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수 훤하게 삽시다] 우울증


장마철이라서 비가 오락가락하고 있다. 비가 오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우울해 진다고들 이야기 하지만 우리가 일상에서 느끼는 우울한 감정과 질병으로서의 우울증은 다르다. 사람은 누구든지 한두 번은 학업이나 일, 사랑이 순조롭게 되지 않는 슬럼프 상태에 빠졌다가도 다시 일할 수 있는 회복력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침울한 기분이 오랫동안 회복되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이 바로 우울증이다.

질병으로서의 우울증은 생각보다 흔하고 심각하다. 전세계적으로 3억3,000만 명 정도가 우울증에 시달리는 것으로 보고되어 있고,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조사보고에 의하면 우리나라 전국 남녀의 25.3%가 경증 이상의 우울증을 앓고 있으며, 특히 성인의 8.6%, 청소년의 14%는 입원치료가 필요한 중증 이상의 우울 증세를 가지고 있다고 보고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 병원을 찾는 우울증 환자는 그리 많지 않다. 이유는 자신이 우울증인지도 모르는데다가 마음의 병은 자신이 알아서 추스려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있으며, 사회적으로도 정신과적인 치료를 받는 것 자체가 터부시되기 때문이다.

우울증을 초기 단계에서 빨리 진단하고 치료하지 않아 증상이 심해지면, 환자들은 모든 것이 변화 불가능하고 시간이 흘러도 상황이 더 이상 나아질 가망이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자포자기하여 아무런 노력도 기울이지 않게 되고, 죽음을 생각하고, 결국엔 자살을 시도하게 된다.

실제로 심한 우울증 환자 중 약 15%가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자살을 시도하고 때로는 성공하는 경우를 우리는 신문지상에서 종종 접하게 된다. 자살하는 사람들 중에는 숨겨진 우울증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우울증은 대체로 치료가 잘되는 질환이다. 세상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바로 잡아주는 ‘인지행동치료’, 대인관계의 기술을 증진시키는 ‘대인관계 치료’가 효과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가장 기본적인 치료는 생각의 방향을 결정하는 신경전달물질의 균형을 찾아주는 약물치료이다. 의사와 상담하지 않고 기력을 보충하기 위해 보약을 복용한다거나, 약국에서 안정제를 사 먹는 것, 조용한 곳에서 휴식을 취하는 것 등은 우울증 치료에 도움이 되지 않으며 오히려 질병을 악화시킬 가능성이 많다.

물론 우울증에 빠져 있는 환자에게 ‘힘내라’라는 응원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심한 우울증 환자는 모든 것을 비관적으로 보기 때문에, 자신이 절대로 좋아지지 않을 것이며,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긍정적인 생각을 하게 만드는 신경전달물질의 부족으로 부정적인 생각이 들면 환자 스스로 치료를 자청하게 되지는 않는다. 이럴 때는 주위의 가족이나 친구들이 도와줘야 한다. 일단, 치료가 시작되면 부정적인 생각의 흐름이 줄어든다.

우울증이 있는 것을 스스로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최근에는 인터넷상으로도 우울증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많은 사이트들이 있다. 하지만 여기에 의존해서 우울증 여부를 진단하는 것은 그렇게 정확하지는 않다. 궁극적으로 우울증의 진단은 의사가 내리게 되겠지만 다음과 같은 증상이 계속 될 때는 “내가 우울증이 아닌가” 의심을 해 보고, 병원을 찾는 것이 좋다.

-하루 종일, 거의 매일 슬프고 가라앉고 불안한 느낌이 든다.

-평소에 즐기던 일들에 더 이상 관심이 없다.

-체중과 수면의 변화가 크다.

-기운이 없고, 쉽게 피곤하다.

-스스로가 가치가 없는 것 같고, 죄 지은 것 같고,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늘 짜증이 나고, 안절부절 못 한다.

-집중을 하거나, 결정을 내리는 것이 어렵거나, 건망증이 심하다.

-치료를 해도 듣지 않는 두통, 소화불량, 만성 통증이 있다.

-죽음에 대해서 반복적으로 생각하거나 자살하는 방법을 생각한다.

이중 특히, 죽음에 대하여 반복적으로 생각하고, 도와줄 사람도 없는 것처럼 느껴지고, 앞날에 아무런 희망이 없다고 생각할 때는 반드시 병원에 찾아와야 한다.

박현아 한일병원 가정의학과 과장


입력시간 : 2003-10-02 18:10


박현아 한일병원 가정의학과 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