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을 잉태한 아버지와의 갈등

[시네마 타운] '헐크'
비극을 잉태한 아버지와의 갈등

<헐크>는 우리가 알고 있는 대로 프랑켄쉬타인, 지킬박사와 하이드, 킹콩과 유사한 거대한 괴물에 대한 이야기다. 외모나 크기가 주는 위협감으로는 프랑켄쉬타인이나 킹콩에 견줄 수 있고, 로맨틱한 장면은 킹콩을 떠올리게 하지만 헐크가 출발점으로 택한 건 지킬박사와 하이드이다.

한 인간이 낮에는 존경받는 의학박사이면서 법학박사로 살지만 밤에는 살인까지 저지르는 악한으로 변한다. ‘과학의 힘’을 통해 내면에 복합적으로 엉켜있는 이중성을 시각적으로 분리해 낸다는 이야기다.

<지킬박사와 하이드>는 1886년 영국 사회가 갖고 있던 세기말적 불안감을 단순한 이분법을 통해 하나를 택하고 다른 하나를 파멸시킴으로써 안도감을 찾으려 했던 배경에서 탄생했다.

그리고 영화의 원작만화 <더 인크레더블 헐크The Incredible Hulk>는 1962년 또다시 선악 이분법이 절실하게 필요했던 냉전시대의 산물이다(잭 커비와 함께 헐크를 창조해낸 만화가로 이번 영화의 공동 각본가와 제작자로 참가한 스탠 리는 2차대전 참전용사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2003년의 <헐크>는 무엇이 문제이고 왜 등장했을까?


실험실에서 시작되는 비극

영화는 시간적인 흐름을 따라 주인공 브루스 배너(에릭 바나)의 아버지 데이비드 배너(닉 놀테)의 실험실에서부터 시작, 그의 탄생과 더불어 아버지가 갈등하는 모습, 양부모 밑에서 자라 과학자로 성장한 현재까지 차례차례 진행된다.

헐크로 변하기 전 브루스의 일생은 영화의 전체 시간에서 거의 반을 차지하는 긴 분량으로 옷이 투드득하고 찢겨지면서 신체의 일부가 부풀어오르는 스펙터클은 예상처럼 빨리 등장하지 않는다. 그리고 만화가 원작임을 확인시키듯 영화의 프레임은 만화의 분할화면처럼 다양한 각도에서 잘라지고 붙여진다.

분노가 치밀어 오르면 거대한 녹색 괴수 헐크로 변하는 브루스는 세포재생을 연구하는 과학자이다. 그가 헐크가 될 수 밖에 없는 데에는 몇가지 필연적인 이유가 있다. 면역시스템 변이를 연구하고 있던 아버지 데이비드는 자신을 상대로 실험을 하고 있던 중 아내가 임신을 하고 브루스는 유전자 변형을 안고 태어난다.

그러나 자신의 신체의 비밀도 모르고 친부모에 대한 기억도 없이 성인으로 성장한 브루스는 아버지와 동일한 분야의 과학자가 된다. 실험실에서 갑자기 사고가 나 과다한 감마선에 노출되지만 죽지 않고 오히려 그의 육체는 더 건강해진다. 그리고 아버지는 홀연히 미친 과학자의 전형적인 모습을 하고 아들 앞에 나타난다.

즉 그 필연은 바로 아들과 아버지라는 혈연관계다. 프로이드의 오이디푸스 이론이 살아 숨쉬는 아버지와 아들은 30년을 떨어져 지내다 다시 만나게 되지만 과거에 함께 살던 때보다 더 심한 갈등에 휩싸인다.

아들처럼 초능력을 얻기 위해 아버지는 똑같이 감마선에 자신을 노출시키고, 자신을 어떤 물체로든 변형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된다. 이러한 힘이 생겼는데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자신의 창조물이자 속죄해야 할 아들의 능력까지 빼앗아 자신의 힘을 극대화 시키려 한다. 부자의 갈등은 이 영화가 무엇보다도 개인의 정체성에 가족이 핵심적 역할을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헐크의 슬픔과 가족의 파멸

깨진 가족의 모습은 브루스의 동료이자 여자친구였던 베티 로스(제니퍼 코넬리)에게서도 보여진다. 그녀는 아버지와 아주 소원한 관계이고 엄마는 아예 등장하지도 않는다. 베티의 아버지는 전형적인 군인으로 데이비드가 생체실험을 하지 못하도록 명령했던 인물이다.

또한 데이비드를 30년간 감옥에 가둔 장본인이며 브루스를 다른 가정으로 입양시키고 헐크의 탄생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려 했지만 결국에는 헐크 제거를 책임지는 지휘관이 된다. 이 영화에서의 아버지들은 자신들의 목표와 이상이 확고하고, 타협하지 않으며, 자식들에게 애정을 보이지 않는다. 자식들은 그런 아버지와 원만한 관계를 맺지 못하고 그 비극은 헐크를 통해 가시화된다.

