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지친 영혼을 끌어안는 넉넉함으로 가득, 천연림 압권

[주말이 즐겁다] 오대산
삶에 지친 영혼을 끌어안는 넉넉함으로 가득, 천연림 압권

강원도 평창은 우리나라 최고의 설국(雪國)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고을이다. 2010년 동계올림픽 유치권을 놓고 접전을 벌인끝에 세계에 유명한 설국인 캐나다 밴쿠버에 3표 차이로 분패하고 말았지만, 동북아의 작은 고을인 평창을 세계에 널리 알렸으니 일단 절반의 성공은 거둔 셈이다.

겨울에 눈이 많은 고을은 여름엔 시원한 법. 평창의 정신적 지주인 오대산(1,536m)의 시원한 그늘 드리워진 그 곳으로 들어가 보자.


오대산이 지켜온 월정사와 상원사

평창 오대산(1,563m)은 산 자체가 하나의 신앙이다. 산세가 부드러워 언제나 삶에 지친 영혼들을 위로하는 오대산 곳곳엔 부처의 숭고한 뜻이 깃들어 있다. 신라 진골 출신인 자장율사(590경~658경)는 당나라에서 공부할때 문수보살로부터 부처의 머리뼈 한조각을 받앗다.

부푼 꿈을 안고 귀국한 자장율사는 부처의 정골사리를 중대 적멸보궁에 모시고, 이를 중심으로 북대·남대·서대·동대에 각각 오류성중(五類聖衆)이 상주한다는 믿음으로 기도를 했다. 중국의 '오대산 신앙'을 이 땅에 도입해 정밀하게 발달시킨 자장율사가 지은 작은 띳집은 후에 월정사가 되었다.

먼저 전나무숲이 반긴다. 쏟아지는 햇살이 아무리 뜨거워도 일주문에서 월정사까지 400~500년생 전나무로 이루어진 이 숲길을 들어서면 더위를 느낄 틈조차 없다. 전나무들 가운데 나무 사이의 폭이 20m쯤에 이르는 거목 아홉 그루를 일컬어 '아홉수'라 하는데, 오대산을 뒤덮은 전나무는 모두 이 아홉수에서 종자가 퍼져서 성장한 것이라 하니 참 대견하다.

만월대에 떠오르는 보름날의 달빛이 유난히 밝고 좋다고 하여 월정사라 했다던가. 허나 한국전쟁 때 월정사의 피해는 참혹할 정도로 컸다. 국보급 전각은 모두 불타고 신라 범종도 녹아 영원히 볼 수 없게 되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돌로 만든 것들은 남았는데. 바로 팔각구층석탑(국보 제48호) 과 석조보살좌상(보물 제 139호)이 그것이다.

경내 한쪽에 자리한 성보박물관엔 팔각구층석탑 사리구와 상원사 문수동자상 복장 유물을 비롯하여 강원도 60여 사찰에서 모은 불상 불화 등 500여점이 전시되어 있다.

월정사를 벗어나면 산길은 짙푸른 천연림을 적시는 계류로서 수달과 열목어가 헤엄치는 금강연을 끼고 상원사에 이른다. 옛이름이 진여원인 상원사는 우리나라 최고의 범종(국보 제36호)으로 유명한 절집. 종 표면에 하늘을 비상하며 공후와 생황을 연주하는 비천상이 새겨져 있는데, 흘러가는 구름과 펄럭이는 천 자락의 표현이 생동감이 넘친다.

또 상원사를 찾는 참배객들이 가장 정성을 들이는 목조문수동자좌상(국보 제 221호)도 상원사를 유명하게 한 나라의 보물이다. 조선 세조와 인연이 깊다. 전신에 종창이 생기는 괴질을 앓아 물 좋다는데는 다 찾아다니던 세조가 오대산에 이르러 월정사에서 참배하고 상원사로 가던 중 '관대거리'에서 옷을 벗고 목욕을 하다 동자승으로 변한 문수보살을 만난 것. 문수 동자상은 그때 세조가 본 인상착의를 바탕으로 조각한 것이라고 전한다.

문수보살상을 모시고 있는 상원사의 중심건물인 청량선원 입구 계단 옆에 독특하게도 고양이 석상이 서 있다. 이 역시 세조와 관련이 있다. 하루는 세조가 기도하려 법당에 들어가려 하자 고양이가 나타나 세조의 옷소매를 물고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 불상 밑에서 자객이 있었던 것이다. 세조는 이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기름진 논5백섬지기를 묘전(猫田)으로 하사했다.

그런데 월정사와는 달리 이 상원사의 유물들이 전쟁으로부터 무사했던 까닭은 군인들이 작전을 이유로 불을 지르려할때 상원사 조실이던 한암스님이 앉은 채 죽음을 맞이하는 좌탈입망(坐脫入亡)의 자세로 절을 지켰기 때문이다. 상원사에서 산길을 따라 비로봉쪽으로 40분쯤 오르면 적멸보궁이 보인다.


여름 들꽃 구경하고 약수 한 모금

오대산을 벗어나면 꼭 들르고 싶은 곳이 있다. 바로 우리 들꽃들이 흐드러져 피어난 한국자생식물원(033-332-7069)이다. 3만평쯤 되는 널찍한 터에는 400여종의 자생식물과 70여종의 희귀식물, 멸종위기 식물들이 오대산의 맑은 이슬을 받으며 자라나고 있다. 1,200여종의 야생화가 어우러진 야외식물원은 관람객들에게 특히 인기가 있는 곳. 요즘 같은 여름철엔 노랑물봉선, 제비동자꽃, 부처꽃, 며느리밥풀꽃 같은 들꽃이 한창이다.

오대산 기슥에서 솟아나는 방아다리약수는 월정사와 마찬가지로 진입로의 울창한 전나무숲이 매력이다 약 250만평의 나무숲이 선사하는 신선한 청량감에 가슴은 물맛을 보기도 전에 시원해진다. 시뻘겋게 물든 바위틈에서 보골보골 솟아오르는 약수는 사이다처럼 톡 쏘는 맛이 난다. 위장병, 신경통, 피부병 등에 효험이 있다고 한다.

일제 때 경상도 땅에 살던 이명호라는 사람이 약수를 마신 뒤 위장병이 나으면서 알려지기 시작했고, 1930년대엔 북한의 삼방약수와 쌍벽을 이룰 정도로 나라 안에 이름이 높았다. 약수터 옆엔 방아다리 약수를 지켜주면서 지병을 치료하러 오는 사람들의 소원도 들어주는 용신각(龍神閣)이 있다.


▲ 교통- 영동고속도로 상진부 나들목→6번 국도(강릉 방향)→2km→가우교삼거리(직진)→3km→간평리삼거리(좌회전)→4km→식물원 입구→500m→월정사 입구. 방아다리약수는 가우교 삼거리에서 좌회전해 10m 들어가면 된다,


▲ 숙식- 오대산 월정사 가는 길에 산채전문 식당과 민박집이 즐비하다. 방아다리약수산장(033-335-7480)엔 약수로 병을 치료하려는 장기 투숙객들이 많다. 약수터 부근의 민박마을(033-335-8299)에도 20가구쯤의 민박집이 있다.

민병준 여행작가


입력시간 : 2003-10-05 15:03


민병준 여행작가 sanmin@empal.com