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 부동자금 흐름 부동산서 방향 전환주가 가파른 상승세, 하반기 900선 예상도

주식 大勢?
시중 부동자금 흐름 부동산서 방향 전환
주가 가파른 상승세, 하반기 900선 예상도


#1. (올 초) “대출을 받아서라도 목 좋은 곳에 아파트를 사야 한다니까. 정부가 아무리 난리 쳐도 절대 집 값은 안 떨어질 거다.” “하긴 그렇지. 내 친구는 강남에 아파트 한 채를 사뒀는데 3개월만에 1억원 가까이 올랐다더라.” “행정수도가 이전되면 대전 인근에 땅이라도 사둬야 하는 것 아니냐.” “벌써 오를 만큼 올랐다고 하던데, 뭘.”

#2. (7월) “야, 삼성전자가 40만원을 넘었더라. 그냥 들고 있었으면 짭짤했을 텐데.” “난 코스닥에 들어가서 2개월 동안 50% 정도 수익 냈다. 지금도 별로 안 늦은 것 아니냐?” “그래도 경제가 여전히 어렵다는 데 조만간 조정을 받지 않겠냐.”

부동산을 향해 일방적으로 애정 표현을 해온 시중 부동자금이 서서히 주식에 입질을 시작했다. 물가 상승률조차 따라 잡지 못하는 은행 예금 금리는 재테크로서의 매력을 상실한 지 이미 오래. 은행 단기 상품 등에 잠자고 있는 380조원 가량의 시중 부동자금은 조금이라도 높은 수익을 보장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 가겠다며 만반의 채비를 갖춰 놓고 있는 상태다.

상반기까지 시중 자금의 블랙홀 역할을 했던 부동산의 자리를 주식이 대신하기 시작한 것은 주가가 가파른 상승세를 탄 5~6월 무렵. 하지만 지금까지의 상승장을 이끈 것은 유독 외국인 뿐이었다.

6월 한 달에만 2조7,000억원을 국내 증시에 쏟아 부은 외국인들이 종합주가지수를 700선까지 끌어 올렸지만, 개미들은 아직 관망할 뿐 본격적인 움직임은 보이지 않고 있다. 성장률, 생산, 소비, 투자 등 국내 경제의 거시 지표가 여전히 온통 암울한 탓이다. 과연 주식이 하반기 시중 부동자금의 사랑을 한 몸에 받을 수 있을까.


시들해 진 부동산 열기

올 상반기 재테크의 화두는 단연 부동산이었다. 3월부터 재건축 아파트를 중심으로 고공 행진을 하던 부동산 가격은 지난해 ‘9ㆍ4 안정 대책’ 이전 수준을 훌쩍 뛰어 넘었다. 4차 동시분양에는 사상 최대의 청약 인파가 몰리며 최고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집 값 급등세를 주도한 서울 강남권은 물론 행정수도 이전 공약에 힘입어 대전, 천안 등 충청권까지 전국이 부동산 열풍에 휩싸였다.

하지만 무슨 수를 써서라도 부동산 가격 만큼은 잡겠다는 정부의 강력한 의지에 부동산 시장은 5~6월을 고비로 한풀 꺾였다. 아파트 매매 가격의 ‘예고편’인 전세 가격은 이 때를 고비로 대폭 하락세로 돌아섰다.

전문가들은 부동산 가격 안정세는 당분간, 적어도 연말까지는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한다. 물론 그 배경에는 정부의 강력한 부동산 억제책이 자리잡고 있다. 투기 지역 지정, 재건축 요건 강화, 분양권 전매 제한, 강도 높은 세무 조사 등 전방위 조치에 부동산 가수요는 자취를 감췄다.

여기에 올 들어 주택 공급이 수요를 크게 초과하는 것도 부동산 가격 상승을 강력히 억제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올해 입주가 시작되는 아파트, 다가구 주택, 오피스텔 등 공동 주택의 가구수는 76만호 가량. 내년에도 이 보다 14만호가 늘어난 90만호의 입주가 이뤄진다.