<헐크>가 다른 괴물 주인공들과 가장 다른 점은 그가 윤리적 고민과 슬픔이 깊은 인물이라는 점이다. 헐크의 슬픔은 무엇보다도 가족의 비극에서 기인한다. 특히 아버지는 브루스와 헐크를 만들어낸 창조자이며 조종자로서 가족의 파멸을 초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게선 유일하게 남은 아들에 대한 죄의식이나 뉘우침은 찾아 볼 수 없다.

브루스의 잊혀진 과거가 점점 더 선명해지고 그가 분노를 견디지 못해 헐크가 됐을 때 그 흉측할 것 같은 얼굴에, 특히 눈에는 슬픔이 배어있다. 브루스/헐크가 엄마에 대한 기억을 되살리며 심지어 냄새까지 기억할 수 있다고 얘기하는 장면, 샌프란시스코 시내에서 경찰 병력과 대치하는 장면, 베티의 모습을 보고 헐크에서 브루스로 돌아와 그녀 앞에 무릎을 꿇는 모습 등과 같은 장면에서는 연민을 자아내는 슬픔이 지배한다.

헐리우드 영화에서 괴물에서 인간으로 혹은 인간에서 괴물로 변하는 존재는 모두 남성들이었다.

이보다 이전에 평범한 인간에서 영웅으로 변하는 것도 원더우먼을 빼고는 모두 남성들이었다. 슈퍼맨, 배트맨, 스파이더맨, 엑스맨, 데어데블, 등이 그랬고 지킬박사와 하이드, <미녀와 야수>의 야수, 그리고 모든 호러영화의 주인공이 다 여기에 속한다.

그런데 올해 들어 같은 회사의 만화가 영화화된 두 작품 <데어데블>과 <헐크>가 유사한 점은 영웅이나 괴물이 부각되는 것이 아니라 이들이 ‘남성 인간’이라는 점이 강조되고 있는 것이다. 이들에게는 비극적인 가족사가 있고, 로맨스는 이루어지지 않을 뿐 아니라, 육체적 정신적 고통이 항상 이들을 괴롭힌다.

헐크는 세포가 즉각적으로 회생이 되기 때문에 어떤 강력한 무기에 공격을 당해도 끄떡없는 무적의 육체를 자랑하는 것 같지만 사랑하는 여성(베티) 앞에서는 금새 나약한 인간일 뿐이다.

따라서 인간적인 나약함이 표면에 드러나는 헐크는 영웅과 거리가 멀다. 맨 끝에 암시적으로 남겨준 장면은 그가 앞으로 영웅이 될 수 있을 가능성을 제시하지만 영화 전반에서 그가 무수한 인명을 구하는 장면은 없다. 헐크가 구해주는 단 한 사람은 베티 뿐이다.

과학자와 녹색 괴물이라는 이중성은 곧 그 두 가지 정체성과 육체 사이에서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를 끊임없이 고민하게 만든다. 왜 그런 이중성을 갖게 되었는지에 대한 해답을 아버지를 통해 얻었더라도 지적이고 이성적인 과학자의 모습에서 에머랄드빛 일탈을 브루스는 원한다. 즉, 브루스는 이전의 남성성이 단순히 건장한 힘과 육체로 상징됐던 것과 달리 변화해야 하고 변화 할 수 밖에 없는 현대 남성들의 고민에 대한 유희적 성찰이다.

시네마 단신
   


윤제균 감독 <낭만자객> 크랭크 인

<두사부일체>, <색즉시공>의 흥행감독 윤제균의 세 번째 영화 <낭만자객>(제작 두사부필름)이 6월 20일 용인 민속촌에서 촬영을 시작했다. <낭만자객>은 자객들이 처녀귀신들의 한풀이에 ‘사나이’ 한 목숨 거는 코믹 무협물이다. 용인 민속촌을 시작으로 경북 문경 세트장, 강원도 철원, 전남 보성 등에서 로케이션 촬영된다. 올해 12월 중순경 개봉 예정인 <낭만자객>은 윤 감독의 전작 영화들처럼 할리우드 영화와의 경쟁에서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배트맨 5> 시나리오 작업, 2005년 여름개봉 예정

<메멘토>의 감독 크리스토퍼 놀란과 주연배우 가이 피어스가 <배트맨 5>시나리오 작업에 들어갔다. <배트맨>은 팀 버튼 감독이 1989년 영화한 이래 1997년까지 4편의 연작을 생산해 낸 작품으로, 팀버튼과 조엘 슈마허에 이어 크리스토퍼 놀란이 세 번째 감독으로, 가이 피어스는 마이클 키튼, 발 킬머, 조지 클루니에 이어 제4대 배트맨으로 등장하게 된다. 예정대로 작업된다면 <배트맨 5>가 2005년 여름쯤 개봉된다.

채윤정 영화평론가


입력시간 : 2003-10-02 16:52


채윤정 영화평론가 blauthin@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