어낸 윤여준 의원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사실상 ‘장자방’ 역할을 한 윤 의원과는 6공때 정무수석과 비서관의 관계로 연이 깊다. 또 대여(對與) 저격수에서 변신을 시도하는 정형근 의원과 초선의 박진 오세훈 허태열 의원 등이 최 대표를 도왔다.

육군 상병으로 만기 제대했으며 부인 백영자씨 사이에 SBS 최희준 기자 등 2남1녀가 있다. 종교는 천주교이며 존경하는 인물로는 이순신 장군을 꼽는다.

입력시간 : 2003-10-02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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