LG경제연구원 김성식 연구위원은 “가수요가 억제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머니 게임’이 횡행해 아무리 공급이 많아도 수요가 이를 초과할 수밖에 없다”며 “하지만 가수요가 억제됨에 따라 수급 상황으로 인해 가격이 안정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됐다”고 진단했다. 그는 “부동산 가격을 잡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지속되는 한 하반기 집값이 3~5% 하락하고 2005년까지는 가격 안정세를 유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연구소들의 하반기 부동산 전망도 대체로 일치한다. 건설산업연구원(1.5% 상승) 주택도시연구원(1.5% 상승) 국토연구원(0.9% 하락) 등은 하반기 전국 주택 가격이 강보합 내지는 약보합세를 유지할 것으로 예상했다.


부푸는 대세 상승의 꿈

3월17일 거래소 종합주가지수는 515. 이날 전저점을 찍은 주가는 이후 줄기차게 상승 곡선을 그렸다. 주가가 200포인트 가량 급등하며 700을 넘어서는 데 4개월 정도가 걸렸을 뿐이었다. 지난해 12월 이후 7개월 만의 고지 탈환이었다.

의아한 것은 주가가 상승 국면을 보인 2분기는 사스(SARS), 카드채, 북핵문제, 이라크 전쟁 등 국내 경제에 온갖 악재가 도사리고 있던 시기였다는 점. 국내 기관과 개인들이 주식 매수에 반신반의하는 동안 유독 외국인들만 집중적으로 ‘바이 코리아’에 나섰다. 4월 이후 7월18일까지 외국인은 장내에서 4조7,294억원 어치의 주식을 사들인 반면, 국내 개인과 기관은 각각 3조5,475억원, 1조1,819억원 어치 주식을 팔아치웠다.

주가가 마지노선이라고 여겨졌던 700을 돌파하고 2분기를 억눌렀던 악재들이 대부분 제거되면서 국내 기관과 개인들도 4월부터 펼쳐진 ‘기관화 장’(외국 기관들이 주도한 장)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낙관론’이 ‘비관론’을 압도하게 된 것이다.

“기업의 가치에 비해 주가가 아직 현저히 저평가돼 있다.” 우리증권 신성호 상무는 ‘주가 저평가론’을 근거로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기업의 자산 가치에 비해 주식 시가 총액이 밑도는 기업이 1,000개에 달하는 등 주가의 상승 여력이 풍부하다는 것이다. 신 상무는 “현재 경기가 어렵다고 하지만 주가는 이보다 훨씬 저평가돼 있다”며 “하반기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세계 경기가 회복세로 돌아서고 국내 경기도 바닥을 확인한다면 종합주가지수가 900선까지는 상승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수출이나 주력 산업의 수익성 회복 기대감도 향후 주가 전망을 밝게 하고 있다. 특히 미국의 정보통신(IT) 경기가 급속히 회복되면서 국내 IT 기업들의 수출이 하반기 이후 크게 회복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점차 확산되는 분위기다. “미국의 IT 경기 회복 쪽에서 돌파구를 찾게 된다면 수출 증대와 함께 연말을 고비로 내수도 회복될 것으로 본다.

IT 분야는 1999년 이후 3년 이상 장기 침체에 빠져 있었던 만큼 일단 회복세를 탄다면 상당히 속도가 빠를 것이다.”(LG투자증권 황창중 투자전략팀장) “반도체나 화학, 철강 등의 단가가 높아지면서 기업들의 수익성 개선에 대한 기대감이 높다. 제조업의 수익성 개선은 소비와 투자를 촉진시키는 효과로 이어질 것이다.“(대우증권 전병서 리서치본부장)


우울한 거시 지표, 벽을 넘을까

하지만 국내 경제의 거시 지표는 여전히 암울하다. 과도한 민간 소비 위축, 기업들의 설비 투자 의욕 저하, 세계적인 경기 침체…. 도저히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형국이다. “주식 시장이 지나치게 과열돼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통계청의 5월 산업활동동향을 보면 산업생산증가율은 15개월 만에 전년 동월 대비 마이너스(-1.9%)로 돌아섰고, 내수 출하는 전년 같은 달에 비해 무려 5.7%나 줄어들었다. 대표적인 소비 지표인 도산매판매 역시 4개월 째 마이너스(-4.6%)를 기록했다. 현재 경기를 나타내는 경기동행지수 순환변동치(전월비)는 4개월째 연속 하락했고, 6~12개월 후 경기를 보여주는 경기선행지수 전월비도 15개월째 하락세를 보였다.

경제 전문가 대다수는 현재를 경기 저점을 통과하는 단계, 혹은 바닥에 진입하는 단계로 진단한다. 2분기나 3분기를 바닥으로 4분기 이후부터는 회복세로 돌아설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문제는 경기 회복 속도에 있다. 바닥을 찍고 경기가 수직 상승할 것이냐(V자형), 아니면 바닥만 확인한 채 수평으로 횡보를 거듭할 것이냐(L자형)에 따라 한국 경제의 미래를 점칠 수 있기 때문이다.

경제 전문가들은 ‘수출 회복 속도 = 경기 회복 속도’라고 입을 모은다. 다시 말하면, 현재 기대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 수출이라는 얘기다. 5월의 경우에도 수출 출하가 전년 동월 대비 소폭(4.8%) 증가, 그나마 선전했다. LG경제연구원 오문석 상무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정보기술(IT) 경기의 회복에 가장 큰 기대를 걸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경제연구소 권순우 수석연구원 역시 “국내 경기 침체의 주 원인은 소비와 투자이지만 탈출구는 수출에서 찾아야 한다”며 “대외 환경 개선에 따른 수출 증대는 곧 소비와 투자 확대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수출 회복 속도에 따라 국내 경기가 ‘V’자형이 될 지, ‘U’자형이 될 지, 혹은 ‘L’자형이 될 지 결정될 것이라는 얘기다. ‘V’자나 ‘U’자형 회복이 이뤄진다면 증시가 대세 상승으로 접어들 가능성이 높지만 , ‘L’자형으로 간다면 증시의 상승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대형 우량주에 투자하라

‘낙관론’에 묻혀 있기는 하지만 ‘비관론’은 이런 우려에서 출발한다. 부동산 투기 억제, 카드채 사태 진정, 재정 확대 등을 통한 경기 부양 ?여러 가지 정책의 효과가 맞물려 조금씩 방향을 전환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회복이라고 진단하기에는 이르다는 것이다.

한화증권 이종우 리서치센터장은 “지금까지는 성장률 바닥을 2~3분기로 보고 ‘V’자 형태의 회복만을 전제한 채 주식 시장의 대세 상승을 점쳐 왔다”며 “하지만 경기가 ‘L’자형 회복을 보일 가능성이 높은 만큼 주식 시장 역시 지루한 횡보를 거듭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특히 그는 최근 700선을 돌파한 것을 고점으로 하반기 내내 지루하게 조금씩 하락해 저점이 500대 중반에서 형성될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했다.

하반기 증시 전망에 따라 추천 종목의 유형에도 확연한 차별성을 보인다. 증시 낙관론을 펴는 전문가들은 우량 대형주 중심의 투자를 적극 추천한다. 우리증권 신 상무는 “향후 상승장을 주도하는 것은 업종이나 테마 보다는 업종 대표성 우량주가 될 것”이라며 “굳이 업종을 고르자면 회복 기대감이 높은 IT 관련 주식이나 상반기 악재를 털어낸 금융주를 추천하고 싶다”고 말했다.

LG투자증권 황 팀장 역시 “7월 중순에서 8월 중순까지 한차례 정도는 조정을 받은 뒤 연말 830까지 간다는 전제 아래 투자를 해야 한다”며 “규모가 큰 기업을 중심으로 전자, 전기, IT, 석유화학, 증권 업종의 투자가 유리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반면 비관론을 펴는 한화증권 이 센터장은 종목 추천에서도 보수적인 입장을 보였다. 그는 “하반기에 주가가 크게 하락할 수 있는 만큼 안정적인 업종 투자를 권하고 싶다”며 상반기에 최악의 고비를 넘긴 은행 업종이나 위험성이 적은 음식료, 유통 등 전통 업종을 제시했다.

이영태 기자


입력시간 : 2003-10-05 14:37


이영태 기자 yt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